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호텔건립과 재난난민

카테고리 없음|2016. 6. 25. 15:14


전진한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


    가수 싸이 측과 명도소송으로 여론의 주목을 받았던 ‘문화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이 만든 연구소 이름이 ‘재난 연구소’다. 



연구소를 만든 최소연은 강제로 생업공간에서 내몰림을 당하는 것이 바로 ‘재난’이라고 밝힌다. 그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각종 소송 및 사회적 매장에 가까운 언론공격을 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 모든 것이 ‘재난’이라고 힘주어 얘기한다.


도시는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재난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지난 6월13일 서대문구 주민들이 운영하는 ‘별별 모니터’에서 진행하는 강연에 강사로 초대를 받았다. ‘서대문구 별별 모니터’는 2015년 연희동 궁동산 막개발 정보공개운동, 20대 총선 서대문 후보 정책에 대한 질의운동 등을 진행했던 지역 시민단체이다.


강의는 정보공개청구 방법론, 민원제기 하는 법, 공문 발송법 등 평범한 내용이나 참석자들은 범상치 않았다. 신촌 호텔 건립 추진으로 인해 자신의 생업에서 쫓겨나게 된 신촌세입자(창천동 18-36번) 대책위원회(대책위) 관계자들이었다.


강연 장소는 신촌의 오래된 명소인 ‘홍익문고’였다. 이곳도 2012년 상업·관광숙박 시설로 신촌 도시환경정비구역 계획안에 포함되어 역사 속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가, 겨우 살아난 곳이다. 당시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과 건물주이자 홍익문고 대표였던 박세진의 강력한 의지로 재개발 위기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강연 장소와 대상자 모두가 이번 행사의 무게감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대책위 관계자들과 대화를 진행하면서 들었던 상황은 심각했다. 이들은 쌀집, 순댓국집, 치킨집 등을 하면서 어려워진 경기에도 불구하고 신촌을 지켜나가고 있었던 평범한 상인들이다. 그런데 2014년 10월 이들은 건물 주인에게 충격적인 통보를 받는다. 현재 영업장소로 있던 건물이 관광호텔 지역으로 지정되었고, 건물 매각이 결정되면 3개월 안에 퇴거해달라는 얘기였다. 이주비로 200만원을 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이 가게들은 대부분 5~10년 이상 운영해왔고 각자 권리금으로 3000만원에서 1억5000만원까지 지급했다. 청천벽력 같은 상황이었다. 이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안 주위 부동산 시세는 호텔 건립이라는 호재를 받고 상승하고 있었다. 신촌 상인들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2015년 9월부터 서대문구청 앞에서 한 달 넘게 매일 시위를 했다.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건물 주인은 명도소송을 진행했고, 임차인들은 대부분 패소한다. 구청에서는 법에 따라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이날 강의에 참석한 신촌 상인 박종운은 “2009년 용산참사가 발생할 때만 해도,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우리가 그 상황이다. 여기서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데, 절대 나갈 수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날 강의는 대책위에서 할 수 있는 공문 작성법, 민원 및 정보공개청구 방법 등을 말씀드렸지만, 이것들이 무슨 도움이 될지 회의감이 밀려왔다.


2009년 용산참사 이후 임차인에 대한 온갖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는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평소 단골로 가던 식당, 카페 등은 추억의 장소이자, 주인들에게는 생업의 장소이다. 이 같은 장소가 없어지는 것은 주인이나 단골손님들에게는 재난상황이다.

2016년 한국사회는 재난상황에 빠져있다. 조선업 위기로 노동자들은 대량해고를 당하고 있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청년들은 위험한 업무로 내몰리면서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게다가 창업은 신촌 상인들처럼 언제든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공중분해될지 모른다. 도대체 어디를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재난이 지속되면, 황폐한 사막 같은 미래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어쩌면 재난상황에 닥친 아우성이 이 사회를 향한 마지막 경고음일지 모른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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