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괴로움 : 어떤 공공(公共)의 공간 [정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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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괴로움 : 어떤 공공(公共)의 공간

2016.09.21


제목을 가급적 덜 불쾌한 느낌으로 잡다 보니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고상한 느낌을 줄 듯도 합니다. 그 공공의 공간이 다름 아닌 공중(公衆) 화장실이기 때문입니다. ‘화장실 문화’라 해서 공중 화장실을 집 화장실보다 더 근사하고 쾌적하게 만들자는 운동이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으로 압니다. 누구나 바깥에 나가서는 이따금 이용해야 하는 공간인 만큼 쾌적한 화장실을 만들고 유지하자는 것은 바람직한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좋은 움직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공중 화장실에서 괴로운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이용하는 데 따른 통상적인 악취를 훨씬 넘어서는 악취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글로 쓴다는 것 자체가 좀 민망하기도 합니다만 이렇게라도 공개적으로 지적을 하는 것이 화장실 문화를 지키고 높이는 일일 것 같아 몇 마디 쓰게 되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서 어쩌다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습니다. 지은 지 오래지 않은 공항 전철 역사 안이라 상당이 청결할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심한 악취가 났습니다. 다른 데에 비해 공간도 넓은 편에 변기도 깨끗하고 화장지도 잘 비치되어 있는데 구석에 놓인 휴지통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악취는 바로 여기서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나가버릴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코를 막아서 될 일도 아니라서 정말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을 겪다가 나왔습니다. 전철뿐 아니라 도로상의 대합실이나 휴게실, 영화관, 도서관, 식당, 카페, 학원을 비롯한 모든 공공의 공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한때는 화장지가 아닌 종이를 사용함으로써 변기가 막히는 경우가 있어 일부러 휴지통을 이용토록 권장하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화장지의 품질이 높아져서 웬만큼 무리하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쓴 화장지는 그대로 배수관을 통과해 나가게 돼 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공공장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만에 하나 사용된 휴지로 인해 배수관이 막히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한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은근히 권유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고객이 멋대로 버려도 나는 그만이라는 식인가 봅니다. 그러나 사용자나 청소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불쾌감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런 행태는 하루 속히 시정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드물게 겪는 이런 참을 수 없는 불쾌감은 후각적 기억에 한동안 남아 우리의 정서를 괴롭힌다는 점에서 ‘감각의 트라우마’라고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불쾌감을 겪은 다음에는 다시 그 장소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겪으면서도 그 괴로움을 토로하지 않아 방치되고 있는 이런 유(類)의 불쾌감과 불결함은 사회 전체적으로 위생에 대한 수준을 낮추는 것입니다. 시민들이 이런 불쾌함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게 어떤 면에서는 소극적인 공공복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화장실 문화로 돌아와서, 요즘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지만 대부분의 공공장소에서 남녀 화장실 공간의 비율이 1:1로 되어 있는 것은 여성의 편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실질적 불평등 현상이므로 조속히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대개 작은 업소에서 볼 수 있는 남녀 구분 없는 화장실은 범죄의 현장이 되기도 했던 만큼 시급한 개선책이 요구됩니다. 악취가 주는 괴로움이란 점에서는 가급적 화장실을 넓게 만들어 사용자들 간에도 악취가 전해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괴로움이나 불쾌함이 가장 현저한 곳 중 하나가 바로 서울 광화문의 정부중앙청사 건물일 것입니다. 서서 일을 보는 사람들과 앉아서 일을 보는 사람들 간에 얇은 문짝 외에는 사람 한둘 지나갈 수 있는 공간밖에 없어 악취가 요즘 아이들 말로 장난이 아닙니다. 대부분 공공장소의 화장실들이 대체로 이런 열악한 형편에 놓여 있을 것입니다.

쾌적한 공중 화장실은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기도 합니다. 저의 경험으로서는 스위스 열차의 화장실이 집 화장실보다 더 청결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사용하는 사람 각자가 원래의 청결한 상태가 유지되도록 작은 수고를 한다면 화장실을 포함한 공공시설들이 항상 청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스위스는 청결뿐 아니라 다른 모든 공중도덕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세계 일류국가입니다. 일본의 경우에도 공중 화장실이 우리보다 훨씬 청결할 뿐 아니라 어떤 곳은 비데(bidet)까지 설치되어 있음을 봅니다. 저는 비데야말로 다른 문명의 이기(利器) 못지않게 나날이 인간에게 작은 행복을 가져다주는 장치라는 생각을 합니다. 제 아무리 왕후장상이라 하더라도 비데는커녕 수세식 변기도 없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매일 겪을 수밖에 없었던 괴로움과 불편함을 생각하면 현대에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호사를 누린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입니다. 

기왕 화장실 얘기를 하는 김에 꼭 지적할 게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두루마리 화장지 사용에 관한 것입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어떤 식당에 가서 기겁을 하는 것이 바로 두루마리 화장지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사용하는 행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화장지란 화장실에 있어야 하는 것인데 이 화장지가 식탁 위해 버젓이 자리하고 있으면 어쩐지 비위생적이란 생각에 더하여 밥을 먹으면서도 화장실에 관련된 불쾌한 연상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앞당기고자 하는 마당에 공공시설과 공중위생을 맡은 각 기관들은 이런 것을 바로잡는 데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아주 사소한 일처럼 보여도 작은 것부터 바로잡아 나가야 큰 것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공중위생, 공중도덕과 공공질서를 바로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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