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을 위한 행진곡>의 님은 누구인가?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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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위한 행진곡>의 님은 누구인가?

2016.05.24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분들이라면 학교 앞 주점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경험이 있을 겁니다. 노래방도 없던 시절 주점 한구석에서 술에 취한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면 이내 합창으로 울려 퍼진 노래가 몇 곡 있는데 바로 ‘님을 위한 행진곡’과 ‘늙은 투사의 노래’가 대표적입니다. 늙은 투사의 노래는 원래 늙은 군인의 노래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 군 복무를 하던 김민기 씨가 정년을 앞둔 선임하사를 위해 만든 노래였는데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에 가사의 ‘군인’ 부분을 ‘투사’로 바꿔서 속칭 운동권 노래로 탈바꿈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군에서도 금지가요가 되었고, 운동권에서도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1993년 4월 25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민기 씨는
“선임하사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만든 노래가 군에서 금지 가요가 됐을 때와 시인 김남주 씨가 패배적인 가요를 만들어 운동가요로 유행시켰다며 항의해 왔을 때,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죠. 양쪽 다 사기저하와 패배주의를 이유로 들더군요.”라고 이야기를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군대에서 금지곡이건 말건 운동권 내부에서 이견이 있건 없건 그 당시 필자를 비롯한 젊은 학생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줄기차게 늙은 투사의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 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강산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이 노래 가사에서 투사를 군인으로 바꾸면 늙은 군인의 노래가 됩니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의 꽃을 피우려고 애썼던 사람들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늙은 투사의 노래로 바꿔 불렀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아마도 그 비밀은 가사 속에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 노래 가사는 투사의 자리에 이 땅에서 권세와 부귀를 누리지 못하는 어떤 직업을 넣어도 문맥이 맞습니다. 반면 권세와 부귀를 누리는 직업을 투사 대신 넣을 수 없는 노래 가사입니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장군이 되어…’, ‘나 태어난 이 강산에 장관이 되어…’, ‘나 태어난 이 강산에 재벌이 되어…’ 이렇게 가사를 바꿔 넣을 수 없습니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바로 억압받는 민중 또는 민초인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쓰는 용어로 바꾸면 ‘을(乙)’이 바로 이 노래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이 노래는 김민기 씨가 만들었지만 노래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은 것은 주점에서 또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줄기차게 불러댔던 학생들이었습니다.

‘님을 위한 행진곡’도 원래는 영혼 결혼 헌정곡이었습니다. 1979년 야학운동 중 사망한 고(故) 박기순과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희생된 시민군 대변인 고(故) 윤상원의 영혼 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였습니다. 백기완 씨의 옥중 장편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발췌하여 소설가 황석영 씨가 가사를 쓰고 김종률 씨가 작곡을 한 노래입니다. 5·18 당시에는 이 노래가 없었습니다. 1981년 두 사람을 기리기 위한 노래극인 ‘넋풀이-빛의 결혼식’의 마지막 부분에 이 노래가 삽입되었고 이후 운동권 학생들에 의해 불리다가 198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 큰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도무지 깨질 것 같지 않던 탄탄한 독재의 사슬에 잠시 민주주의를 이뤄낼 수 있다는 확신이 흔들리긴 했어도 이 노래를 통해 굴하지 않고 결의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1절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사실 이 노래에는 광주와 5·18과 관련된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기념식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이유는 이 노래가 5·18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뛰어넘어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결실을 이끈 역사적 상징성을 간직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 사랑을 받았던 운동권 노래 중에 5.18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곡은 아마도 ‘이 산하에’라는 노래일 것입니다.

