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게 마이크를 주세요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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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에게 마이크를 주세요

2016.09.26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학부모 공개수업을 참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의 방문을 즐거워하는 아이의 기쁜 표정을 읽으며, 선생님께 조용히 목례를 하고, 창가 쪽 맨 뒤 빈 책상에 아이들처럼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선생님의 강의법과 학생들의 태도를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5분도 안 되어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나무와 철제를 조립하여 만든 교실 의자의 나사가 느슨해져, 학생들이 자세를 고쳐 앉을 때마다 삑삑거리는 엄청난 소음이 계속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열어 놓은 창문 밖에서는 체육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교실 안에까지 점령할 기세였고, 선생님은 창밖을 바라보거나 조는 아이들을 깨우면서 수업을 이끌어 나가시느라 무척 애를 쓰셨습니다.

선생님은 주변의 그 많은 환경적 방해물을 뚫고 학생들에게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성량을 높이셨습니다. 하지만 뒷자리는 수업에 집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가 있던 곳에서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일률적으로 높인 선생님의 목소리는 수업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어렵고 호감을 주기도 힘들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나아가 선생님의 목 건강까지 심히 염려되었습니다. 주 5일 동안 약 20시간 전후를 수업하는 중등 교사들의 목 건강은 정말 걱정이 되는 일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일이 얼마나 기를 뺏기는 일인지, 체력소모가 되는 일인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통감하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수업공개 학부모 만족도 조사>를 작성하는데 적잖은 망설임이 생겼습니다. 좋은 수업을 만들어 가기 위한 취지로, 교사의 자질을 묻고 있었지만, 우선적으로 조사되고 개선되어야 할 점은 교육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수업의 분위기는 수업의 질 이전에 확보되어야 할 기본사항이며, 그래야 수업의 질도 충분하게 학생들에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제안하고 싶은 것이 교사의 마이크 사용입니다.

저는 대학에서 주로 미술실기 수업을 하지만, 이론수업을 할 때는 넓게 개방된 실기실이 아니라 강의실을 애용합니다. 학생 수에 맞춘 적당한 규모의 방음이 되는 공간에서 마이크를 사용하여 이야기를 하듯 강의하면 학생들의 시선이 제게 온전히 집중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말하기로 인한 체력 소모도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강의를 할 때 교탁을 지키고 있기보다는 강의실 좌우로 걸음을 움직이고 학생들의 자리 근처로 깊숙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수업분위기가 꽤 환기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럴 때에도 마이크를 들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목소리가 잘 전달됩니다.

지금의 아이들과 똑같이 공교육을 받아본 학부모들도 학습 분위기를 짐작하기에 내 아이가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의 설명을 잘 듣고 오길 바랍니다. 자리가 중요한 것을 알기에 담임 선생님들은 자주 학생들의 자리를 바꿔주기도 합니다.

마이크를 사용하게 되면 교사들은 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수업을 할 수 있고, 학생들은 공평하게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마이크 사용이 가능하려면 교실의 방음을 위해 창과, 출입문, 에어컨과 환기시설 등 제반 시설의 변화도 필요합니다. 시설개선도 없이 교사들에게만 교육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고, 교육의 후진성을 지속시킬 뿐입니다.

사교육 부담 해소를 위한 정책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학교 교육만으로도 충분하도록, 공교육 정상화와 방과 후 교실의 효율적 운영 방안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지만 그 중 교육환경에 대한 보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세대의 교육에 힘을 보태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교사에게 마이크를 주세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안진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삶의 중심은 그림이지만 그림과 함께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은 글이다. 꽃을 생명의 미학 그 자체로 보며 최근에는 ‘꽃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당신의 오늘은 무슨색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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