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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기아차, 2017년 대우조선?
2016.10.28
경제에 대한 세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현 상황이 1997년 외환위기 전과 닮아 그때처럼 크게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연초부터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위기 조짐은 없습니다. 이하에서 해외투자자들의 가시적 이탈이 없는 이유를 살피고,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관점에서 외환위기 때와 현 상황을 비교한 후 시사점을 검토하고자 합니다. # 국내 상황에 무관심해진 외국인 투자자2000년 이후의 선진국과 신흥국들의 실물경제와 금융시장간의 관계를 살핀 외국의 연구들에 따르면 두 그룹 간 실물경제의 경기순환은 그 이전에 비해 더 차이가 나는 데 비해 금융시장의 움직임은 더 동조화되고 있습니다. 국제적 대형 기관투자자들이 신흥국 투자를 크게 늘리면서 외환위기 때와도 다르다는 거지요. 예를 들어 선진국 금융시장 충격으로 기관투자자 고객의 환매수요가 늘면 신흥국의 경제상황을 불문하고 신흥국 금융시장에서도 자금 회수에 나서고 있습니다. 신흥국 간에도 차별화가 있겠지요. 한국은 20년 전에 비해 기업과 은행들의 대외 채무가 크지 않은 게 고무적입니다. 하지만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공적자금 수요가 크게 늘면 시중금리도 오르고, 이는 가계부채의 부실화로 이어지는 국내발 위기 시나리오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1997년 위기 발생에 크게 기여한 기아차기아차의 부실화는 외환위기 직전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분식회계로 대규모 손실을 숨긴 가운데 (법정관리 후 약 4조원 대의 분식회계 발견), 재벌기업이 아니지만 재계 서열 8위를 달성한 점, 사업장이 호남에 있는 점을 이용하여 여론 몰이를 하며 정치권을 압박했습니다. 회사 경영진과 대표적 강성노조로 알려졌던 기아차 노조가 일치하여 정부의 구조조정 시도를 무산시켰습니다. 1997년 대선의 큰 화두로 부각되며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파업 중인 기아차 사업장을 찾아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합니다. 이를 지켜본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문제해결 능력에 대해 신뢰를 잃게 되었고 이는 그 해 말 위기 발생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이 다수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현재는 경남지역에 사업장을 둔 대형 조선사 대우조선해양이 외환위기 전 기아차와 닮은 꼴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예상대로라면 대선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노조의 구조조정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지역 유권자들의 표가 아쉬운 후보들의 발길이 이어질 텐데 아마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발언은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기회비용 10조원짜리 2009년 대우조선 매각 무산대우조선은 원래 대우그룹 해체 및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되며 2000년에 산업은행 (이하 산은)이 최대주주가 되었습니다. 조선업황이 좋아지자 매각을 통해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수순대로 2008년 산은이 매각에 나서며 약 6.5조원 가격으로 한 국내 대기업과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계약 체결을 앞둔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며 매수자가 수정 제시한 분할 매수 방안을 산은이 거절을 했고, 또 대우조선에 대한 매수자의 계약 전 실사가 노조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며 매각이 무산됩니다.
옷 하나도 입어보고 사는 것이 관행인데 6조원 넘는 기업을 사면서 실제로 보유한 자산이 장부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실사를 못하게 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입니다. 문제를 은폐하거나, 매각을 원치 않는 경영진의 의중을 대변하기 위한 것 이외에는 해석하기 어려운 처사였습니다. 실제로 분식회계, 사장 연임을 둘러싼 로비, 산은 경영진이 대우조선을 이용했다는 의혹 등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일들이 대부분 2009년쯤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사후약방문을 해 봅니다. 만약 그 당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금융위기 상황임을 고려하여 분할 매각을 수용하고, 그리고 실사가 진행되면서 설령 부실이 드러나 가격이 1조~2조원 낮게라도 매각했었다면 4조~5조원의 국민의 세금,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2009년 이후 지금까지 투입된 4조원 넘는 추가 공적자금은 필요가 없었겠죠. 산은과 수출입은행이 안고 있는 수주선박 대금과 연계된 잠재적 손실 규모도 지금보다 작았을 겁니다. 당시 회수하지 못한 공적 자금과 그 이후 추가된 공적 자금을 합치면 기회비용이 쉽게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우조선 구조조정 실패의 원인은 대리인 문제최근 야당의 한 대선후보의 연구소 출범식에서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던 분이 "수조원의 적자를 낸 송장이나 마찬가지인 대우조선해양을 살리자는 관료나 지도층은 한 사람도 없고 그 시체를 뜯어 먹는 데만 전념하고 있다"고 일갈했습니다. 관료와 정치인들의 행태를 잘 알고 있을 터이니 표현이 심하지만 모른 소리한다고 할 수없는 지적입니다. 대우조선의 현직 사장도 한 국감자리에서 역량에 비해 과도한 수주가 핵심적 문제였으며, 70명에 달하는 연봉 억대의 비싼 낙하산 인사와 강성 노조가 경영의 장애요인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기아차 · 대우조선의 문제가 커진 것은 경제학의 산업조직론 분야에서는 잘 알려진 대리인 문제 (agency problem)에 기인합니다.* 기업의 주인(주주)을 대신해서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사익을 우선시하는 현상을 지칭합니다. 대우조선의 경우 산은(관료)이 최대주주입니다. 자회사 경영진이 주주를 기만하며 사익을 추구한 행태를 몰랐거나, 알아도 자신들 역시 낙하산 자리 마련 등 사익을 추구하느라 공적자금 회수를 위한 자회사 감시 책무를 방기하여 문제의 규모를 키워왔던 것입니다.# 제 3자 매각이 대리인 문제 해결 방안대선 정치 일정을 감안하면 대우조선이 기아차의 아바타가 되는 것을 막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습니다. 만약 구조조정을 제대로 하려 한다면 대리인 문제가 계속되는 것을 차단해야 합니다. 현재는 대통령이 바뀌면 산업은행장 등 모기업 수장뿐만 아니라 자회사 사장도 바뀌며 경영성과 검증이 원점으로 재설정되는 기형적 지배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제 3자에 매각하는 것이 제일 확실한 방안입니다. 같은 업종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에는 공적 자금이 투입된 적도 없고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해답은 명확합니다.
자본 잠식 상태이기 때문에 기존 주식을 소각하고 신주 발행을 통해 새 주인을 찾아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전략적 투자자로 하여금 국내의 사모펀드 등 재무적 투자자들과 협력하여 이른 시간 내에 대우조선을 인수하여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산업구조조정에 쓰겠다는 공적자금은 발생하는 실업자 지원에 사용하여 지역 경제에 대한 충격을 최소화합니다. 일단 매각 시점에서 일정액의 대금을 받거나, 동시에 정부가 상당한 규모의 신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향후 조선업황이 좋아져 이익이 발생할 때 주식 매각이나 배당 등을 통해 이익을 공유할 수 있어 저가 매각 시비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국책은행들의 부실화는 별도로 해결방안을 모색할 일입니다. 이런 노력이 불가능하다면 정책당국자들이 혼연일체로 매일 새벽 정화수 떠 놓고 내년에 큰 외부충격 없게 해달라고 비는 차선책도 있을 겁니다. *2016년 9월 6일 자유칼럼 “주인을 윽박지르는 머슴을 어이할까” (고영희)에서도 이 문제가 언급되었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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