『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거든/ 불타는 녹두 벌판에 새벽 빛이 흔들린다 해도/ 굽이치는 저 강물 위에 아침 햇살 춤춘다 해도/ 나는 눈부시지 않아라/ 기나긴 밤이었거든 죽음의 밤이었거든/ 저 삼월 하늘에 출렁이던 피에 물든 깃발이거든/ 목 메인 그 함성 소리 고요히 이 어둠 깊이 잠들고/ 바람 부는 묘지 위에 취한 깃발만 나부껴/ 나는 노여워 우노라/ 폭정의 폭정의 세월 참혹한 세월에/ 살아 이 한 몸 썩어져 이 붉은 산하에/ 살아 해방의 횃불 아래 벌거숭이 산하에』

이 노래는 동학 혁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절묘하게 5·18과 데자뷔가 되고 있습니다. 당시 운동권 노래 중 가장 부르기 어려운 노래였습니다만 큰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시대적 메시지가 워낙 명확했기 때문에 오히려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히고 있습니다.

일본의 국가(國歌)인 ‘기미가요’의 가사는 매우 단순합니다.

『키미가요와, 치요니야치요니 (천황의 시대는 천 년이고, 8천 년이고)/ 사자레이시노 이와오토나리테 코케노무스마데 (자그마한 돌(조약돌)이 암석이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이게 ‘기미가요’의 가사입니다.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일본 왕의 무한 통치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중국 국가(國歌)인 ‘의용군행진곡(義勇軍進行曲)’은 매우 선동적입니다.

『起來〔일어나라〕/ 不愿做奴 的人們〔노예가 되기 싫은 사람들아〕/ 把我們的血肉〔우리의 피와 살로〕/ 筑成我們新的長城〔우리의 새 장성을 쌓자〕/ 中華民族 到了最危險的候〔중화민족에 닥친 가장 위험한 시기〕/ 每人被迫 着發出最后的吼聲〔억압에 못 견딘 사람들의 마지막 외침〕/ 起來起來! 起來!!〔일어나라 일어나라! 일어나라!!〕/ 我們万衆一心 우리 모두 일치단결하여〕/ 冒着敵人的火〔적의 포화를 뚫고〕/ 前進〔전진하자/〕 冒着敵人的火〔적의 포화를 뚫고〕/ 前進 前進 前進 進〔전진 전진 전진 전진하자〕』

이 노래는 1935년에 티엔한(田漢)이 작사하고, 녜얼(耳)이 작곡하여 탄생하였는데, 당시 영화 ‘풍운아녀(風雲兒女)’의 주제가였습니다. 세계 2위의 국력을 자랑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국가 속에 표현된 중국은 아직도 위험한 시기인 채로 있습니다.

미국의 국가(國歌)인 ‘성조기여 영원하라’ 역시 지금 시대상과는 다소 동떨어진 가사를 보여줍니다.

『여명의 빛이여/ 황혼의 마지막 빛에/ 자랑스럽게 서 있던 우리 성조기/ 밤의 어두움을 뚫고/ 요새 위에 아직도 용감히 펄럭인다/ 대포의 섬광과 작렬하는 포탄에도/ 성조기는 굳건히 서 있구나/ 펄럭이는 성조기여/ 자유의 땅과 용자의 고향에서 영원히 빛나기를』

독립전쟁 중 치열한 전투 후에 요새 위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며 지은 시(詩)가 미국의 국가의 가사가 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이 가사가 지나치게 호전적인 내용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슈퍼볼 경기가 있을 때 여전히 이 노래가 미국의 국가로 자랑스럽게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몇 배 더 강력한 국력을 가진 나라이지만 트집을 잡으려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로 허점이 많은 노래를 국가로 정해 놓고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엉성한 국가조차도 멋지게 보이게 할 만큼 부강한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5·18 기념식에서 부르는 노래 하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노래의 내용이 어쩌고, 북한에서 이 노래로 어떤 일을 했고 등등의 이유를 떠나 30년 전, 우리가 그 노래를 목이 쉬도록 부른 이유는? 우리가 5·18을 겪고, 1987년 민주항쟁을 했던 그 이유는? 민주화의 본질에 대한 아주 잠깐의 고민이라도 했다면, 5·18 기념식에서 ‘합창이냐 제창이냐’를 가지고 권세 있는 사람들끼리 옥신각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민의(民意)는 노래의 행간을 봐야 알 수 있고, 그 어떤 노래보다 위대하기 때문에 이번 5·18 기념식의 ‘님을 위한 행진곡’을 두고 일어난 추태를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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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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