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와 자포니즘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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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와 자포니즘

2016.07.27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아침, 첫 비행기를 탄 제 마음은 한층 들떠 있었습니다. 사실 런던에 머물면서 갤러리와 미술관 산책을 즐기고 있었지만, 가장 고대했던 것은 암스테르담으로 건너가 좋아하는 반 고흐의 작품에 푹 빠져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발걸음도 가볍게 스히폴 공항에서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거쳐 반 고흐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트램 정류소에서 고흐 미술관까지 걷는 동안 ‘아이 암스테르담(I Amsterdam)’이라 씌어진 조형물이 포토 존이 되어 발목을 잡을 만도 하고, 우아하고 고풍스런 외관의 국립미술관(Rijks Museum)과,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유명한 뱅크시와 앤디 워홀의 전시관이 시선을 붙들기도 했지만. 제 마음은 오직 반 고흐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반 고흐의 따스한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반 고흐의 작품은 국내전시를 통해서도 보아왔기에 무척 익숙했지만 그의 고향땅에서 바라보는 작품은 또 다른 감상에 젖게 했습니다.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는 연민할 수밖에 없고, 철저한 연구자적 태도와 작업에 대한 열의에 존경은 새록새록 묻어났습니다.

하지만 초창기부터 순차적으로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남프랑스 아를(Arles) 시절 작품에서부터 고조되는 일본화풍 때문입니다. 그동안 <귀가 잘린 고흐의 자화상>이나 <탕기 영감의 초상>과 같은 작품을 보며, 그 배경에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가 묘사된 것을 보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당시 유럽에 영향을 미쳤던 일본 취향 또는 일본 미술의 영향을 가리키는, 자포니즘(Japonism)으로서 거부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으로 넓게 해석했었습니다. 그러나 반 고흐의 <아몬드 꽃>그림 앞에 섰을 때, 그가 지금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본화풍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그래서 일찌감치 유럽에 진출한 일본화가 솔직히 부러웠던 것입니다.

그의 일본화풍에 대한 선호는 <꽃피는 매화나무> 그림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아예 원본이 되는 히로시게의 <매화나무>와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그가 일본화를 유화로 모사하며 얼마나 추종하고 연구했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뮤지엄 숍엔 반 고흐에게 영향을 준 히로시게나 호쿠사이의 도록뿐 아니라 일본의 문양 그림책과 기모노 책까지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반 고흐의 책들은 일본어로도 출간되어 있을 정도로 그는 일본과 깊은 인연의 끈을 갖고 있었습니다.

암스테르담으로 오기 전, 런던의 여러 미술관에서도 수많은 풍경과 인물을 보았지만 반 고흐의 작업은 상당히 차별성을 가지며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그의 그림은 평면적 화면구성을 갖고 있으며, 짧은 선묘적 특징이 살아있는데, 이것이 동양적이어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양인이 보았을 때는 친숙함을 느끼고, 서양인이 보았을 때는 동양적 요소가 가미되어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와 닿았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예로부터 서양의 미술은 빛에 의해 드러나는 대상과 그 표현이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명암으로 자연스런 실제감을 드러내는 면적 표현특징이 강합니다. 그에 비해 동양은 빛보다는 대상의 존재론적 본질이 중요했기에 표현에 있어 빛을 생략하고 대상의 골격을 이루는 선적 특징을 갖습니다. 그런데 반 고흐는 빛과 선,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결합시킵니다. 서양미술의 오랜 전통 속에 계승되어온 빛의 양감을 일본화의 영향아래 포착한 선의 흐름으로 결합시킨 셈입니다.

반 고흐가 만약 우리의 풍속화나 민화를 먼저 만났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위상, 한국 작가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자포니즘 덕분에 유럽에서 일본인의 인지도는 높고 문화적 위상은 상당부분 발휘되고 있습니다. 미술이 국력을 만드는 발판이 되는 것을 목도합니다.

반 고흐와 자포니즘의 결합을 보며, 미술이란 창의적이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세계이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을 재삼 확인합니다. 한국화를 전공한 제가 또 새롭게 개척해 나가야 할 길이 있음을 느끼며, 고흐의 일본화풍을 바라보던 그 불편했던 마음을 자신감으로 돌려놓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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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안진의

한국화가.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색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홍익대에서 채색화와 색채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화폭에 향수 사랑 희망의 빛깔로 채색된 우리 마음의 우주를 담고 있다.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고란초 (고란초과) Crypsinus hastatus

고란초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 부소산성 고란사(皐蘭寺)가 있는데 그 뒤 벼랑에 희귀한 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고란사(皐蘭寺) 뒤에는 바위틈에서 솟는 고란정(皐蘭井)이라는 약수가 있었고, 백제 왕들은 이 물을 마셨는데 백제의 궁녀들이 임금에게 바칠 물을 고란정에서 받아갈 때 이의 증표로 고란초 잎을 한두 개씩 물에 띄어 가져갔다고 합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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