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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터널 사고의 보도행태를 성찰하며
2016.08.01
‘KBS는 대형차 사고의 심각성과 대책 마련 촉구를 위해 어제 발생한 사고 영상을 공개합니다’ 앵커 뒤로 큼지막한 안내 자막이 나오고 대형 화면에는 돌진하는 빨간색 버스에 추돌당하는 소형 차량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지난 7월 18일 KBS 9시 뉴스의 ‘심층리포트’는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고속주행하던 버스가 정체 중인 차량을 그대로 덮치는 끔찍한 영상이 그대로 보도되었습니다. 한 번도 아니라 모두 네 차례나 반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영상은 화면을 확대해서 모두 네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첫 번째 추돌 장면을 천천히 재생해서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사고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결과, 심층 리포트가 시작할 때 16퍼센트였던 시청률은 리포트가 끝날 때는 5퍼센트 포인트가 뛰어올라 21퍼센트까지 치솟았습니다.
재난 사고의 보도 시에는 대체로 ‘그 보도에 따른 개인의 피해를 최소화하여야 하고 특히, 어린이와 재난의 희생자 그리고 상처받기 쉬운 개인에 대한 각별히 배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통상적입니다만, 이날 KBS는 이러한 원칙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반면 같은 날 방송된 SBS와 MBC의 메인 뉴스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한 첫 번째 추돌 장면은 보여주지 않고 2차 추돌 장면 이후만 보여주었습니다. KBS의 보도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공공의 목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원칙에 어긋나는 결정을 하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난 7월 18일 보도가 정도에 어긋난 방송인지는 더 많은 논의를 통해 진단을 내려야할 부분입니다만, 민영 방송조차도 편집해서 보여준 영상을 ‘공공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사고 장면 영상을 확대하고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이 확대한 영상을 슬로우 비전으로 천천히 보여준 행위는 너무 심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편집을 통해 사고를 더욱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재난과 사망사고는 항상 뉴스의 중심이었고 이를 보도하는 행위에 대한 윤리기준은 늘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1985년에 미국의 ‘캘리포니언’이라는 신문에 실린 어린 익사자의 사진입니다. 이 신문사는 당시 ‘시신’을 게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가족이 시신을 확인하며 오열하는 순간이 사진에 너무나 잘 포착되어 있습니다. 당시 사진을 찍은 존 하트(John Harte)는 이 사진에 매우 큰 만족감을 느꼈을 겁니다. 그는 이 사진을 살리기 위해 편집국장을 설득합니다. 그 결과 이 시신 사진이 역사상 처음으로 캘리포니언에 실리게 됩니다. 편집국장은 사진을 게재하면서, ‘어린이들이 수영할 때 부모들이 조심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줘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고 합니다.원칙을 어겨야 하는 유혹에 직면하면 당사자들은 핑계를 찾게 됩니다. 31년전 미국의 ‘캘리포니언’의 편집국장이 찾은 핑계는 ‘물놀이를 할 때 부모의 주의의무’였고, 지난 7월 18일 KBS 9시 뉴스 앵커가 이야기한 핑계는 ‘대형차 사고의 심각성과 대책 촉구’였습니다. 필자가 이들의 주장을 핑계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들의 행위 결정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바로 유가족의 동의 없이 보도가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캘리포니언의 사진 기자인 존 하트는 위의 사진으로 업계에서 유명인이 되어 대학 강단에도 섰으며 마크 트웨인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지만 너무 비윤리적이었다는 비난을 더 많이 받았습니다. 이러한 비난은 삼십 년이 넘게 그를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유가족에게 너무 가혹한 사진이 보도되었다는 비난에 대해 그는 “유가족은 내 기사를 보지도 못했다. 당시 그들은 너무 슬프고 경황이 없어서 신문을 볼 상황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가혹한 것은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무책임한 주장입니다.이번 KBS의 보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끔찍한 사고 영상을 보여주기로 결정을 했으면 가장 먼저 이 보도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피해를 입는 사람이 없는지 살폈어야 했고, 당연히 유가족에게 방송의 취지를 잘 설명하고 동의를 얻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방송에 고지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청자도 유가족에게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KBS의 보도 내용에 집중했을 겁니다. KBS가 모든 영상을 다 보여주며 ‘대형차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아젠다를 설정하려고 했다면, 차라리 심층보도를 며칠 미루더라도 절차에 만전을 기했어야 옳습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으면서 대책을 촉구하는 모습은 결과를 위해 과정의 부도덕성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어느 인터뷰에서 피해자의 친척이 “사고 영상을 아직 보지 못했다. 너무 끔찍할 것 같아 볼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는 얘기를 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니 희생자의 부모는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영상은 기록입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에서 또는 뉴스에서 이 영상이 자료화면으로 방송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번 KBS보도에서 지난 해 충남 서산에서 레미콘 트럭이 신호 대기 중이던 소형차를 덮쳐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사고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레미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은 지금쯤 아픈 마음을 치유하면서 간신히 평소의 생활을 찾아가고 있었을 텐데, 이렇게 잊을 만할 때 방송에서 아픈 기억을 들춰낸다면 그분들은 또 한번 절망 속으로 빠져들게 될지 모릅니다. 이번 사고의 유가족도 몇 달 후, 또는 몇 년 후 사고의 영상을 우연히 마주치게 되어 가슴 아픈 기억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너무나 많은 매체가 난립하여 과다 경쟁을 하는 바람에 언론의 위상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공영방송의 보도는 방송의 품위와 원칙을 지키고 우리 사회가 나가야 할 바른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번 사고를 통해 대형차 사고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와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참사 보도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원칙이 재정립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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