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시대의 ‘생존 배낭’ [허영섭]



www.freecolumn.co.kr

재난 시대의 ‘생존 배낭’

2016.10.12


미국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은 안전의식을 일상생활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화재나 지진, 토네이도 등의 경우 각자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어려서부터 꾸준히 교육과 훈련이 이뤄지며 새로 전입해 온 외국인 거주자에 대해서도 대피요령 매뉴얼이 배포됩니다. 대학교 기숙사나 기혼자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재해로부터 인명 피해를 줄이려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매뉴얼의 내용이 복잡하거나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평소 화재 경보기나 소화기의 위치를 알아두어야 하고 연기에 갇혔을 때는 가급적 몸을 낮추도록 하며, 토네이도가 불어 닥치면 골방에서 웅크리고 있으라는 정도입니다. 전화기에 응급구조기관 전화번호를 입력해 놓을 것과 손전등이나 라디오, 상비약 등을 미리 준비하라는 권고도 포함됩니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몸에 밴 사소한 차이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매뉴얼에서 강조하는 내용이 지역적 특성에 따라 약간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 사항은 반드시 매뉴얼의 첫머리에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위기가 닥쳤을 경우 마지막 순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겠다는 게 아니라 안전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라 여겨집니다.

이번 미국 동남부 지역을 강타한 초강력 허리케인 ‘매튜’에 대처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나는 사실입니다. 플로리다와·사우스캐롤라이나,·조지아주 등에서 20명 안팎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그나마도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인 것이라 합니다. 무려 220만 가구에 전기가 끊겼고 주택과 상가가 폭우에 잠겼으며 곳곳의 해안도로가 해일에 유실됐다는 텔레비전 뉴스의 모습에서도 매튜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지역별로 미리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비 태세에 들어간 덕분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해안지역 주민들에게 대피령이 내려져 내륙으로 긴급 피신한 사람들이 모두 300만명에 이른다는 것이고 보면 주민들의 자발적인 협조가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불어 닥쳤을 당시 1800명도 넘게 목숨을 잃었던 경험에서 터득한 학습효과라고도 합니다.

눈길을 우리 내부로 돌리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미국 허리케인보다 며칠 앞서 남부 지방을 강타한 태풍 ‘차바’로 침수된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얘깁니다. 대형 태풍이 몰아칠 때마다 상습적으로 침수되지만 마땅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방수벽을 세워야 하는데도 그렇게 될 경우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을 잃게 된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영화 장면에서나 목격했던 사태가 현실로 나타날까 봐 걱정입니다.

경주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범람을 우려해 강변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을 대피시키도록 권유했으나 차량 소유자들이 코웃음 쳤다는 뒷얘기가 들려옵니다. 이곳 주차장에 세워졌던 차량들은 결국 물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상태에서도 주민들이 정작 재난에 대해 무신경했다는 증거입니다. 이번 미국을 강타한 허리케인 매튜가 먼저 카리브해의 아이티를 거쳐가면서 1,000명 안팎의 희생자를 냈다는 얘기가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이미 규모 5.8의 강진 사태에서 경험했듯이 한반도도 이제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졌습니다. 경주에서는 여진이 계속 이어지는 데다 광주 근처에서도 다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고 하지만 경고의 의미는 충분합니다.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여객선이 바다에서 침몰하는 참사를 넘어 자칫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사태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입니다. 땅속의 가스·수도배관이 터지고, 땅바닥이 갈라지는 연쇄적인 싱크홀 사태도 초래될 수 있습니다.

지진 피해가 잦은 일본에서 그러하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생존 배낭’을 서둘러 갖추는 추세라고 합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식량과 구급약품을 마련해 놓는다는 것이지요. 재해가 발생할 경우 구호당국의 손길이 즉각 뻗어오는 것도 아닐 테고,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 기간 홀로 고립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각자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갖추는 것은 권장할 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존 배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위기 극복에 필요한 온갖 필수품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방심하면서 넋 놓고 있다가는 배낭을 제대로 챙기지도 못한 채 맨몸으로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해가 결코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경각심입니다. 거듭되는 지진과 태풍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재해를 극복하는 마지막 책임이 각자에게 주어져 있다는 사실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