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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호에 대한 단상
2016.10.04
기차를 처음 타 봤을 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해의 2월로 기억이 됩니다. 그때는 기차가 특급, 보급, 완행으로 분류가 되었을 때였습니다.대합실 안에서는 학교 교무실에서 사용하는 크기의 커다란 석탄난로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제가 탄 기차는 완행열차였는데 대전까지 2시간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25분이면 도착합니다.완행열차는 영동과 접경한 심천에서 거의 1시간 정도 대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옥천에서도 꽤 많은 시간 동안 안내방송도 듣지 못하고 무한정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싸라기눈이 휘날리는데 창문 밖에서 광주리의 귤이며, 달걀, 빵 같은 걸 파는 소년들이 나타났습니다.손님들은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낚싯줄로 만든 꾸러미에 몇 개씩 들어 있는 귤을 사거나, 달걀을 사기도 했습니다. 기차 밖에서만 간식거리를 파는 것이 아니었습니다.홍익회 직원이 사이다며, 캐러멜, 빵, 과자 등이 들어 있는 광주리를 어깨에 메고 통로를 가득 메운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팔았습니다.서울까지 동행을 하는 친척 분께서 사이다와 달걀을 사셨습니다. 지금처럼 차갑게 냉장이 되거나 톡 쏘는 맛이 강할 리가 없습니다. 미지근하고 조금은 쓴맛이 나는 사이다지만 달걀과 함께 먹으면 정말 맛이 있습니다.기차가 출발 할 무렵 트림이 나왔습니다. 반대편에 앉은 손님은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지만 저는 입을 통해 배출되는 가스가 시원하기만 했습니다. 그때는 2명이 앉아 갈 수 있게 만든 좌석에 3명 많게는 4명이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 자리에 앉지를 못해서 통로를 가득 메운 것도 부족해서, 짐칸에 올라가 누워 있는 승객도 있었습니다.누가 방귀라도 뀌면 지독한 냄새가 땀 냄새에 섞여 코를 싸매쥐게 만듭니다. 그래도 어느 누구 나 ‘어떤 버르장머리 없는 작자가 방귀를 뀌었냐’ 라며 노려보는 승객들은 없었습니다.중절모를 쓴 노인분들은 점잖게 담배를 피우시기도 하고, 젊은 여자가 뽀얀 젖통을 드러내고 아이에게 젖을 먹이기도 했습니다.마냥 대기를 하고 있던 기차가 긴 기적 소리를 내며 천천히 움직이니까 승객들이 일제히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야! 기차 간다” 라고 손뼉을 치거나 벙긋 웃음을 머금기도 했습니다.저의 첫 기차 여행은 8시간 만에 끝이 났습니다. 서울역에 내리니까 염천교 쪽으로 포장마차가 줄을 잇고 있는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친척 분은 저를 잃어 버릴까봐 손을 꼭 잡고 어둠속에 허연 입김을 날리며 버스를 기다리셨습니다.그 나라의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 그렇지 않으냐를 볼 수 있는 점은 국가가 소수보다 다수의 국민들을 위해 얼마나 배려를 하고 있느냐일 것입니다.KTX를 이용하는 승객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승객들입니다. 무엇보다 대도시를 근거로 해서 목적지가 있는 승객들입니다. 무궁화호는 대도시에 살지 못하거나 경제적으로 KTX를 이용할 수 없는 승객들입니다. 최첨단 열차라 불리는 고속열차를 외국으로 수출을 하는 우리나라의 무궁화호는 세월이 갈수록 늙어가고 있습니다.기차 내부가 낡고 녹이 슨 것은 양반입니다. 재수가 없으면 의자 등받이가 저 혼자 뒤로 넘어가는 좌석을 만나기도 합니다. 기차의 앞문과 뒷문 색깔이 다른 것도 흔하고, 가끔은 정전이 됩니다.열차 카페라 불리는 칸의 홍익회 직원을 대신하는 자판기는 가끔 고장이 나 있기 일쑤입니다. 자판기 안으로 보이는 상품의 가격은 편의점보다 턱없이 비싸고, 승무원들은 무임승차자를 발견하기 위해 수시로 PDA로 점검을 합니다.철도공사는 언제 대형사고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고물 기차가 선로를 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로 재정난을 앞세웁니다.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고, 플랫폼에 고급스러운 승객대기실이 속속 들어서고, 역사 안의 편의시설 면적은 줄고 카페면적은 늘어 갑니다.그 돈의 일부라도 서민들이 이용하는 무궁화호에 투자를 했더라면 ‘1호차 오른쪽 앞문은 고장으로 이용할 수 없으니 뒷문을 이용’ 하라는 안내방송은 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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