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한방 튀겨야죠"...'한방'만 노리는 우리나라 사회

카테고리 없음|2016. 9. 30. 17:57


빚내서 묻지마 투자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모두 대박만 바라보는 현상

경기 침체가 계속, 성공 보장 비관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주소” 지적


고질적인 '한탕주의 습성'과도 깊은 연관관계


#1 부동산 경매

지난 28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부동산 경매 현장. 경매 입찰가를 얼마 적어내면 좋을지 묻는 전화 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감정가 8억원짜리 강남 서초구 소재 아파트의 입찰 시간이 다가오자 갑자기 200석 규모의 법정 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밖에서 전화를 돌리던 사람들이 차례차례 법정에 자리를 잡았다. 입찰자는 모두 6명. 집행관이 최고가를 적은 상위 3명의 이름을 호명하자, 탄식과 환호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래픽=이진희 디자이너


이날 관악구 신림동 매물을 낙찰받은 김모(46·사당동) 씨는 "법원 경매로 상업지역 상가 6개를 손에 쥐었다"면서 "요즘은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입지 좋은 부동산 같은 경우엔 감정가의 100% 이상 줘야 낙찰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기가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조금이라도 더 높은 수익을 찾으려고 ‘로또식 재테크'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은행 예금 금리는 쥐꼬리만큼 낮아진 데다 모아둔 돈은 얼마 없다 보니 초조한 마음에 경매나 테마주, 비상장 주식 같은 위험성 높은 투자처에서 한방을 노리는 것이다. 아무런 지식도 없으면서 힘들게 모은 목돈을 한 번에 날릴 수 있는 위태위태한 모험도 마다하지 않는다. 


부동산 경매는 ‘좋은 매물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낙찰 받으면 수억원을 벌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인기다. 부동산 경매에 돈이 몰리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몇년새 투자자들이 급증했다. 


지난 2012년 부동산 경매의 평균 응찰자 수는 5.1명이었다. 2013년에는 6.5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다음 해는 7.9명까지 늘어났다. 올해 8월엔 9.6명으로 늘어 경매 매물 한 건당 평균 10명이 참여하는 상황이다. 


이수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박사는 "부동산 경매는 상당한 고수익을 노릴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인 반면 섣불리 뛰어들 경우 그만큼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며 "권리분석, 매물에 대한 시장 가치 등을 면밀히 따져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 빚내서 주식 한방 노리는 개미… 투기 종목 투자 급증

한방을 노리는 세태는 주식 시장에서도 드러난다. 주가 상승에 대박을 기대하고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개미(개인 투자자)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코스피)과 코스닥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고 합계는 현재 7조8000억원이다. 이는 연중 최고치다. 지난해 말(6조5237억원)과 비교하면 15% 넘게 증가했다. 신용거래융자는 증권사가 주식을 사고자 하는 개인에게 이자를 받고 대출해 주는 금융 서비스다. 금리는 연 7%대로 제도권 금융사 대출 상품 중 고금리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렇게 빚내서 주식에 투자하는 자금이 대부분 테마주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3일 전체 주식시장 거래량 상위 종목 20개 중 지엔코와 보성파워텍, 큐로홀딩스, 고려포리머, 큐로컴, 광림 등 6종목이 반기문 UN사무총장의 테마주였다. 고려포리머를 제외하면 모두 코스닥 상장사다.


증권가에선 신용거래융자를 통한 주식 투자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고 부른다. 주식 시장이 상승세라면 원리금을 갚고도 수익을 낼 수 있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빚더미에 앉을 수도 있다.


한 증권사 직원은 “요즘같이 시장 변동이 큰 상황에 빚을 내 주식 투자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빚으로 도박을 하는 것과 같다”며 “특히 코스닥시장에 신용거래융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투자자들이 그만큼 한방을 노린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급 빌라·수퍼카에 홀려 비상장 주식에 투자 

‘청담동 주식 부자’ 사태로 불리는 이희진(30·구속)씨의 장외주식 사기 사건도 대박을 노리는 사회 현상의 단면으로 꼽힌다. 이씨는 허위정보로 투자자들을 끌어모은 뒤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씨는 강남의 호화 건물, 여러 대의 수퍼카, 잦은 방송 출연 등으로 인지도를 쌓은 뒤 투자자를 대거 끌어 모았다. 그는 ‘고수익·원금보장’을 내세우며 투자자로부터 7개월간 240억원을 투자 받았다. 이 돈은 대부분 상장되지 않은 장외주식에 투자됐다.


투자자들이 비싼 값에 사들인 장외주식은 앞서 이씨가 싼 값에 매입한 주식이었고, 투자자들의 돈은 그대로 이씨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이씨는 장외주식에 투자하는 과정에서 시세를 조작한 혐의도 받고 있다.


투자자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검찰이 조사에 나섰고 결국 이씨는 2014년부터 허위정보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뒤 부당한 이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재력 자랑하던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사진=연합뉴스


이씨의 회사는 ‘부띠끄’로 불리는 유사 투자자문업체다. 유사투자자문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투자자문 정도의 한정된 영업활동만 허용된다. 이씨처럼 고수익·원금보장을 미끼로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하는 것은 불법이다.




올 들어 유사수신 행위로 의심되는 사례들이 지난해보다 크게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유사수신 혐의업체 신고 건수는 393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56건)과 비교하면 2.5배 증가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모두 대박만 바라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성공을 위한 사다리가 없어진 우리 사회의 씁쓸한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송기영 기자 김형민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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