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불공정 게임 [박상도]


www.freecolumn.co.kr

헬조선의 불공정 게임

2016.07.06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논란’으로 20대 국회가 시작부터 술렁이고 있습니다. 보좌진 임면권을 100% 국회의원 개인이 독점하고 있고 누구를 뽑아 쓰든 그 사람들 마음이다 보니 상식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국회의원들의 친인척 보좌진 20여 명이 줄줄이 사퇴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사퇴한 보좌진 중에는 실력이 검증된 유능한 사람도 있어서 단순히 친인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십수 년을 몸담은 조직에서 나가라고 하는 것이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얘기도 나옵니다만, 청년 실업자가 한 집 건너 한 명씩있는 현실과 가진 자들의 각종 부조리에 지친 대중들에게는 그들의 사정을 봐 줄만한 여유가 없어 보입니다.

특히, 서영교 의원의 경우는 친 딸을 인턴 비서로 채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딸의 로스쿨 진학과 국회의원 인턴 비서 경력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의혹이 증폭되었습니다. 이른바 금수저들에게는 자신의 스펙에 국회의원 보좌관을 했다는 경력 한 줄을 넣는다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지 몰라도 흙수저들에게는 남의 나라 일처럼 아득히 멀게만 느껴질 겁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쟁취하여 그들을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더니 그들은 우리가 부여한 권력으로 제 자식을 금수저로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흙수저들을 위한 법안을 만들 리 없고, 제 자식에 발목이 잡혀 자식 앞길에 걸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청탁을 들어줄 것이 뻔합니다.

흙수저들이 성공하기 힘든 사회가 된 것은 이렇게 반칙을 하는 못된 어른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서영교 의원의 딸이 국회의원 인턴을 한 것이 로스쿨 진학에 도움이 됐다면 그녀는 공정하지 못한 경쟁을 통해 입학을 한 것이고 그녀의 입학으로 누군가는 불합격의 아픔을 겪었을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이 땅을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어른들이 쳐 놓은 이런 그물망 같은 비리의 네트워크를 통해 금수저들은 지옥에서 건져지는 반면, 대다수 흙수저들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밑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돈 없어서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해서 서럽고, 이를 악물고 공부해도 뛰어 넘지 못하는 신분 아닌 신분의 벽이 가로막혀 있어서 절망하게 됩니다.

