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시민은 설계가 잘 된 주택서 살 수 없을까?"


건축가 김태식


케이스 스터디 주택 시리즈 

좋은 설계 주택 저렴하게 보급하자는 ‘건축운동’


    케이스 스터디 주택은 우리가 다같이 한 번 생각해 볼만한 주제이다.


8호 케이스 스터디 주택은 넓은 대지의 한 구석에 철골로 상자 두 개를 얹어 놓았다.


일반적으로 설계가 잘 된 건축물이라고 하면 공공건물 아니면 권력자나 부자를 위한 저택이다. 일반 대중들은 건축 설계비를 지불할 여유가 없어서 설계에 신경 써서 집을 짓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렇다면 일반인들도 설계가 잘 된 주택에서 살 수는 없을까? 이것은 과연 꿈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케이스스터디 주택 시리즈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일반 대중에게도 설계가 잘 된 주택을 제공하자는 일종의 건축운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로 부상했다. 승전국으로서 미국인들의 경제력도 상승하였다. 많은 가정에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었고 세탁기, 냉장고 등 많은 가전제품도 보편화되기시작했다. 하지만 개인주택을 소유하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은 목표였다.


마침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 인근에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외곽지역에 저렴한 가격으로 대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문제는 건축가의 설계비였다. 대부분의 건축가가 지은 단독주택은 비싼 설계비를 지불해야 했다. 일반인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아니면 일반 집장사가 짓는 집을 사거나 표준설계도를 구해 지어야했다.


성에 차지는 않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때 잔 엔텐자가‘ 일반시민들에게도 좋은 설계의 주택을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할 수 없을까’하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는 1943년에 자신이 편집장으로 일하던 잡지의 이름을 ‘예술과 건축’으로 바꾸면서 본격적으로 이 답을 찾기 시작했다. 만약 건축가가 저렴하면서 효율적인 모델 주택을 개발해 놓으면 일반인들도세련된 디자인의 주택을 저렴한 가격에 지을 수 있지 않을까?처음에는 양복을 양복점 대신 일반매장에서 기성복을 사 입는 것과 같은 개념에서 출발했지만 집은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다른방법을 찾아야 했다. 공장에서 완제품을 생산하여 배달할 형편이 아니었기에 표준화된 자재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완전히 공장제는 아니었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이었다.


케이스 스터디 주택은 1945년 1호를 시작으로 1965년 28호까지 엔텐자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동안 이 잡지를 통해 진행되었다. 정기적으로 설계안을 발표했던 것은 아니었고 어떤시기에는 여러 주택을 한꺼번에 소개하기도 하고 수년 동안 계획안 없이 지난 적도 있다. 또 어떤 계획안은 실제로 지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제안에 그치기도 했다. 대부분의 계획 대지는 로스앤젤레스 인근이었지만 참여한 건축가는 전국적이었다. 에로사리넨, 임스(Eames) 부부, 노이트라 등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던 건축가도 있었고 피에르 코니히 같은 신인건축가는 케이스 스터디 주택을 통해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때 활동했던 건축가들 중에는 특히 USC에서 건축을 가르치거나 이학교 졸업생들이 많았다. 소리아노,킬링스워스 등이 있고 퀸시 존즈 같은 경우는 10여 년간 건축대학 학장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케이스 스터디 주택에서 느껴지는 설계 분위기는 2002년 내가 이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케이스 스터디 주택 건축가 중 막내인 코니히 교수의 마지막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케이스 스터디 주택을 설계할 시기에는 젊은 청년이었지만 40년이지난 후에는 이미 백발 노인이 되어있었다. 아직도 건축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았었다. 그는 건축이 단순히 형태만 좇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로스앤젤레스에 맞는 건축이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주려 노력했다. 인근의싸이악(Sci-Arc)이나 UCLA에서는 최신 유행하는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데 반해, USC에서는 아직도 건축의기본기를 강조하던 때였다. 이분이 설계한 방법은 당시 USC에서 설계를 가르치는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할수 있었다. 코니히 교수는 이듬 해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럼 케이스 스터디 주택 시리즈 중 몇 개를 골라 소개한다. 임스 의자(Eames Chair)로 유명한 건축가 임스부부는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해 오면서 자신의 주택을 설계하여 잡지에 발표했다. 8호 케이스 스터디 주택이다. 대지는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는 나무가 많은 공원 같은 곳이다. 이 넓은 대지의 한쪽 구석 바닥에 콘크리트 기초를 깔고 그 위에 화물 컨테이너 모양의 두 개의 철제 건물을 올려 놓았다.


중세 유럽이나 일본에 지어진 좁고 긴 세장형 주택과 같은 배치이다. 2개의 직육면체 건물을 1자로 길게 배열한 후 그 중간에 중정을 넣었다. 중정의 의도는 서로 다르지만 여기서도 나름 좋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건물 입면은 몬드리안의 회화에서 많이 보던 느낌을 살려 꾸몄다. 아직 철골재가 산업화되지 않아 원래 의도대로 저렴하게 지어지지는 않았지만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주택으로 자주 소개되는 집이다. 임스 부부는 이 집에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머물렀다.


현재는 국가에서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건물은 단순한 직육면체로 겉면은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연상된다.


건축가 김태식

블로그 http://blog.naver.com/geocrow

8호 케이스 스터디 주택 주소: 203 ChautauquaBlvd. Pacific Palisades, CA 90272 

미주 한국일보

kcontents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