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 건축에 '한국 기술'은 없다"
알맹이 빠진 제조업 기술
빨리 잘 만드는 '제조업 코리아'
이젠 그런 나라 널렸다
123층 롯데월드타워의 '현실'
터파기·공기역학 설계 등 첨단기술 모두 외국社가 맡아
원천기술 없는 '양산 기술'
造船·전자·車 등 한계에 봉착
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29번지 잠실 롯데월드타워.
사진=김연정 객원기자, 그래픽=김성규 기자
지난달 최정상부 첨탑 구조물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지상 123층, 높이 555m인 국내 최고(最高), 세계 5번째 높이의 거대한 빌딩 외관이 완성됐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대 건축물'이라는 이 빌딩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75만t의 건물 무게를 견디기 위한 터파기(기반) 설계는 영국의 에이럽(Arup)사, 그 기초 위에 19만5000㎥의 콘크리트와 4만t의 철골을 쌓아 올리는 빌딩의 설계는 미국의 케이피에프(KPF)와 레라(LERA)사, 초속 80m의 강풍에도 견디기 위한 풍동(風洞) 설계는 캐나다의 RWDI사, 총 2만개의 유리벽을 붙이는 외벽 공사는 일본의 릭실(Lixil)사와 미국 CDC사가 담당했다. '한국 건축 기술의 집약체'라는 수식어가 붙는 롯데월드타워가 실제로는 외국 기업의 손에 의해 지어지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콘크리트와 철근만 우리 손으로 쌓아 올리는 셈"이라며 "국내 건설업체들이 해외에 지었던 수많은 고층빌딩도 실상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롯데월드타워는 원천 기술 없이 외적 성장에만 집착해온 국내 산업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1993년 조선업 수주 세계 1위, 1994년 세계 최초 256메가D램 반도체 개발, 1995년 세계 5대 자동차 생산국에 진입하며 '제조 강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제조 강국 코리아'의 허상(虛像)이 건설과 조선중공업·스마트폰·LCD 디스플레이·철강·자동차 등 주력 산업 곳곳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20년 제조업 신화'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LCD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BOE는 지난해 12월 중국 허페이(合肥)에서 10.5세대 LCD 생산라인 착공식을 열었다. 현재 주력생산라인이 8세대인 한국을 두 단계 뛰어넘어, 한국 TV가 일본 소니를 앞지르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뒷덜미를 잡은 것이다. 통신장비 사업도 중국에 형편없이 밀리며 1996년 CDMA(미국식 이동통신)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명성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그동안 원천 기술 없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더 얇고 더 가벼운' 제품을 경쟁 국가보다 '더 저렴하게' 생산하는 데 집중하며 성장해 왔다. 하지만 한국이 주도해온 '양산 기술 혁신'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회로 선폭이 18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인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지만 10나노 미만의 미세 공정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반도체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제조업 몰락'은 20년 넘게 세계 최정상을 차지해 온 조선업에서부터 현실화하고 있다.
결국 건조 비용과 제작 기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 조선업체 퇴직 임원은 "우리 엔지니어들은 외국 엔지니어 회사들이 만든 기본설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수주 가격을 산정했다"고 고백했다.
제조 기술의 경쟁력이 한계에 도달하면서 제조업 공동화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원천 기술 없이 제조만 잘하는 나라는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은 베트남으로 생산 기지를 옮겼으며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인 현대자동차도 지난 18년 동안 국내에서는 생산 공장을 단 한 곳도 추가로 짓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사상 최고에 육박하는 청년 실업률(11.8%)은 낮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은 여전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산업공학)는 "지금껏 한국 산업은 남이 하는 것을 빨리 배워 따라 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follower ·빠른 추격자)'로 성공을 거둬왔지만, 이런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시행착오의 축적을 통해 백지에서 그림을 그려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능력을 확보하지 못했다"면서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성훈 기자 정철환 기자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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