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안 따르는 '현장대기 프로젝트'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 

규제개선 중심의 투자활성화 대책, 

벤처·창업 자금 생태계 선순환 방안,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종합정책.

현 정부 출범 첫해이던 2013년. 


기획재정부는 대책이라는 이름을 붙여 18번의 정책을 발표했다. 

한 달에 1~2번씩 대책을 쏟아낸 셈이다. 이후로도 정부 각 부처에서는 매년 10개 남짓의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대책 홍수다.

이중 얼마나 많은 정책이 당초 목적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일까. 정부가 지금껏 발표한 대책은 대부분 2017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가 성적표를 받아들 2017년을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이다. [편집자]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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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63조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유도하겠다며 내놓은 이른바 ‘현장대기 프로젝트 지원책’이 헛돌고 있다. 현장대기 프로젝트란 규제만 풀어주면 투자하겠다는 기업이 대기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무역투자진흥회의의 단골 안건으로 정부는 지원책을 내놓을 때마다 대규모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정부의 기대와 달리 실제 투자가 따라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전문가들은 투자 수요와 시장 상황 등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채 ‘대책을 위한 대책’을 내놓은 결과라고 지적한다. 


의료관광 첨병이라던 메디텔 3년간 실적 ‘0’

정부는 2013년 5월 1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기업이 투자에 애로를 겪는 6개 프로젝트가 가동되도록 지원해 총 12조원 규모의 투자를 이끌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후 10차 대책까지 내놓으면서 총 63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프로젝트 수는 42개다. 정부는 지난 7월 그동안의 성과도 공개했다. 투자 규모가 30조원에 달하는 19개 프로젝트가 착공했고, 이 중 3조8000억원 규모인 4건의 투자는 준공까지 마쳤다는 게 정부 집계다. 


하지만 실제론 상당수 프로젝트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의료관광객 숙박시설 건립, 즉 ‘메디텔 프로젝트’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외국인 의료 관광객 유치를 활성화하겠다며 관광진흥법을 개정해 의료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인 ‘메디텔’ 설립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외국인환자 유치실적 기준을 완화하는 등 규제도 풀어줬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메디텔은 단 한 곳도 설립되지 않았다. 메디텔을 이용하려는 수요가 불확실한데다, 환자의 서울 집중이 심화할 것이라는 의사 단체의 반발도 심해 성과도 없이 의료계 갈등만 부추긴 꼴이 됐다.


대한항공이 2008년 매입한 서울 종로구 송현동 일대 부지. 정부가 규제를 풀어 호텔 투자를 지원하려

고 했지만 결국 무산됐다./조선일보 DB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의 숙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관광호텔 건립을 지원하겠다던 계획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학교와 가까운 곳에도 관광호텔을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일부 풀었지만, 실제 호텔 건립으로 이어진 경우는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던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호텔 건립 계획이 좋은 예다. 정부가 관광진흥법을 개정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호텔 건립 계획은 계속 보류됐고, 대한항공은 결국 호텔을 제외하고 복합문화시설만 짓기로 했다.


올해까지 3000억원이 투자될 예정이라던 춘천 레고랜드 프로젝트는 아직 첫 삽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해당 부지에서 문화재가 대량으로 발견된데다 사업 주체간 소송, 부지 특혜 매각 논란 등이 이어지고 있다. 보전산지(공익을 이유로 보전해야 하는 산지) 규제를 풀어주면 공장을 증설하겠다던 솔브레인은 경기 불황을 이유로 투자를 전면 보류했다.


대기업에 과도한 기대… 목표의 절반 채우기도 급급

대기업 투자 규모도 정부 예상보다 매우 적다. 에쓰오일은 울산 온산산업단지에서 공장 부지를 찾지 못했다. 정부는 산업단지 안에 있던 한국석유공사의 저장탱크 일부를 지하로 옮기는 방식으로 부지를 만들면 에쓰오일이 8조원을 투자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에쓰오일의 실제 투자는 4조8000억원에 그칠 예정이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4조8000억원 외에 추가로 투자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현대모비스의 서산 자동차 주행시험장 프로젝트도 비슷한 사례다. 정부는 7000억원 규모의 투자가 집행될 것이라며 자동차 연구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지역특구계획을 변경했다. 이 지역은 원래 주행시험장을 지을 수 없는 바이오웰빙특구였다. 오는 10월 완공될 이 시설에 현대모비스가 실제 투자한 금액은 3000억원 안팎이다. 


정부가 새만금 산업단지에 1조원 규모의 투자를 이끌 거라던 열병합 발전소 건설 프로젝트도 실제 투자는 5000억원에 그쳤다.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액화천연가스(LNG) 이외의 연료도 쓸 수 있게 애초의 산업단지 계획을 변경해줬다. 하지만 OCI는 절반만 투자한 현재 해당 발전소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새만금 산업단지 개발이 지지부진해 전기를 생산해도 마땅히 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만성적인 용지 부족 문제를 겪는 여수 국가산업단지의 녹지를 공장용지로 쓸 수 있도록 해 5조원의 투자를 유치하겠다던 계획도 규모가 절반으로 줄었다. 정부는 GS칼텍스 등 부지를 원하는 기업이 산업단지 밖에 녹지를 조성하는 조건으로 산업단지 내 녹지를 공장용지로 바꿔주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는 사업비 부담 문제 등으로 해당 기업이 투자를 보류하는 등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3년이 지난 올해 7월에서야 추진되기 시작했고, 투자 규모는 2조6000억원에 그칠 예정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구소장)는 “공무원들이 정책을 위한 정책을 만들다 보니 결과가 나쁘고 관리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서 “3개월만 지나면 잊혀지는 정책도 허다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숫자에 치중한 단기 실적에 얽매이지 말고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정책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이재원 기자 세종=이윤정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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