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함은 지향해야 할 복지이며 품격이다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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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함은 지향해야 할 복지이며 품격이다

2016.08.16


현대건축의 거장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 1886~1969, 독일태생 미국인)가 남긴 “적은 것이 많은 것(Less is more)”이란 명구를 자주 반추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우리 사회가 쾌적함의 의미를 상실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독일의 한 도시 공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서울에서 도착한 비행기의 승객이 기다리고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자, 초조한 마음에 공항 안내소를 찾아 출국장 내부의 승객과 연락할 방법이 없겠느냐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아주 난처해하면서 “아시겠지만 공항 안에서는 확성기 사용이 절대 금지되어 있어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그 말을 듣고 깨우침과 동시에 세계 주요 공항이 하나같이 왜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국내 공항 상황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국내 공항을 이용할 때면 시끄러운 환경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바로 몇 주 전 제주공항 탑승 대기실에서 생긴 일입니다. 대기실이 혼잡할 정도로 많은 승객이 탑승구 주변에 모여 있는데, 확성기에서는 끊임없이 고성의 안내 방송이 터져 나왔습니다. 어느 비행기 편을 이용할 탑승객은 어느 출구를 이용하라는 방송인데, 우리나라 말이 끝나면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이어졌습니다. 심지어는 10여 명의 여행자 명단을 일일이 부르며 어느 출구로 빨리 모이라는 특별안내까지도 했습니다.

이러한 안내 방송은 거의 쉬지 않고 되풀이되는데, 정말 짜증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옆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외국인 중 한 명이 신경질적인 큰 소리로 “입 닥쳐!(Shut up!)”라는 불평스러운 욕설을 내뱉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자, 어색해하며 천장에 부착된 확성기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모두가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무언의 응원을 보냈지요.

그러고 보니 탑승 대기실의 천장 높이가 250cm 정도밖에 안 돼 키가 큰 승객에게는 바로 머리 위에서 ‘왕왕’거리는 소음으로 아마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확성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소음 표준치를 훨씬 넘어 표준 개념은 아예 무시된 상태였습니다.

아마 공항 최고 책임자가 탑승 대기실에서 복잡한 시간대에 10분 정도만 머물렀어도 이런 상황은 개선되었을 것입니다. 현장에 있으면서도 굉음 수준의 환경 공해를 감지하지 못했다면, 책임자의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아마도 ‘높으신 분’은 특별 대기실에 있다가 우아하게 탑승하느라 이런 문제를 전혀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어찌 됐든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항 안내 방송의 경우 국제공항인 인천공항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다국어로 굉음에 가까운 안내 방송이 높은 천장에서 반향이 되어 내려옵니다. 그리고 탑승 지역에 들어가면 안내 방송은 더욱 극성을 부립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시내 지하철도 시끄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도착역을 안내하면서 하차할 문이 어느 쪽에 있다고까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역시 영어는 기본에 특정 역에서는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가세하면서 말이지요.

거기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슨 백화점이나 병·의원을 찾아갈 사람은 어떤 출구를 이용하라고까지 안내합니다. 공(公)과 사(私)가 혼재하는 우리 사회의 거울을 보는 것 같아 불쾌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럼 외국 국제공항의 안내는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요? 비전문가인 필자의 상식 수준에서 보면, 모든 안내는 청각에 의지하는 알림 수단인 오디오(음성) 시스템에서 시각에 의지하는 비디오(영상) 시스템으로 교체한 지 오래됩니다. 공항 내외 공간 구석구석에 설치한 모니터 화면을 통해 소리가 없는 안내 시스템으로 전환한 것이 우리와 아주 다른 점입니다.

그들은 생활환경에서 소음 공해에 대해 일찌감치 터득한 것입니다. 그 유명한 파리 지하철은 ‘철제 바퀴’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을 극소화하기 위해 자동차처럼 고무 타이어 바퀴로 교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착역에 대한 안내 방송은 짧고 선명해 얼마나 쾌적한지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음 공해를 극복하는 것은 높은 차원의 복지임을 깨우쳤습니다.

얼마 전 호주 시드니 열차 중 “핸드폰 사용, 음악 듣기, 동행과 대화 나누기 등이 제한되는 ‘조용한 객차(Quiet carriage)’가 등장했다는 소식(신아연, 자유칼럼, 16. 6. 17)을 듣고 다시 한 번 ‘쾌적함의 복지 개념’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사회가 현대건축의 핵심개념의 하나인 ‘적은 것이 많은 것(Less is more)’이란 맥락에서 필자는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많은 것은 낭비다(More is waste)”라고 주창하렵니다. 시끄럽고 어수선한 환경에서는 우리가 지키며 지향해야 할 덕목인 사회 품격도 기대할 수 없어서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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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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