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령, 쓸데없이 어렵다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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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법령, 쓸데없이 어렵다

2016.04.19

어떤 문제에 부딪혀 법을 읽을 때, 뭘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까? 몸으로 느끼다시피 그렇지 않죠?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현행 법령에서 차별적·권위적 용어와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용어 등 개선이 필요한 용어가 3,800여 건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한국법제연구원이 내놨습니다(법률신문 2016.4.14. 보도). 법제연구원은 지난해 8월 말을 기준으로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 현행 법령 4,512개를 조사하여 개선이 필요한 용어는

<출처 2016.4.14. 법률신문 기사>

모두 3,81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대표적 낱말은 ‘농아자 불구 외청 개임 임검 견책 결궤 소훼 죄적 해금 자복 파기자판’ 따위로 일반인이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 들어 있습니다(표 참조). 법령은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일반규범이기 때문에 법의 적용을 받는 국민이 알기 쉽게 빨리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극을 보면 벽보(방)를 써 붙입니다. 이런 제도를 공표하니 백성은 알아서 행동하여 처벌을 받지 않게 하라는 내용일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일반 백성이 쉽게 읽을 수 있는 한글이 있음에도 모든 공문서는 한자로 적었습니다.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한자를 읽을 수 있는 비율은 얼마나 됐을까요? 아마 웬만한 마을에 한두 사람 있을까 말까였을 것 같습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니 대부분은 관청이 뭘 알렸는지 모릅니다. 그 제도의 적용을 받는 일반 백성이 모르게 방을 써 붙이는 것, 어떻게 봅니까? 일반 백성은 제도가 어떻게 돼 있는지도 모르고 살다가, 일이 터지면 사또가 외치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한마디에 삶이 망가집니다. 참 딱한 행정이었습니다. 오늘날 법령이 이런 모습을 띠고 있지 않습니까?

법령을 읽어보면 용어가 어려운 것도 문제지만, 문장이 여러 개 겹쳐 길고, 주어 목적서 서술어가 뒤엉켜 정확한 뜻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사람마다 해석이 제각각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이거라고 읽은 문장이 법정에 가면 ‘잘못 읽은 것이야!’라는 판결을 자주 받습니다. 국민이 법을 믿기 힘들면 안정되게 살기 어렵습니다.

법령은 쉽게 분명하게 써야 합니다. 법은 사회생활의 규범을 정한 것입니다. 법이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면 다툼이 생깁니다. 분쟁은 당사자에게 커다란 짐입니다. 법이나 제도가 모호할수록 비용은 비싸지고, 그러면 기업이나 나라의 경쟁력은 떨어집니다. 법은 우리의 국제경쟁력과 연결됩니다. 우리나라는 소송으로 다투는 숫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고 합니다. 그 원인이 우리 법에 있지 않을까요?

또 한 가지는, 법에 적힌 대로 시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변리사법 제8조(소송대리인이 될 자격)에는 “변리사는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또는 상표에 관한 사항의 소송대리인이 될 수 있다.”로 적어놓고, 현실에서는 특허사건에서 변리사가 대리인으로 나서면 법원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법에 적은 것과 현실이 다른 것이지요. 법을 믿고 따르느 국민에게 뒤통수를 때리는 것입니다.

법제처는 전문가 중심의 어려운 한자어나 일본식 표현, 복잡한 문장 구조의 법령을 국민이 쉽게 이해하도록 개선하는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2006년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합니다. 10년이 흘렀지만, 아직 많이 모자란 것 같습니다. 법을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이해한 대로 행동하면 된다는 믿음을 주는 것, 이것이 우리 국력의 기초입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안전합니다. 법을 쉽고 분명하게 적읍시다. 누굴 위해 그렇게도 어렵게 적습니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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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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