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을 천년동안 완벽히 보관해온 '장경각 건축의 비밀'
지리학적 위치와 건축 구조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서남서향
습기 '제로' 설계
합천 해인사 장경각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가야산 중턱에 자리 잡은 해인사의 장경각에는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이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이후 75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신비로울 만큼 잘 보존되어 왔다. 팔만대장경 목판이 오랜 세월동안 잘 보존될 수 있었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건축학적 관점에서 보면 팔만대장경보다 오히려 이를 보관해온 장경각의 가치가 훨씬 높게 평가되고 있다.
제 아무리 좋은 물질이라도 보관을 잘못하면 물질 자체가 상하기 쉽기때문이다. 그러면 장경각 건축법에는 어떤 과학적인 비밀이 들어 있을까?
첫 번째 비밀은 장경각의 지리학적 위치와 건축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장경각은 가야산 중턱 665m 지점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햇빛을 골고루 받을 수 있도록 서남서향을 바라보고 있다. 산속에 있지만 남쪽이 열려있어 마치 평지에 있는 것처럼 햇빛을 쪼일 수 있어 맑은 날 햇빛을 받는 시각이 여름철에는 12시간, 봄과 가을에는 9시간, 겨울에는 7시간 정도다. 특히, 경판보존의 가장 큰 적인 습기는 발붙일 틈이 없게 설계되어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과 계곡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흐름을 생각해서 창문의 크기와 방향이 정해졌다.
장경각 남쪽창
그래서 습기가 배어 있는 바람은 빠르게, 습기가 적은 차가운 바람은 천천히 지나가면서 자연스러운 대류 현상을 일으켜 습기가 머물기 어렵다. 또한, 장경각 경판전의 벽면에는 위아래 두 개씩의 창이 있는데 그 크기가 서로 다르다. 남쪽은 아래 창이 큰 반면 북쪽은 위쪽 창이 크다. 이것은 외부 공기가 큰 창을 통해서 들어오고 작은 창을 통해서 나가게 되어 있는 구조로서 외부의 건조한 공기가 경판전 내부에 골고루 퍼질 충분한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경판전내의 상대습도는 통상 80% 정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건조할 때에도 40%이하로 내려가는 일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한편 경판전의 구조는 빛의 작용을 절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햇빛은 가시광선, 자외선, 적외선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가운데 자외선과 적외선은 나무의 재질을 변질시키지만 자외선에는 이끼, 곰팡이 및 곤충 그리고 식물의 성장과 번식을 막는 작용이 있고, 적외선은 바닥의 흙을 데워 공기가 대류를 잘하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이와 같이 해인사의 경판전은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햇빛을 충분히 이용하는 구조를 가졌다. 아침에는 남쪽으로 트인 넓은 아래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햇빛이 경판 꽂이는 피하고 바닥만을 데워서 따뜻하게 하고 남쪽 바닥은 아랫목이 되는 반면 북쪽 바닥은 찬 윗목이 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경판전 내부에서는 대류가 잘 일어나게 된다. 물론 오후에는 오전과는 반대방향으로 대류가 일어난다. 그 결과 경판전 내부의 온도와 습도가 균일해 지는 것이다.
두 번째 비밀은 장경각 바닥에서 찾을 수 있다.
장경각 바닥에는 많은 양의 숯과 소금 그리고 횟가루가 묻혀있다. 이것은 장경각 내부의 습도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목판이 썩거나 갈라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목판을 보존하기 위한 절대적 요건인 습도를 조절하기 위함이다. 197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첨단기술로 장치된 새 경판전을 건축하고 일부 경판을 옮기는 작업을 지시했다고 한다.
장경각 바닥
그런데 750여 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대장경판이 갈라지고 비틀어지는 일이 발생하여 경판을 옛 경판전인 장경각으로 다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13세기의 고려시대 과학이 20세기의 현대과학에 비해 결코 모자람이 없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800년이 다 되어 가는 대장경판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우리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교사 이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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