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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입으로 되나?
2016.10.17
‘기억이 사라지는 시대’(애비 스미스 럼지 지음)에 살면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저서)이 많아서 그런지 무양하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무양(無恙)의 양은 사람 뱃속으로 들어가 사람의 마음을 파먹는 벌레를 일컫습니다. 중국 춘추전국 시대 초(楚)나라 애국 시인이자 정치외교가 굴원(屈原)이 참언(讖言)으로 파직 당하자 그의 수제자인 송옥(宋玉)이 애절한 심경을 담은 시 ‘구변(九辯)’에 이런 뜻을 내비쳤습니다. ‘굴원은 왕이 무양할 때 뵙기를 바란다’고.옛 선비들은 흔히 인사말로 “무양한가?” 하고 물었습니다. 별 일·별 탈 없이 안녕·건강한지 건네는 수인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무양의 본뜻을 되새겨 보면 마음을 파먹는 벌레가 뱃속에 들어있지 않으냐는 물음이니 맨정신으로는 선뜻 답하기가 쉽지 않은 인사말입니다.‘교활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狡)는 모습은 개인데 온몸이 표범 무늬로 덮였고 머리에 뿔이 났으며, 여우보다 더 간사하다고 합니다. 활(猾)은 생김새는 사람인데 전신에 돼지털이 나 있으며, 간악하기가 교보다 더한 동물입니다. 상상의 동물들입니다.교와 활은 길을 가다가 호랑이를 만나면 서로 껴안고 공처럼 몸을 뭉쳐 호랑이 입 속으로 들어가 내장을 파먹는다고 합니다. 고통에 시달리던 호랑이가 죽으면 두 놈은 유유히 밖으로 나와 미소를 짓는다고 합니다. ‘교활한 미소’의 어원입니다.호랑이 뱃속 살을 파먹고도 미소 짓는 교·활의 간사 간악함은 말만 들어도 섬뜩합니다. 그런데 양이란 벌레는 마음을 파먹는다니 그보다 더한 인성 파괴가 없을 듯합니다. 지(智) 정(情) 의(意)의 움직임 또는 사려 분별을 뜻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지요.요즘 정치인들이 마구 내뱉는 말들에 울분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아서 들춰 본 고사입니다. 그중 정세균 국회의장의 “맨입으로 되나?”라는 발언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난전에서 물건 값 흥정하듯 여야가 주고받기로 청문회나 입법을 정하자는 취지로 들려서입니다. 김재수 농림부장관 해임 표결을 철회해 달라는 여당 요구에 세월호 특위 연장이나 어버이연합 청문회 둘 중 하나를 양보하라는 야당 요구를 절대 안 된다고 해서 한 말이라고 합니다. 때마침 김영란법 시행을 코앞에 둔 시점이어서 정 의장 발언이 더 크게 들린 것 같습니다.이권 편의나 대가 없이 맨입으로도 돌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김영란법의 취지가 아닌가 합니다. 대부분 국민들도 이 법의 근본정신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입법부의 수장이 ‘농담 삼아’ 했더라도 그런 말은 너무나 민의와 동떨어진 것 같습니다.그 말에 대응한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투쟁과 발언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정 의장이 물러나든지, 내가 죽든지…”라고 결연한 의지를 보였지만, 사퇴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습니다. 최근 “한강에 투신하겠다”는 문재인·추미애 민주당 전·현 대표들의 말들도 결과를 지켜볼 일입니다.법은 자신이 만든 법일지라도 범법을 하면 그 법에 따라 자신의 생명을 앗길 만큼 엄중하고 공평해야 법 구실을 합니다. 엄격한 법을 만들어 중국 진(秦)나라를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게 한 상앙(商)이 제 덫에 걸려 죽음에 이른 것이 한 예입니다.왕이 바뀌자 배반자로 몰린 상앙은 도망 길에 한 여관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여행권이 없는 자를 재우면 처벌 받는다”는 여관 주인의 말에 낙담하여 고향 땅 위(魏)에 망명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진으로 송환된 상앙은 끝내 거열형(車裂刑)을 당했습니다.말은 보통사람도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특히 법을 만드는 정치인은 더 신중하고 명확해야 합니다. 의사는 환자 한 사람의 병을 고치고, 스승은 수십 명 학생의 인격을 다듬지만, 정치인이 만드는 법은 만백성을 웃기거나 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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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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