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진위 문제에 경찰이 개입하다니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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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진위 문제에 경찰이 개입하다니

2016.07.19


작금의 우리 미술계는 암울한 분위기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실로 참담할 정도입니다. 어느 화가는 국외에서 편한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해야겠다고까지 말합니다.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단면이 아닌가 싶어 무거운 마음을 가누기 어렵습니다.

필자는 오래전 고 천경자(千鏡子, 1924~2015) 화가 작품의 위작 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며 논쟁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참담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필자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보고 “내 작품이 아니다”라고 하면 그것으로 모든 사태가 일단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시쳇말로 ‘필(feel)이 꽂혀’, 즉 작가와 작품 사이의 교감을 통해 내린 결정을 존중하는 게 순리이며 도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작가의 연령을 거론하며 반론을 제기하는 등 비신사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천경자 씨는 절필을 선언하고 은둔 생활하며 쓸쓸한 여생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한 예술가가 뜻하지 않은 일로 자신의 예술적 삶을 마감한 이 문제를 우리는 실로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작가 이우환(李禹煥, 1936~ )의 작품을 놓고 다시금 진위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느닷없이 저명한 작가가 경찰청에 모습을 드러내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진풍경’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작가가 어떤 형태로든 작품과 관련해 경찰서에 나타나는 것은 문화예술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눈높이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본래 이름 없는 작가의 작품을 위작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흔히 “한 작가의 가짜 작품이 나올 때쯤이면 명성을 얻기 시작하는 시점이니 그 작가의 진품을 수장하라”는 얘기가 있는데, 꾼들의 이런 지침이 말하듯 작가가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위작이 꼬이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이우환 화백의 국내외 명성으로 볼 때 그의 작품이 위작들로 몸살을 앓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특히 그의 점화(點畵)는 태생적으로 위작꾼들을 끌어들이는 요소를 갖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화가의 성가신 훈장인 셈입니다.

그런데 유명해서 고가인 작품의 진위를 감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계 경매 시장에서 으뜸가는 Christie’s Auction이나 Sotheby Auction도 자사가 내놓는 미술 작품의 신빙성 확보에 사운을 건다고 합니다. 국제적으로 저명한 감정 전문가의 심사를 거치는데도 가장 어려운 작업이라고 토로합니다. 작품의 진위 여부를 판단한다는 게 그만큼 힘들다는 얘깁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작업에 경찰이 관여하는 상황이 너무도 생소하다 못해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미술계에서 근현대 작품만큼 위작이 많은 경우도 드문데, 필자는 아직까지 어느 나라 미술 작가가 위작 문제로 경찰서 근처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유명해진 작가의 이름만 보고서 가짜 작품을 욕심내 구입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고, 위작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미술 시장에 유통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물론 가짜를 그린 ‘쟁이’는 마땅히 사정당국의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경찰이 화가를 ‘오라, 마라’ 하는 것은 도를 넘는 행정권위주의에서 비롯된 그릇된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법원에서 이번 위작 논란을 가린다고 하니 마음이 한층 더 무겁습니다. 법정 안팎에서 나올 잡음이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세계 미술계에서 이우환 화백의 높은 위상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우환 화백은 이미 세계적인 화가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 초빙 받아 작품을 전시하면서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가없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파리 베르사유 궁전의 넓은 뒷마당을 꽉 메우며 압도적인 전시를 했습니다. 그 모습이 감동적이며 장엄하기까지 했습니다.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 백남준(白南準, 1932~2006) 이후 현존 작가로 이우환 화백만큼 국제적 거성이 된 한국 예술가도 없습니다. 이런 그를 경찰서에서 ‘오라, 마라’ 하고 언론 매체에서 가십으로 삼는 것은 예(禮)도 아니고 상식에도 어긋납니다.
일련의 이런 상황이 외부에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예술 혼에 대한 폭거로 비칠까 사뭇 걱정이 앞섭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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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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