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지사 부인의 알바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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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지사 부인의 알바

2016.07.08


미국 사는 친구가 흥미로운 뉴스 하나를 전해왔습니다. 주지사 부인이 살림에 보태려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사 부인에게 어울릴 법한 식당 운영이나 회계 일도 아니었습니다. 손님 테이블에 직접 음식을 날라다 주는 허드렛일이었습니다.

현지 신문과 방송에 보도되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메인 주지사 부인 앤 르페이지(Ann LePage)입니다. 그녀가 여름 동안 일하기로 한 식당은 부스베이 하버(Boothbay Harbor)의 맥시걸 레스토랑(McSaegull's Restaurant), 메인주 링컨 카운티(Lincoln County)에 있는 해산물 식당입니다. 앤은 “돈 벌기 위해 시작했다. 꼭 해 보고 싶은 일이어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답니다. 헐렁한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의 그녀를 알아보고 놀라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겠지요. 그녀는 “지사 부인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오히려 재미있어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녀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 손님들의 팁을 모아 SUV 신형 차를 사고 싶다고 말했답니다.

남편 폴 르페이지(Paul LePage) 주지사의 반응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는 TV 방송에서 “지난해에는 딸이 식당에서 일을 잘해 시간당 28달러를 받았는데 올여름엔 아내가 바통을 이어받게 되었다”고 소개했습니다.

폴 르페이지는 프랑스계 부모 슬하에서 어렵게 자라 대형 할인점 총지배인으로 자수성가했습니다. 공화당원으로 2010년 메인 주지사에 처음 당선되었고 2014년 재선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주지사의 봉급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규모가 작은 메인 주지사 봉급은 그중에서도 거의 꼴찌 수준입니다. 미국 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르페이지 주지사의 연봉은 7만 달러(약 8,000만 원) 정도. 메인주 일반 가정의 연 평균 수입보다도 1만7천 달러(약 1,950만 원)나 적은 액수라고 합니다. 그러니 부인이 식당 알바를 해야 갖고 싶은 차 한 대를 사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은 그저 ‘재미있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쩐지 그 뒤로도 자꾸만 곱씹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참 신선하다.’ ‘아니, 참 건전하다.’ ‘우리 사회에서도 가능한 이야기일까? 맹물 먹고도 이빨 쑤신다는 나라에서?’ ‘하긴, 미국에서도 드문 일이니 신문 방송에 났겠지!’

알고 보니 국내 언론에서도 지난달 말 소개되었던 뉴스였습니다. 미국 주지사 관련 이야기라면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관심 깊게 보지 않았을까요? 문득 그 뉴스를 본 우리 정치인들의 느낌은 어떠했을지 궁금했습니다.

때마침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의 우산 속에 제 자식을 끌어들여 돈벌이 시키고, 남들 부러워하는 경력을 쌓게 해 지탄받는 우리나라 어떤 여성 정치인 기사가 신문 방송을 뒤덮어 묘한 대조가 되었습니다. 그녀도 젊은 시절 낡고 병든 우리 정치를 비판하던 정의의 투사였겠지요. 그런데 왜 국회라는 권력의 소굴에만 들어가면 그렇게 부패하고 병들게 되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국회의원, 아니 정치인들 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나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금배지를 다는 그 순간, 권좌에 앉는 순간 초심은 아득히 사라지고 허세와 탐욕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는 게 국민들에게 비친 우리 정치인들의 안타까운 실상입니다. 특정 사건의 실체와 대응의 적절성을 조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 기구조차 가동되는 순간부터 권세를 부리려는 작태에 절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재벌 총수 정주영 회장이 기성 정치에 대한 반감으로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직접 정치에 뛰어든 적이 있습니다. 그때 떠돌던 얘기가 생각납니다. 정 회장이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소나타 한 대씩을 주겠다고 했더니 모두가 한사코 사양했다지요. 겸양이 아니라 ‘그걸 타고 어떻게 행세하느냐’고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의도했건 아니건 부인 앤의 웨이트리스 알바 뉴스로 르페이지 주지사는 주민들에게서 상당한 호감을 얻었을 것입니다. 별다른 투자 없이도 정치인으로서 꽤 큰 점수를 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미국 주지사 부부의 일화를 들으면서 정치인의 가장 큰 무기는 역시 정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허세나 과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 가진 그대로의 생활과 언행이 신뢰를 얻는 비결일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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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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