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EU 탈퇴의 교훈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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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EU 탈퇴의 교훈

2016.08.30


지난 6월에 국민투표로 유럽연합(EU)에서 탈퇴를 결정하여 세계적 충격의 진원지가 된 영국을 최근 다녀왔습니다. 경제에 대한 걱정에는 국경이 없다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탈퇴파의 핵심적 주장은 영국이 회원국으로 남아있는 한 회원 국민의 역내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는 EU의 원칙 때문에 유입 인구를 통제할 수 없으니 탈퇴해서 관련 주권을 회복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경제난으로 일자리가 귀해지면서 동유럽 저소득 국가로부터의 인구 유입에 대한 부정적 민심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라는 선동도 있었습니다. 이제 공식적 탈퇴 절차를 언제 개시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영국이 EU를 탈퇴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경제 분야 이슈 두 가지를 짚어 봅니다. 첫째, 국제금융 중심지로서의 위상이 크게 흔들릴 개연성입니다. 런던에서는 19세기 대영제국시대 이전부터 국제금융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금융업을 포함하는 서비스 산업의 중요도를 보여주는 한 지표는 서비스산업 수출이 국민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2014년 영국의 이 비중은 12%를 넘어 어느 선진국(미국은 약 4%)보다 높습니다.

다국적 금융회사들이 어디에 입지하느냐를 결정하는 데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직원들의 정주 여건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런던이 매력적인 국제적 도시인 것은 이번에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8월에만 해도 로얄 알버트 홀에서 매일 BBC Prom (promenade concert를 줄인 말) 연주회, 인근 국립과학박물관의 레오나드 다 빈치의 발명품 전시회, 또 국립도서관의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입장료가 무료인 각종 미술관 및 박물관 등 문화적 즐길 거리도 풍성합니다.

그런데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다른 조건’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주여건보다도 수익이 나는 영업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느냐가 입지선정의 최우선 고려 사항입니다. 만약 런던에서 EU 회원국들이 발행한 국채나 유로화 관련 금융상품을 거래할 수 없게 된다면 그곳을 근거지로 삼는 금융사가 줄게 됩니다. 더 나아가 EU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하는 영국의 서비스수출에 관세를 부과한다면 런던 소재 금융사들의 수익에 심각한 타격이 됩니다. 향후 EU가 탈퇴 협상에서 자유로운 금융자본의 이동은 허용하되 사람의 이동은 통제하겠다는 영국의 입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리 만무합니다. EU 회원국들도 자국의 금융시장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 하니까요.

두 번째는 기업 활동과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입니다. EU탈퇴 진영은 탈퇴 이후 자국에 위치한 기업들이 EU의 부담스러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영국이 개별적으로 여러 교역 상대국과 더 나은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을 수 있어서 탈퇴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과 영국의 무역은 한국이 EU와 체결한 FTA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EU의 30개 가까운 국가들의 요구를 다 반영하였으니 기존 협정의 내용이 영국의 우선순위와 다를 수 있습니다. 새로 안성맞춤 협정을 맺으면 더 이익이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설령 규제의 부담이 경감된다고 해도 외국 기업들이 대거 들어오려면 영국에서 생산된 제품의 EU 시장 접근이 용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법적으로 영국이 EU에서 공식적으로 탈퇴할 때 (최소 탈퇴협상 개시 후 2년)까지 다른 국가들과 FTA를 체결할 수 없는 처지입니다.

예상되는 긍정적 효과가 크다면 EU에서 탈퇴를 서둘러야 하는데 영국 정부는 서두르지 않으며 절묘한 방도를 모색하는 모양새입니다. 7월에 출범한 새 내각에는 탈퇴 진영 대표주자 3명이 외교 · 통상관련 장관으로 입각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공언하던 혜택의 시현을 위해 신속한 탈퇴를 추진할 수 있을 텐데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요즘 담당 부처간 통상관련 업무 쟁탈 논쟁으로 바쁘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대선 후 익히 보았던 일입니다.

영국의 국민투표는 세계화에 따른 피해의식의 확산, 폐쇄적 경향의 확산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또 이를 이용한 정치인들의 선동적 행태에 대한 경고도 있습니다. 거대 담론 말고도 주는 시사점이 있습니다.

작금 반덤핑을 구실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무역적인 행태가 미국과 중국 등에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무역이 중요한 소규모 개방경제국인 한국이 의지할 수 있는 중요한 기둥은 여러 나라들과 체결한 FTA인데 이 틀을 가능한 한 잘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약 5년 전부터 중소기업들의 FTA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관련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원과정의 설립을 지원하던 사업이 내년에 종료된다고 합니다. 종종 정책의 연속성보다는 그럴듯한 새 사업을 발굴하여 언론에 주목 받고, 대통령께 보고하는 것이 정부 부처의 최우선 관심사인 듯 보이기도 합니다.

지지부진한 세계경제 여건은 실사구시를 더 중요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꾸준해야 할 일에는 시류를 타느라 변덕스럽고, 민첩해야 할 일에는 기득권 보호나 명분으로 굼뜬 것은 아닌지 곱씹어 볼 일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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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 개방 경제의 통화, 금융, 거시경제 현상이 주요 연구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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