취업의 문이 높다 보니 최근에는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사안에 따라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부모가 하는 가업을 이어받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의 도움으로 남들보다 쉽게 직업을 물려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근로자 100인 이상 2,769개 사업장의 단체협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용세습 내용을 명문화하고 있는 기업이 총 694개로 25.1%나 된다고 합니다. 고용세습은 정년퇴직자 및 장기근속자, 업무 중 숨지거나 크게 다친 자의 자녀를 우선채용하거나 채용 시 가산점을 주는 제도입니다. 업무상 숨지거나 다쳤을 경우 고용세습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단지 장기 근속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용세습을 하는 것은 요즘 같은 취업난에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모델 겸 배우로 활동하는 한 연예인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이 자기 자신만 잘 다스리면 쉽게 돈 벌고 대접도 잘 받는 직업이라서 자신의 딸도 이 직업을 갖게 해주고 싶은데 도무지 엄마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한탄이었습니다. 과거에는 탤런트나 가수, 코미디언들이 자신의 자식들이 부모와 같은 직업을 갖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달라지고 수입이 좋아지자 힘들게 대학을 졸업하고 어렵게 직장에 취직해서 명퇴 걱정을 하면서 전전긍긍 살아가는 것보다 대접받고 돈도 잘 버는 자신의 직업을 물려받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황신혜 씨와 딸 이진이 양이 종편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과 래퍼 MC그리로 활약하고 있는 김구라 씨의 아들 김동현 군이 부친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을 보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거북한 마음이 든 이유는 그들이 그들만의 힘으로 그 자리에 오른 것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송은 진입 장벽이 매우 높습니다. 공채 시험을 보고 아나운서에 합격해도 ‘끼’를 인정받기 전에는 인기 있는 예능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하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출연한다는 것은 특별한 스토리가 있기 전에는 꿈도 꾸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 다 자신의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고 나름의 성과를 올리고 있어서 주목 받는 신인이 될 자격은 있지만 딱 거기까지지 리얼리티 다큐 프로그램의 주인공과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게스트로 출연할 정도는 아닙니다. 동현 군 스스로도 금수저 논란에 대해, 자신이 '금수저가 맞다’고 인정했듯이 부친의 영향력이 알게 모르게 작용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상황일 겁니다. 다만, 자신의 곡이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고 게스트로서의 자격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음원 차트 1위를 했다고 해도 동현 군이 김구라 씨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연예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지도’입니다. 요즘처럼 매체가 다양한 환경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엄정하게 얘기하자면 이진이 양 정도의 재능을 가진 모델은 많습니다. 그리고 김동현 군 정도의 랩 실력을 가진 친구들도 많습니다. TV무대에 한 번 서기 위해 기획사마다 연습생들이 순서를 기다리며 몇 년씩 피땀을 흘려가며 고생을 합니다. 그런데 자신과 실력이 별로 다를 바 없는 경쟁자가 부모의 후광으로 TV출연을 한다면, 그것도 몇 시간씩 진행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누구나 다 아는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초대된다면 이들로서는 정말 맥 빠지는 일일 겁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연예사업은 인지도가 바로 수입에 직결된다는 것입니다. 대중이 이름을 기억하는 개그맨의 연간 수입은 10억 원 안팎이 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알려지기만 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연예계입니다. 대중이 갖고 있는 도덕의 잣대가 직업에 따라 그 적용에 차이가 날 수는 있어도 서영교 의원이 친딸을 자신의 인턴 비서로 채용한 것과 일부 연예인들이 방송과 관련있는 직업을 희망하는 자신의 자녀를 그들 스스로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후광으로 TV에 출연시키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정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에 기대면 답이 나옵니다. 서영교 의원이 얼마나 짧은 생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나를 알고 싶으면 ‘내 자식이 로스쿨에 지원해서 스펙 부족으로 불합격했다'고 생각하면 답이 나올 것이고, 연예인 2세가 고속 열차를 타고 스타의 길에 접어드는 것이 왜 불합리한지를 알려면 '내가 그들의 성공을 보며 한숨 짓는 연예 기획사의 연습생 부모'라고 생각한다면 답이 나옵니다. 그러니 이러한 방송이 얼마나 생각이 부족한 기획에서 탄생한 것인지 두말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리고 연예인 가족을 보며 그냥 편하게 궁금증을 풀며 가십거리를 찾는 시청 태도 역시 이러한 불공정 행위에 일조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필자는 이진이 양과 김동현 군의 발전과 성공을 진심으로 바랍니다. 다만, ‘연예인 2세니까 부모와 같이 출연하면 시청률도 오를 것이고 화제도 될 테니까’라는 기회주의적인 생각으로 제작한 프로그램 덕으로 인지도를 올렸다는 편견과 불명예를 얻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서영교 의원이 저지른 잘못된 관행이 국회라는 작은 찻잔의 태풍으로 끝나지 않고 온 나라의 잘못된 관행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젊은이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헬조선의 굴레를 벗을 수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닭의난초 (난초과)  Epipactis thunbergii A.Gray

기세 좋은 수탉의 꽃 벼슬 같기도 하고 행여 다칠세라 병아리 떼 끌어안고 주위 살피는 암탉의 아래 벼슬과도 같은 부드러운 듯 강한 색감! 이리저리 숲 속을 헤매다가 이처럼 곱고 환한 꽃 미소와 맞닥뜨리면 황홀한 맵시에 푹 빠져들고 가슴이 설레어 피로도 더위도 금세 가시게 됩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