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향욱을 위한 변명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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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향욱을 위한 변명

2016.07.20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문제된 발언에는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딱 하나 분명한 변명거리는 문제의 ‘개 돼지’ 발언과 ‘1% 대 99%’ 발언이 그의 창작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등 온갖 분야의 학문적 용어인 '신분제'는 더 말할 게 없습니다.

나씨의 대화록을 보면 개 돼지 발언은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를 동석한 기자의 도움을 받아 기억해 내 입에 올린 것으로 돼 있습니다. ‘1% 대 99%’는 2008년 금융 위기 후 세계를 휩쓸었던 빈자들의 반란인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the Wall Street)’ 캠페인에서 등장한 수치입니다.

‘개 돼지’ 대사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대사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에 비하면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1% 대 99%’도 ‘월가 점령’ 캠페인의 구호가 됐을 때는 빈부차와 부의 불공정 배분 현실을 다소 과장한 수치로 이해되었을 뿐입니다.

나씨는 자신을 1%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자신도 아직은 99%에 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1%의 선두주자로 낙인되었으니 그로선 억울하다면 억울하겠습니다.

문제된 발언들의 저작권은 이제 나씨의 차지가 될 판입니다. 다중적 의미로 해석돼야 할 그 발언 속의 용어들이 매우 나쁜 의미로만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된 것도 그에게는 씁쓸하겠습니다.    

'1% 대 99%'에 훨씬 앞선 19세기말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파레토는 ’20 대 80 법칙‘으로 불리는 ’파레토의 법칙‘을 알아냈지요.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일컫지요.

이 법칙은 경영학에서 응용돼 20%의 고객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거나, 구성원의 20%가 80%를 먹여 살린다거나, 나아가 한 국가에서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한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되곤 합니다.

19세기 말의 수치이니 21세기에 그 수치가 바뀌었겠죠. 20이 1이 되고, 80이 99가 됐다면 1은 엄청 좋아졌을지 몰라도 99에겐 엄청 나빠진 것이죠. 제로섬이 아니라 쌍방이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자원의 배분이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인데, 1대 99라면 최악의 배분인 셈이죠.

그러나 1%만 최적의 상태고 99%가 불만뿐인 사회는 사실 존재할 수 없습니다. 혁명이나 쿠데타가 났겠지요.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삶은 어렵더라도 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1 대 99의 사회인지, 대다수의 사람이 불만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사는 사회인지는 사람에 따라 판단이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등이 심화하고, 희망을 잃고 불만 속에 사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국민들로 하여금 그런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경제발전은 국민들이 희망을 이루는 기초적인 발판이지만 경제는 흐름이기 때문에 오름이 있으면 내림도 있습니다.

지금 같은 경제의 침체기에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육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나누고 절제하고 인내하고 배려하는 정신은 교육으로 함양되는 것입니다. 그런 역할을 해야 할 교육행정의 책임자가 사회의 불공정을 당연시하고, 국민의 99%를 '개 돼지' 취금했으니 비뚤어져도 많이 비뚤어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 안에 ‘1% 그룹’ 또는 ‘0.1% 그룹’을 자처하며 비뚤어진 사고와 행동을 일삼는 부류의 계층이 엄존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롯데가 비리, 진경준 검사장 비리를 보면서 희망을 잃는 사람은 또 얼마나 늘었을까요.

국가는 그들이 국민정서에 미치는 나쁜 영향을 엄정한 법의 집행으로 차단해야 합니다. 나씨의 파동이 그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자계(自戒)의 기회가 된다면 19일 중앙징계위 심의에서 파면 의결된 그에게도 작으나마 자위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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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필자는 1970년 중앙대 신문학과를 나왔으며 한국일보사와 자매지 서울경제의 여러 부서에서 기자와 데스크를 거쳤고, 서울경제 논설실장 및 사장을 지냈습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 위원 및 감사를 지냈고, 일요신문 일요칼럼의 필자입니다. 필명인 드라이 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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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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