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freecolumn.co.kr
개망초의 6월에
2016.07.04
어느 시골 초등학교를 지나다 보니 올해도 ‘선열들이 지킨 조국, 후손들이 빛내자’라고 쓰인 현수막이 보였습니다. 호국보훈의 달 6월이었는데 개망초 꽃도 어김없이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났습니다. 일제에 의한 국권 상실 때에도, 6·25전쟁 때에도 개망초는 무수히 피었답니다. 개망초의 어린잎은 데쳐서 나물로 먹고 자라면 된장국을 끓여 먹는데 저는 식욕이 생기기는커녕 하늘하늘한 죄도 없는 이 꽃이 국난(國難)의 조짐처럼 여겨져서 보이는 족족 예초기나 낫으로 밑동을 베어냅니다.세계인의 축제였던 2002 한일 월드컵 축구 종반전에 자행된 북의 도발에 맞서 싸우다가 전사한 참수리 357호의 조타장 고 한상국 상사의 흉상 제막식이 6월 28일 모교인 충남 홍성군 광천제일고에서 열렸습니다. 북한은 민족사에 최악의 초대형 인명 손실과 물적 피해를 남긴 6·25남침 이후로도 이처럼 수많은 민·군 살상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미사여구로 포장한 그들의 대화 제의가 늘 공허한 이유입니다. 우리도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의 카펫을 깔고 싶었다면 부화뇌동하여 덥석 6·15선언을 할 게 아니라 6·25전쟁의 사과부터 받고 근본적으로 화해한 후 뭐를 해도 했어야 했습니다. 6·25를 내전으로 평가했던 미국의 한국학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6·25가 누가 뭐래도 남침전쟁이었다"라고 미국의 소리 방송(VOA)에서 최근 확언했습니다.이달엔 휴전 63주년도 맞죠.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기만전술에 일부가 맞장구치고 시간을 주며 원조를 퍼줘서 기사회생한 북한은 누가 침략한다고 미사일 전략군까지 창설하여 무력을 강화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북한 핵과 미사일 등 비대칭 무기의 위력 앞에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연로한 세대들은 개망초를 보며 참담했던 전란의 기억을 되새길 것입니다. 끈질긴 개망초는 요즘 우리나라의 친북, 종북적 상황을 연상시킵니다. 지난 4월 중국 저장성의 유경식당에서 일하던 북한 여자 종업원 12명 등 13명이 대한민국으로 왔습니다. 북한은 며칠 뒤 납치라고 생떼를 부렸죠.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국정원에 탈북자들의 면담을 요청했고 거부되자 친북, 종북 인사들의 도움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 북한 가족의 동의서라는 것을 받아 제출하며 정신병원 등에 강제 수용된 사람들이 적법하게 수용되었는지를 법원이 판단하는 인신 보호 구제 심사 청구를 했습니다. 탈북자들이 납치되었다면 사건 발생지인 중국은 주권이 침해되었는데 가만히 있을 턱이 없죠 중국 외교부는 지난 4월 “북한인 13명이 유효한 여권을 갖고 출국했다. 중국의 탈북자 정책과 관련된 입장은 매우 명확하며 국제법과 국내법,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이 문제를 적절히 처리하고 있다"라고 이례적으로 브리핑했습니다. 납치인지 아닌지 궁금하면 중국 외교부에게 물어보면 될 텐데요. 민주 사회는 탈북자들을 조용하게 보호하고 익명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첩보물을 보면 망명자를 성형수술하고 새로운 신분도 만들어주지 않던가요? 그런데 탈북자들을 법정에 세워 신문하고 탈북의 진정성을 가리는 것이 변호인의 권한이라는 것입니다. 가족 동의서라는 것의 청구인 적격성이나 증거 능력도 문제죠.김정일의 처조카로 한국에 망명해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다가 1997년 남파 공작조에 의해 암살된 이한영 씨 사건이 있습니다. 이 씨의 유족은 2002년 "국가가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해 이 씨가 살해됐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고 대법원은 국가에 9,6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습니다.많은 사람들이 탈북자들을 괴롭히는 행위를 비판합니다. 대표적으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민변이 우리 정부의 납치인지를 확인하자고 했습니다. 민변이 북한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을 위한 변호사 모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페이스북에 밝혔습니다. 남북대학생총연합 등 청년단체들은 공개토론을 제안했죠. 이들은 “어떠한 절차와 경로를 통하여 위임장을 전달받았는가, 이 과정에서 국보법 위반 여부는 없는가, 대한민국 헌법과 위배되는 민변의 위임은 결국 북한 정권을 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주장했습니다. ‘북변’, ‘악마의 대변자’라고 극언하기도 합니다. 민변은 최근 MBC의 100분토론 출연 요청에도 불응했습니다. 의견을 밝히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요. 비판자들은 탈북자가 2만 9,000명인데 언제 민변이 북한 인권에 관심이 있었느냐는 것이죠. 그렇게 민주가 중요하고 북한과 잘 통한다면 북한에 진출하여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구제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탈북자 6명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 구금된 가족 20명에 대한 인신 보호 구제 심사를 법원에 청구하고 민변이 맡아줄 것을 요청해 귀추가 주목됩니다. 북한은 유명 인사의 자제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젊은 여성들의 집단 탈북에 놀라 탈북도 어렵지만 한국에 가서도 복잡한 절차에 시달리게 되고 북에 남은 가족들도 더 많은 고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친북, 종북 세력의 도움을 얻어 겁박하려는 다목적 계산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남남갈등을 유발하여 북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자는 것이겠죠.북한은 납치라고 강변할 게 아니라 사람다운 생활을 보장해 탈북자가 생기지 않도록 내치를 잘해야 합니다. 국방위원회를 국무위원회로 바꾼다고 끝날 일은 아니죠. 군사력과 경제의 병진이 어렵다는 것은 이미 1980년대 동유럽 자유화 혁명을 유발한 고르바초프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갈파한 것입니다. 그는 “우주로 스푸트니크를 발사해도 치약, 비누, 여성 팬티호스 등 생필품을 해결 못하는 정부에서 일한다는 것은 수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1989년 10월 동베를린에서 열린 동독 건국 40주년 행사에 참석하여 “늦게 오는 자는 역사가 처벌한다"라는 격언으로 개혁을 촉구했습니다. 아무리 암벽처럼 단단한 단일 사상으로 뭉친 것 같아도 일단 격변이 일어나면 단숨에 허물어져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의 운명이 말해줍니다 그는 루마니아 혁명이 일어난 지 불과 며칠 뒤인 성탄절에 몇 시간의 특별 군사재판으로 부인 엘레나와 함께 총살되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