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총장 출마할 모양이네요 [이진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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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총장 출마할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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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치가 조르주 클레망소와 아리스티드 브리앙은 스물한 살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동시대, 그러니까 19세기 말쯤에서 20세기 들어 한 20년 간 함께 정계에서 활약했습니다. 당시의 대표적 정치 거두들이었는데요, 유감스럽게도 앙숙지간이었습니다. 1920년 대선에 출마한 클레망소는 자신의 당선을 장담하면서 절대로 브리앙을 총리로 기용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이를 들은 브리앙은 “그가 선거에서 낙선해주면 되지”라고 응수했다네요.

며칠 후 브리앙은 가톨릭 신자 지도자였던 정치가 그루소를 만나 폴 데샤넬 후보 지지를 권유했습니다. 그루소는 클레망소가 신자들이 추천한 후보라며 난색을 표했지요. 브리앙은 천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아, 그분이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겁니다. 당연히 사후엔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드립시다. 단 종교 의식으로는 말고요.”
“왜요?”
“저런, 모르셨군요. 그분은 이혼 전력이 있지요. 게다가 무신론자이니까요.” 

가톨릭 신자들은 일제히 데샤넬 쪽으로 돌아섰고, 클레망소는 고배를 들었습니다(데샤넬은 취임 155일 만에 정신질환으로 사임). 장수철이 엮은 〈세계인의 유머〉에 나오는 일화인데요, 문득 이 일이 떠오르게 한 이는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입니다. 25일 당 최고위원회 회의 후에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과거 민주당 때 반기문 총장 측에서 뉴DJP연합을 통해 민주당 경선에 나가려고 우리 문을 두드린 건 사실이지만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박 대표는 그간에도 간간이 유사한 이야기를 흘려왔지만 이번엔 달라진 입장에서 한 말이지요. 국민의당 차원에서 보자면 이젠 오히려 경쟁상대가 된 셈이니까요. 그래서 그랬는지, 지나가는 말처럼, 그런 듯 아닌 듯 슬쩍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놓은 겁니다.
“그 양반 알고 봤더니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 사람이었구먼.”
어느 정당 지지자, 어느 지방 유권자 가릴 것 없이, 공히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요? 이 점에서 박 대표의 수완,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하겠습니다.

반 UN사무총장이 이날 제주공항으로 입국했습니다. 언론들은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생각의 편린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지요. 도착 직후 가진 관훈클럽 임원진과의 간담회에서 반 총장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선언성 언급을 했습니다.
“내년 1월 1일이 오면 한국 국민으로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를 그때 가서 고민하고 결심하겠다. 10년 간 유엔 사무총장을 했으니 (국민들의) 기대가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겠다.” 

언론들이 ‘출마 시사’를 키워드로 보도를 했던데요, ‘시사’ 정도가 아니라 ‘의지의 천명’이었다고 하겠습니다. 다만 ‘친박 후보 내정설’과 관련해서는 “기가 막히다”는 말로 부인했습니다. 아직 ‘내정’ 운운할 때는 아니지요. 또 ‘친박’ 중심의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에 더해 대혼란에 빠진 지금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한할 까닭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반 총장의 시련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전장에 나서는 순간 경쟁자 측의 융단폭격이 시작되게 마련입니다. 언론도 얼굴을 싹 바꾸고(?) 무자비한 검증에 나서겠지요.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도 감당해 내야 합니다. 1946년 유엔 총회가 결의 11호를 통해, 어떤 정부도 사무총장 퇴임 직후 정부 직을 제공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며 자신도 수락을 삼가야 한다고 권고했거든요. 사무총장이 퇴임하자마자 대선에 나선 예도 없었고요. 

어쨌든 이로써 제19대 대통령선거 분위기는 조기에 고조될 모양입니다. 예비 주자들, 출마 희망자들, 그리고 정당들이 일제히 들메끈을 조여매고 나설 겁니다. 그거야 어쩌겠습니까만 제발이지 이 때문에 정치도 행정도 다시 마비되고 마는 사태는 없기를 바랍니다. 민생의 어려움이 여간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蛇足> : 대선 때마다 국민은 ‘이번에만은’이라며 기대를 부풀렸다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 어김없이 낙담하고, 원망하고, 심하게는 저주까지 하곤 합니다. 그런데도 또 대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슬슬 고조되기 시작한다니, 참으로 사람 마음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하긴 희망이야말로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에너지원이지요.

필자소개

이진곤

경희대 정외과 객원교수. 국민일보 주필 및 논설고문 역임.
저서 <한국 정치리더십의 특성>, <오만한 마부들>, <풍차와 기사-노무현 리더십 리뷰>, 
<사정치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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