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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헤는 밤
2016.08.31
바로 엊그제만 해도 계속되는 폭염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만 해도 열대야에는 도시에서도 집 앞 골목에 돗자리를 깔아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더위를 식히는 풍경이 낯설지 않았습니다.모기약도 귀하던 시절 시골에서는 노을이 산 너머로 꼬리를 감출 무렵이면 어느 집이나 저녁 식사를 마칩니다. 아버지나 덩치가 큰 형들은 미리 준비해 놓은 생풀로 마당 가운데 모깃불을 피웁니다.생풀이 타는 비릿하면서도 떫은 냄새가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오르기 시작하면 마당에 멍석이 깔립니다. 요즘에는 시골에 가도 산골이거나 강가가 아니면 별을 보기 힘듭니다. 그 시절에는 어느 시골이라도 바람이 크게 불면 별들이 우수수 떨어질 만큼 거대한 밤하늘의 스크린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였습니다.가족들, 혹은 이웃에서 마실 나온 아주머니나 아저씨, 제법 나이가 차서 중신어미가 들락거리는 옆집 누나랑 멍석에 누워 별일 헵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이 아니더라도 무수하게 많이 떠 있는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별을 따는 꿈을 꾸게 됩니다.어머니는 반딧불이를 잡아 달라고 떼를 쓰다 슬그머니 잠이 든 막내를 무릎에 눕히고 설렁설렁 부채질을 하십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어렸을 때 겪었던 고생담을 풀어 놓거나, 사람은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고, 남을 험담해서도 안 되고, 콩 한 쪼가리라도 같이 나누어 먹어야 한다며 조용조용히 말씀을 하십니다.가끔 아버지가 당신의 말을 확인하려는 의도로 알았느냐? 라고 묻는 목소리가 희미해질 무렵이면, 밖에서 자면 감기에 든다며 어깨를 흔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감나무가 저 혼자 서 있기가 심심해서 수시로 가지를 흔들며 방해를 해도, 잠결에 들은 아버지의 말씀은 바람에 흐트러지는 잔소리로 기억되는 법이 없습니다. 설령 아버지의 말씀이 현실과 엇박자를 이루고 있더라도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한 가정의 근본이 선다는 것은 가장의 목소리가 얼마나 가족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 사회가 올바르게 간다는 것은 지도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사회구성원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꿈을 실어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위계질서가 없는 사회는 사상누각과 같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위계질서가 무너졌을 때 얼마나 뼈아픈 고통을 겪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언젠가부터 이 사회에 위계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아니, 위계질서라는 말을 하는 계층은 고정관념에 젖어 있는 구세대라며 선을 그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위계질서가 파괴되는 현상은 정보의 유입이 다변화되고 쉬워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세상이 변해서 정보의 유입 양태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가 있어서 윗세대들보다 젊은 세대들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노력하고, 저축하고, 근면하지 않으면 잘살 수 없다는 윗세대들과 다르게 더 많은 정보를 안고 있는 젊은 세대는 노력보다는 기회를 중요시하는 경향이 짙습니다.중요한 점은 무조건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젊은 세대가 물질적인 정보를 얻는 데 있어서는 훨씬 뛰어나지만 인문학적 정보를 찾는 데는 인색하다는 점은 불행입니다.작금에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 주역들이 인문학적 정보에 좀 더 주력했더라면 정직한 마음으로 열심히 삶을 꾸려나가는 많은 국민들에게 허무를 안겨주지는 않았을 겁니다.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합니다. 정상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을 가졌다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에 대해서는 많은 가르침을 주었을 겁니다.그런데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선택해서 파국으로 치닫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위계질서를 무시해 버린 결과 사상누각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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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월간 "한국시" '억새풀' 등단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앉은좁쌀풀 (현삼과) Euphrasia maximowiczii
언제 또다시 지리산 종주 길을 나설 수 있을까? 설레는 마음과 다시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마음으로 나선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지리산 종주 산행 중세석평전에서 만난 앉은좁쌀풀입니다. 땡볕 내리쬐는 전례 없는 가뭄과 더위 속에서 종주 산행길이 고단하고 힘들다 보니 아무래도 주변의 많은 꽃에 눈길 주지 못하고 지나치기 일쑤인데 우거진 수풀 더미 속에서 묘하게도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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