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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값은 무죄, 맛은 유죄
2016.08.04
요즘처럼 푹푹 찌는 날엔 아침부터 책보따리를 싸서 동네 커피숍이나 카페로 향합니다. 7월 들어서부터 허구헌 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니 피서지가 따로 없습니다. 이 나이에 대학생을 비롯해서 ‘공시생’ 및 기타 ‘취준생’들과 묘한 자리 쟁탈전을 벌이자니 ‘아줌마도 책을 읽나, 뭐 하는 아줌만가?’ 하는 젊은이들의 수근거림이 들리는 듯도 합니다. 하기사 폭염 때문만은 아닙니다. 동네가 동네인지라 평소에도 카페의 면학 분위기는 도서관을 방불케 합니다.내가 사는 곳은 신림동 고시촌. 그나마 카페를 도서관 삼는 사람은 거의 나 하나고 나머지는 독서실로 이용합니다. ‘카페의 독서실화’는 고시촌의 진풍경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좁디 좁은 거주 공간을 잠만 자는 용도로 쓸 수 밖에 없는 원룸 생활자들에게 동네 카페는 공부방이자, 건넛방이자, 사랑방이자, 안방이자, 거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예, 숫제, 차라리 자기 집인 것이, 24시간 운영하는 카페도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서울대 학생들의 시험 기간이면 카페 분위기는 정숙을 넘어 숙연하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때에 지인이나 친구를 집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간 그야말로 낭패입니다. 빈자리가 없기도 하거니와 행여 자리가 있다 해도 그 분위기를 깨고 커피나 차를 마시며 감히 대화를 나눌 엄두나 용기는 나지 않습니다.커피숍이나 카페가 무엇 하는 곳인가요? 서울역 대합실이나 도떼기시장까지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입을 열고 말을 섞을 수는 있는 공간이 아닌가요? 이럴 때 저는 주객전도랄지, 언어도단이랄지, 적반하장이랄지 등등 말도 안 되는 말을 주워 섬기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대한 느낌을 말하고 싶어집니다. 빈자리가 있음에도 손님을 놓칠 수밖에 없는 주인의 ‘대략 난감’, 망연자실한 표정을 애써 외면하며 지인과 저는 숨조차 죽인 채 눈짓, 손짓으로 그냥 나가자는 신호를 주고받으며 쫓기듯 카페를 나오곤 합니다.그러면서 주인의 심정을 헤아려봅니다. 커피나 음료를 자주자주 여러 잔 팔아서 매상을 올려야 함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온종일 ‘죽치고’ 있는, 손님인 듯 손님 아닌 사람들로 매장이 꽉 찬 상태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주인의 심정을 말입니다. 전라도 말로 하자면 한마디로 ‘폭폭한’ 노릇일 겁니다.커피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더니 요즘은 2천 원대, 심지어 천 원대로 값을 내린 곳도 있습니다. 커피값이 밥값보다 더 비싸다는 게 어불성설처럼 들리지만 밥을 먹은 후 식당에서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있는 사람은 없으니 비싼 커피값이 아주 말도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비싼 커피값과 나름의 고충을 주인들을 대신해서 오늘 제가 변명해 드렸습니다만, 커피 맛에 대해서만큼은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엉터리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매체에 쓴 글을 올리면서 정상을 참작하여 커피 값은 '무죄', 커피 맛은 '결단코 유죄’를 선언합니다.21년을 시드니에서 산 저로서는 시드니가 제 2의 고향이니 한국을 다니러 오는 ‘고향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게 마련이지요. 그중 하나가 “한국의 커피 맛이 왜 이 모양이냐?”는 것인데, 호주에서 온 동포들마다 “한국에서는 커피를 돈 주고 사 마실 게 못 된다, 입맛 까다롭기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 사람들이 어째서 커피 맛이 이 지경인데도 아무 불평이 없을까?” 하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면서 “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지, 맛대가리 없는 커피가 값은 또 우라지게 비싸다.”는 말을 덧붙입니다.하기사 저도 ‘한국의 커피’에 그 사람들처럼 똑같이 세 번 놀랐습니다. 첫째는 저 역시도 너무나 비싼 값에, 둘째는 형편없는 커피 맛에, 세 번째는 그럼에도 전혀 타박을 않는 한국인들의 너그러움에 놀랐던 것이죠. 아니, 솔직히는 네 번 놀랐다고 해야겠습니다. 단아하고 깔끔한 고급스러움을 지나쳐 사치의 극에 달한 커피숍이나 카페의 인테리어와 규모에 말입니다.기왕 놀란 김에 다섯 번을 채워 놀라야겠습니다. 그런 호화찬란한 실내장식을 가진 숍에서 그런 ‘말도 안 되고 맛도 안 되는’ 커피를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도저히 조화가 안 된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라게 됩니다. 마치 미스코리아 같은 외모를 지닌 여자가 천박하기 그지 없는 언행을 보일 때의 충격이랄까요? 내면의 향기를 전혀 갖지 못한 사람을 볼 때의 당혹과 실망과 나아가 비애감이라 할지.겨우 커피 맛 하나를 가지고 이죽거림이 너무 심하다 할지 모르지만 심한 건 내가 아니라 ‘커피 맛’이라는 것을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한 가지 이해한다면 한국의 비싼 커피 값은 ‘자리값’ 탓이라는 점입니다. 주인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카페를 사무실 삼아, 독서실 삼아 온종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판에 커피 한 잔 값이라도 확실히 받아야 하지 않겠나 싶은 거지요. 그런 까닭에 그 돈을 내고도 자판기 앞과 다름없이 줄 서서 주문하고 줄 서서 받아오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불만이 없고, 정식 커피 잔이 아닌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에도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나 봅니다. 도무지 가격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서비스건만 아무도 타박을 않는 이유를 저 나름대로는 그렇게 생각해 보는 거지요. 다 좋은데 말입니다, 아무리 양보해도 엉망인 커피 맛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스타벅스 등 세계적 프랜차이즈 커피점일수록 커피 맛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점에 분개심마저 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신아연
이화여대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호주에서 21년을 살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호주동아일보와 호주한국일보를 거쳐, 중앙일보, 여성중앙, 자생한방병원, 메인 에이지 등에 글을 썼거나 쓰고 있다. 2016년 1월에 나온 인문 에세이집 『내 안에 개 있다』를 비롯해서 『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 『자식으로 산다는 것(공저)』 등 5권의 책을 냈다.블로그: 스스로 바로 서야지, 세워져서는 안 된다 http://blog.naver.com/jinwonkyuwon이메일: shinayoun@daum.net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노각나무(차나무과) Stewartia pseudocamellia
산에 꽃이 귀한 7월은 노각나무 꽃의 계절인가 봅니다. 지리산 자락에 곱고 화려한 노각나무 꽃이 한창이었습니다. 청학동 삼성궁에서 청학동 주산인 삼신봉을 오르는데 동백나무 숲길에 동백꽃이 떨어져 깔린 듯이 하얀 노각나무 꽃이 통째로 떨어져 있어 노각나무 향기 속에서 꽃길을 걸었습니다.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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