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노벨 과학상 연속 수상을 보며...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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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노벨 과학상 연속 수상을 보며...

2016.10.14


개인의 영예는 물론 국가의 위상까지 격상시키는 세계 최고 권위의 노벨상이 올해로 116회를 맞이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지난 10월 3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4일 물리학상, 5일 화학상, 7일 평화상 수상자를 선정 발표하였고, 10일에는 경제학상 그리고 13일에는 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했습니다.

올해 노벨상에서 눈여겨 볼 사안 중 하나는 일본에서 2년 연속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나온 것입니다.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1949년 유카와 히데키(湯川 秀樹, Yukawa Hideki) 박사가 물리학 분야에서 처음 수상한 이래, 올해의 수상자를 포함해 물리학상 11명, 화학상 7명 그리고 생리의학상 4명으로 모두 22명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 비교는 0:22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수상자들의 업적과 수상 배경에 대해 알아봅니다. 그리고 ‘노벨상에 도전한다!’는 표어까지를 내걸으며 노벨상 수상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전망도 흐릿한(?) 우리나라 과학계의 현실도 함께 살펴봅니다. 

일본인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사람은 분자생물학자인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 進, Tonegawa Susumu; 1939년생으로 48세에 수상) 교수입니다. 도네가와 교수는 우리 몸에 침입하는 다양한 미생물이나 이물질(항원)들에 대해 면역세포에서 이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다양한 항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밝힌 공로로 1987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는 유카와 히데키가 물리학상을 수상한 지 무려 38년이나 지나 이루어진 것입니다. 도네가와 교수는 교토대학 이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수상 당시 미국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였습니다.

두 번째 수상자는 도네가와의 수상으로부터 25년이 지난 2012년에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山中 伸, Yamanaka Shinya; 1962년생으로 50세에 수상) 교수입니다. 야마나카 박사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 Induced Pluripotent Stem Cell)의 개발과 그 응용 과정을 밝힌 공로로, 이 분야에서 선구적 업적을 쌓아온 영국의 생물학자 존 거던(John Gurdon)과 공동으로 수상했습니다. 

유도만능줄기세포(iPS)란 피부세포와 같이 이미 분화가 끝난 체세포에 인위적 자극을 가해 배아줄기세포처럼 여러 조직이나 장기로 분화가 가능하게 만든 줄기세포를 말합니다. iPS는 환자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해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용 시 면역거부 반응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난자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의 배아(胚芽)를 파괴해야만 얻을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된 생명윤리 문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iPS 이용 기술은 환자에게 맞는 신약개발로 맞춤형 치료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으며, 장기이식을 통한 재생의학이나 난치병 치료 등에 널리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수상자는 2015년에 수상한 키타사토연구소의 오무라 사토시(大村 智, mura Satoshi; 1935년생으로 80세에 수상) 박사입니다. 오무라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배양기술을 이용해 방선균속(Streptomyces) 박테리아의 대량 배양에 성공하였으며, 이들 중 항생제 후보물질로 사용할 수 있는 50여 종의 균주(菌株)를 추려냈습니다. 그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970년대 후반에 머크연구소의 윌리엄 캠벨(W. C. Campbell)이 가축의 기생충 치료에 효과가 높은 아버멕틴(Avermectin)을 개발했습니다. 

그 후 아버멕틴으로부터 이버멕틴(Ivermectin)이 개발되어 사람의 기생충 치료제로 이용되며,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일대의 저개발국가에서 사상충증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 개선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오무라 박사는 이러한 공로로 2015년 윌리엄 캠벨과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한 중국의 투유유(屠, Tu Youyou) 여사와 함께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올해 네 번째로 생리의학상을 받은 사람은 도쿄공업대의 오스미 요시노리(大隅良典, Ohsumi Yoshinori; 1945년생으로 71세에 수상) 명예교수입니다. 요시노리 교수는 1988년에 현미경 관찰을 통해 자가포식(自家捕食, autophagy)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1992년 자가포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며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자가포식은 스트레스나 세균 감염 등으로 세포 내에 쌓이는 불필요한 단백질이나 손상된 세포 내 소기관을 분해하거나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산하는 작용으로 세포의 항상성 유지에 매우 중요한 생존기작을 일컫는 말입니다. 자가포식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세포 내에 노폐물이나 불필요한 단백질 찌꺼기가 쌓여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과도하게 쌓인 단백질 찌꺼기가 세포 밖으로 빠져나오게 되면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암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가포식 연구가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뇌질환이나 암과 당뇨병 등의 난치병 치료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입니다. 

이웃 일본에서는 과학상 22명에 문학상 2명과 평화상 1명을 포함헤 총25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우리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외에 아직 노벨 과학상에 접근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원인은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부족 때문이라는 것이 누누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매년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10월이 되면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과학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그러나 냄비 근성 때문인지 얼마 지나지 않으면 높아졌던 자성의 목소리의 강도가 약해지며 바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제 단기적인 성과 위주로 연구의 핵심인 질(質)보다 결과 발표의 양(量)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기초과학의 열악한 연구 환경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연구 지원에 대한 제도개선과 함께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제고와 지속적인 지원 방안이 하루속히 마련되어 정권 교체와 같은 사회적 상황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합니다. 

과학기술이 국가 발전의 중심에 우뚝 서려면 이공계 분야 종사자들의 사회적인 우대와 함께 젊은이들의 이공계 분야 일자리가 확충되어야 합니다. 지금처럼 대학생들이 공무원 시험과 교사임용고시 등에 몰리며 이공계를 기피하는 풍토에서 과연 ‘과학입국’이 제대로 이루어져 노벨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연구 지원제도의 개선과 함께 지적되고 있는 것은 교육 문제입니다. 세계 어느 다른 나라들보다 총명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정답'만을 찾아 문제를 푸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기초과학 분야에 뛰어들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나오려면 정계, 관계, 언론계, 학계 등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고 일류 기술자가 되고자 하는 비전과 꿈을 심어주는 교육 터전의 마련에 함께 나서야 합니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 그리고 남다른 생각으로 발상을 전환하는 교육 풍토의 조성으로, 노벨 과학상 수상이 꿈이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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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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