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일보(侮辱日報)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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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일보(侮辱日報)

2016.07.26


진짜 신문 제호(題號)가 아닙니다. 1989년부터 꼬박 10년 동안 숨어 살아야 했던 인도 태생 영국 소설가 살만 루슈디(1947~ )는 숨어 있는 자신을 추적하고, 모욕적으로 비난했던 영국 매체들을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가 피해 살았던 건 당시 이란 지도자 호메이니가 그의 소설 ‘악마의 시’가 이슬람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Fatwa)’를 내렸기 때문인데, 영국 언론은 영국 특수경찰의 보호 아래 ‘조지프 앤턴’이라는 가명으로 잠적한 그를 찾아 나서면서 그가 이 작품을 씀으로써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아랍권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고 비난했습니다.

또 파트와는 그의 작품을 번역, 출판, 유통하는 사람들에게도 내려졌으므로 그 때문에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암살자의 총구와 칼, 폭탄의 위험에 놓였으며 실제로 몇 명이 살해된 것도 영국 언론의 비난거리가 됐습니다.  (‘조지프 앤턴’은 위대한 소설가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 체호프의 이름을 조합한 겁니다. 자서전 제목도 ‘조지프 앤턴’입니다.)

루슈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이슬람이라는 특정 종교를 모독한 게 아니라 표현의 자유, 의심할 자유 등등 모든 자유를 억압하고 여성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괴이한 신념체계를 비난했을 뿐이라면서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이란의 신정체제(神政體制)에 맞서는 언사와 행동을 계속했습니다. 파트와도 정권 안정을 위한 호메이니의 술책이라고 말했습니다. 밀리면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가 더 오래 억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실재적인 암살 위협에 삶을 포기할 생각도 했지만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에 나오는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지 않겠소”라는 말을 지상명령으로 삼고 버텼습니다.
 
파트와는 1998년 서방과 이란이 화해 무드로 들어가면서 철회됐습니다. 1981년 부커상을 받았으며 도피 중이던 1993년에도 부커상 25주년 기념상인 ‘부커 오브 부커상’을 받았던 그는 40주년인 2008년에는 ‘베스트 오브 부커상’을 받았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나라에서 많은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상만 받으면 문학적 성취에 대한 영예는 모두 누리게 됩니다.

그러고는 자서전을 쓴 건데, 언론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매체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엉터리다, 근거 없다, 인신공격이다며 ‘횡포’를 지적하더니 나중에는 지쳤는지 ‘모욕일보들이 또 나섰다’는 식으로 언론 전반을 멸시하고 기자들을 뭉뚱그려 무시합니다. ‘그 십년 동안 내 에너지가 소비된 대상은 이슬람과 언론, 여자들 이 세 가지였다’고 한 걸 보면 언론에 대한 그의 분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자들’이 포함된 건 잠적 생활로 야기된 결혼 생활의 파경 등의 이유 때문입니다.)

언론 및 기자들과의 갈등과 대결, 그리고 조롱과 혐오에 대해서는 따로 책을 내도 될 만큼 많은 실례가 나오는데, 하나 예를 들면 이런 구절입니다. “때때로 언론인들은 사태가 나빠지길 바라는 것 같았다. 모든 일이 순조롭다는 헤드라인은 눈길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시끄러운 일을 만들어내는 그녀의 태도는 놀라웠다. 그녀는 인용할 적대적인 말을 얻기 위해 작정을 하고 스리랑카 무슬림 국회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결국 하나를 건졌다.”

무슬림국가에선 불가능한 자신과 관련된 영상물을 불교국가인 스리랑카 대통령의 승인 하에 이곳에서 만들기로 했는데, BBC의 한 여기자가 이 무슬림 의원의 적대적 코멘트를 보도하는 바람에 정치적 논쟁이 새삼 시작되고 종국에는 프로젝트가 무산된 사실을 이렇게 기록해둔 겁니다. 그 뒤에는 스리랑카 대통령이 “가치 있는 대의(大義)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더 중요한 순간이 간혹 있습니다”라는 말로 그를 달랬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기자가 조롱되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도피 첫날) 아내와 “아담한 (호텔)방에서 단둘이 식사를 했다. 호텔 측에서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투숙객 한 명이 ‘데일리 미러’ 기자인데, 부인도 아닌 여자를 데려와서 옆방에 며칠 묵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기자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다. 여자가 굉장한 매력 덩어리였는지 ‘미러’ 기자는 며칠 동안 방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미러’가 '악마의 시' 작가의 은신처를 알아내려고 탐정들까지 동원하던 바로 그 순간 이 기자는 작가의 바로 옆방에 있으면서도 특종을 놓치고 말았다.”

기자 생활을 오래 했습니다. 신문사를 그만둔 후에도 여기저기에 글을 썼습니다. 지금도 쓰고 있고요. ‘조지프 앤턴’을 읽고는 누군가가 내가 몸 담았던 회사를 ‘모욕일보’라고 부르고 있지나 않은지, 저를 두고 ‘멍청이 기자’, 요즘 말로는 ‘기레기’라고 하고 있지나 않을지, 나 때문에 한국 언론 전체를 그렇게 부르고 동료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지나 않은지를 새삼 돌아보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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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과 뉴시스 논설고문도 했으며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도 1년 했고 지금은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라는 문패 아래 잡다한 내용의 글을 쓰고 있다. 2003년에 낸 '목사가 미웠다'와 2015년에 낸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 등 두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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