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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번역이다!
2016.05.26
지난주 참 반가운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소설가 한강 씨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영국에서 ‘맨부커(Man Booker) 국제상'을 받았다는 것이었죠. 이 상은 영국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며, 노벨문학상과 공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데, 처음에는 영국 연방, 아일랜드, 짐바브웨 국적의 작가를 대상으로 하였으나, 점차 확대되어 2013년부터는 전 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두산백과에서 인용). 이 상을 받음으로써 우리 문학도 세계 반열에 들어갔다는 신호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사실 우리나라 각 분야는 세계에서 대략 10위에서 더하기 빼기 1~2위 범위에 있습니다. 국민총생산 13위, 무역규모 7위, 과학기술경쟁력 7위, 국제특허출원은 5위, 이런 것에 견주면 문학 분야는 세계무대에 모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으니 때늦은 셈입니다.이번에 상을 받게 된 과정을 들어보면, 영국의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 씨가 작품을 잘 번역했나 봅니다. 우리 문학이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 같습니다.예전 대학에 갓 들어가고 나서, 이제 대학생이 되었으니 소양을 높이려고 책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해서 세계문학전집을 샀습니다. 이미 교과서에서 이름을 외던 유명한 작품이 많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책은 주로 세로쓰기였죠. 그런데 책 첫 장을 펼친 순간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분명히 한글로 적혔는데, 도대체 무슨 뜻인지 무엇을 표현했는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게 왜 이럴까? 우리 소설을 읽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그래서 30권 쯤 되는 책을 쌓아 놓고 읽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번역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번역할 때 원본 책을 놓고 옮긴 게 아니라, 일본어본을 놓고 번역한 것같았습니다. 원전을 놓고 번역했다면, 저 정도로 이해 못 하진 않았을 겁니다.기술분야 책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 초반이었는데, 정보 분야의 책이 나왔습니다. 용어부터가 엉터리가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퓨만’이라는 낱말이 나왔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 궁리 저 궁리하다가 ‘휴먼’을 잘못 쓴 것이겠다고 결론 냈습니다. 일본어 ‘휴만’ -> ‘fuman’(일본에서 fan을 휀, 이런 식으로 적으니) -> ‘퓨만’이란 기괴한 낱말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 밖에 엉터리로 번역한 곳이 하도 많아서, 표지는 그럴싸했지만, 그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외국어 책을 번역할 때 번역가는 어떤 자질을 가진 사람이 적절할까요? 양쪽 말을 모두 능통하게 잘하는 사람이 좋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그런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외국어를 더 잘하는 사람’과 ‘우리말을 더 잘하는 사람’ 누가 번역가로 더 좋을까요? ‘외국어보다 우리말을 더 잘하는 사람’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사람은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원본 소설이 품은 이야기를 영어권 사람이 감동하며 읽을 수 있게 번역했다고 하더군요.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요즘도 번역 발행된 책을 읽을 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거나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자주 만납니다. 분명 그 책을 번역한 사람은 ‘우리말보다 외국어를 더 잘하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원어를 읽어서 우리식 표현으로 옮길 재주가 없다면 그 사람은 번역가로 나서면 안 됩니다. 엉터리로 번역한 책은 독자의 시간과 정신을 앗아갑니다. 우리 사회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것이지요.잘 번역한 책은 우리가 쉽게 정보나 소양을 얻게 도와줍니다. 유능한 번역가 많이 나올 수 있는 사회 환경이 되어야겠습니다. 특히 유능한 외국인 번역가를 많이 발굴하여 우리 작품을 널리 온 세계에 알릴 기회가 자주 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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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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