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은 노벨이 싫은 게 아닐까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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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은 노벨이 싫은 게 아닐까

2016.10.21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된 밥 딜런은 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13일 수상자로 발표된 이후 그의 육성이나 수상소감을 들어본 일이 없는데, 지금은 아예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니 그 이유가 뭔지 아리송하고 궁금합니다.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그가 출석할지 여부도 현 시점에서는 확실치 않다고 합니다.

그는 시상사유에 명기된 대로 훌륭한 미국 음악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으며 문학의 원초적이고 오랜 전통이자 본질인 ‘귀를 위한 시’를 우리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그는 분명 이 시대의 독보적인 가수이자 탁월한 시인입니다.

뉴욕타임스가 평가하기를 ‘밥 딜런은 노벨상 받고, 문학은 올해 상을 못 받았다’고 했지만, 그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오래전부터 수상 후보로 거론돼온 인물입니다.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반기는 사람들이 많고, 처음에 고개를 갸우뚱하다가도 노벨문학상의 지평과 변경을 확장하려는 스웨덴 한림원의 새로운 시도를 적극 지지하는 여론도 높아진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는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예정된 공연에서 “노벨상 수상자”라는 청중의 환호에도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은 채 노래만 불렀습니다. 청중이 따라 부르자 짧은 앙코르 송을 들려준 뒤 무대를 내려갔습니다. 그 앙코르 송이 하필 프랭크 시나트라의 ‘왜 이제 나를 바꾸려고 하나요?’(Why Try To Change Me Now?)였으니 묘한 뉘앙스를 풍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2000년 아카데미영화제 주제가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시상식에 참석하는 대신 영상으로 소감을 보낸 바 있습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으로부터 최고의 영예인 ‘자유의 메달’을 받을 때에도 별도의 수상소감 없이 노래만 불렀던 사람입니다. 음률에 실린 시, 말하자면 노래 외에는 극도로 말을 아껴온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니 스웨덴 한림원의 기대대로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을 하는 경우에도 말없이 노래만 부를 셈인 걸까요?

그가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으리라고 예측하거나 불참을 기대하는 팬들도 의외로 많은 것 같습니다. 세상의 불의와 폭력에 맞서 저항정신을 노래하던 그가 논란 속에 자신의 영광을 위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거라는 이유에서입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명예에 집착하지 않고 살아온 자유로운 영혼이니 노벨상이라는 제도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겨왔을 거라는 이야기이지요.

더욱이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이 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에 대한 밥 딜런의 생각입니다. 우연히 10월 21일 오늘이 노벨의 생일이지만, 잘 알다시피 그는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다이너마이트라는 강력한 고체 폭약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인명 살상력을 극대화한 ‘죽음의 상인’이었습니다. 밥 딜런은 그런 점에서 노벨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밥 딜런은 노래를 통해 반전과 평화, 생명이라는 시대정신을 앞장서 외치고 널리 전파해온 사람입니다. 그의 노래 중 ‘Knockin’ On Heaven’s Door’(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가사는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I can’t use it anymore/It’s getting dark, too dark to see/Feel I’m knocking on heaven’s door”(엄마, 내게서 이 배지를 떼어줘요/난 더 이상 이걸 쓸 수 없어요/점점 어두워져요, 너무 어두워서 볼 수도 없죠/내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느껴 봐요) 이렇게 돼 있습니다. 노벨상이라는 것은 그가 달고 싶지 않은 배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시상식에 참석할지 안 할지는 그의 노래 ‘Blowing in the wind’에 나오는 대로 바람만이 알지 모릅니다. 다만 그는 지금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노벨은 싫지만 노래에 문학상을 준 의미가 살아날 수 있도록 혹시 어디에선가 시상식에서 부를 노래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가 수상을 거부하지는 말고, 말 대신 노래로 수상소감을 이야기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무엇 때문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걸까요?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해 안달복달을 하고 노벨상에 목이 매여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이건 한국 문학인들만 그런 게 아닙니다)과 비교할 때 그의 행동거지가 문학인들과 완연히 다르고 의연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한국의 문학인들은 종전과는 또 다른 실망을 안은 채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아 보여 더욱 안타깝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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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이투데이 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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