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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앞에 인간은 무력했다
2016.09.01
오늘은 9월 1일입니다. 8월 폭염의 기억이 뜨거웠기 때문일까요,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일까요. ‘9’란 숫자를 보기만 해도 가을이 연상되고 서늘해지는 기분입니다.8월은 세계 곳곳에서 폭염과 폭우 그리고 한발이 기승을 부렸고 이탈리아에선 큰 지진이 발생하는 등 자연 재난이 세계를 덮친 한 달이었습니다.폭염과 전기요금 누진제 논쟁으로 시민들이 아우성을 치던 8월 24일, 이탈리아 중부 아마트리체와 그 주변 도시에 리히터 규모 6.2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도시가 폭격을 맞은 듯 파괴됐고 280여 명의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 속에 깔려 죽었습니다.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이탈리아 지진 피해 현장을 보았습니다. 건물들은 폭삭 주저앉았지만 도시 주변 경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산골짜기를 따라 붉은 색 지붕 집들이 빼곡하게 늘어선 시가지를 푸른 숲이 감싸 안은 운치 있는 도시 풍경이 참 아름다웠습니다.서양 언론이 전하는 것을 보니 아마트리체 주변 지역은 교회와 문화유적이 많은 중세풍 도시로 이야깃거리를 많이 안고 있는 곳입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사진엽서의 고장이자 로마 사람들이 즐기는 ‘알아마트리치아나’ 스파게티가 중세 목동들에 의해 개발되어 이탈리아 사람들의 입맛을 높여놓은 고장이기도 합니다. 멋을 아는 이탈리아 관광객들이 아마트리체를 찾는 이유는 시끄러운 로마, 사람이 북적거리는 나폴리, 너무 뻔한 투스카니를 피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신문 기사에 지진의 참상을 경험한 어떤 관광객의 말이 이렇게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어제는 파라다이스이더니 오늘은 ‘단테의 인페르노’구나.” 인페르노는 14세기 이탈리아 작가 알렉기에리 단테가 쓴 ‘신곡’의 ‘지옥편’을 말합니다.인명피해 규모나 리히터 강도로 볼 때 이탈리아 중부를 뒤흔든 이번 지진은 5년 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에 비하면 그리 큰 규모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지진이 이탈리아 사람은 물론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아쉬움을 남기는 것은 아마 로마제국과 르네상스 문화의 향기, 즉 인간이 쌓아놓은 아름다움이 한순간 종잇장처럼 구겨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외신이 전하는 것을 보면 이탈리아 지진 피해가 큰 이유가 중세에 지은 건물들을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새로 개수할 수 없도록 한 문화재 보호 규정 때문이라고 합니다.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등 고도의 기술문명을 발전시킨 인간이지만 아직도 지진을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는 무력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로마 제국의 번성하던 도시 폼페이가 화산재 속에 묻혀버린 날도 서기 79년 8월 24일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이 들으면 펄쩍 뛸지 모르지만 1,900여 년 전에 비해 오늘날 지진이나 화산폭발을 정확히 예측하는 기술 능력이 그리 많이 발전한 것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나아진 게 있다면 재난이 발생한 후 통신시설과 중장비를 동원하여 인명을 구출하는 데서 옛날보다 효율적이라는 정도입니다.올여름 우리나라의 살인적인 폭염도 인간의 예측능력을 조롱했습니다. 기상청은 8월 내내 기상 오보를 한다는 국민적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상청이 더위가 수그러진다고 예보했다가 틀린 경우가 여러 차례였습니다. 왜 기상청의 폭염 예측이 번번이 빗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날씨는 아직 천기(天機)인가 봅니다.올해 폭염에 한국 사회는 무력했습니다. 우선 예측 능력에 한계를 보였고 폭염에 대비하지도 못했습니다. 폭염이 시작되자 에어컨 전기요금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그동안 손질하지 않고 비합리적으로 묵혀두었던 전기요금 체계가 국민의 분노 대상이 되었습니다.며칠 사이에 폭염이 서늘한 가을 날씨로 변했습니다. 곧 폭염의 기억도 잊어버릴 것입니다. 내년 여름 다른 형태의 폭염에 시달리며 인간은 자연 재난 앞에 다시 무력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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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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