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처녀 제 오시네...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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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녀 제 오시네...

2016.04.06


길가에 핀 매화와 산수유 꽃을 보며 봄기운을 느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봄의 전령사로 불리는 노오란 개나리와 분홍빛 진달래꽃이 활짝 피어오르며, 우리 일상에 봄이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밝고 환하게 피고 있는 연분홍 복사꽃과 하얀 배꽃으로 봄의 흥취는 한층 더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계절의 중턱을 넘기며, 이은상 님의 시조를 가사로 홍난파 님이 작곡한 ‘봄처녀’란 가곡이 떠오릅니다.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노래 가사의 ‘제 오시네’에서 '제'는 인터넷에서 ‘저기'라고들 해석하고 있는데, '제'는 실제로 봄이 계절에 맞춰 '제때' 오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제 오신 아리따운 봄은 이미 우리 곁에 다가와 꿈과 희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일 년 사계절을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그리고 겨울은 계모’로 비유한 폴란드의 속담도 있습니다. 이 말에는 봄은 처녀처럼 부드럽고, 여름은 어머니처럼 풍성하고, 가을은 미망인처럼 쓸쓸하며, 겨울은 계모처럼 차갑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봄(春), 여름(夏), 가을(秋), 겨울(冬)로 구분이 되는 4계절(季節)은 연중 태양의 위치나 기후의 변화 따라 각각 6개씩의 절기(節氣)로 나뉘어 24절기를 이룹니다. 농사일이 중심이던 때는 절기에 대한 관심이 높았지만, 지금은 절기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24절기는 여전히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봄의 절기는 어떻게 나누어지며, 각 절기가 지니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의 절기는 입춘(立春)으로, 올해의 입춘은 2월 4일이었습니다. 입춘은 새해에 맞이하는 첫 번째 절기이기 때문에 농업이 주요 생업이던 시절에는 농경의례와 관련된 행사가 많이 열렸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은 드물게 보이지만 예전에는 입춘이 되면 대문이나 담벼락 등에서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나, 맑은 날과 경사스런 일이 많이 생기라고 기원하는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입춘축(立春祝)을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입춘은 겨울의 마지막 절기인 대한(大寒) 다음에 이어지는 봄이 시작되는 절기이지만,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입춘에 장독. 오줌독 깨진다.’는 말에서처럼 아직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절기입니다.

입춘에 이어지는 봄의 두 번째 절기는 우수(雨水)입니다. 우수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의미로, 이 시기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기는 하지만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속담에서처럼 우수가 지나며 춥던 날씨가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새싹들이 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우수는 ‘봄처녀’ 노래에서처럼 우리 주변이 ‘새 풀 옷을 입으셨네’로 바뀌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우수에 이어지는 절기는 풀과 나무의 싹이 돋아 오르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입니다. 이 절기에는 겨울철 대륙성 고기압이 약해지고, 이동성 고기압과 기압골이 주기적으로 통과하며 꽃샘추위가 오기도 합니다.

경칩에는 날씨가 따듯해져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고인 물에 알을 낳는데, 그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플 때 좋을 뿐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해서 경칩에 개구리 알을 먹는 풍속이 전해오고 있지만, 생태계 보전을 위해서는 삼가야 할 일입니다. 또한 경칩 때 고로쇠나무(단풍나무의 일종) 줄기의 수액을 마시면 위장병이 낫고 건강에도 좋다고 해서 채취해 먹는 풍습도 있습니다. 요즈음도 봄철에 고로쇠 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칩에 흙을 만지는 일을 하면 한 해의 탈이 없어진다고 전해져, 벽에 진흙을 바르거나 흙벽돌을 만들어 담을 쌓기도 합니다. 또한 농촌에서는 경칩에 보리의 싹이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가늠하여 그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점치기도 했습니다.

경칩에 이어지는 절기는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입니다. 양력으로 3월 20일경에 있는 춘분에는 바람이 많이 불며, 꽃샘추위가 이어지기도 합니다. 꽃샘추위는 ‘바람신이 꽃이 피는 걸 샘낸다.’에서 연유한 말입니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 절기를 전후로 농가에서는 봄보리를 갈며 봄 농사 준비를 하고, 들나물을 캐어먹기도 합니다.

춘분에 이어지는 봄 계절의 다섯 번째 절기는 하늘이 밝고 맑아진다는 ‘청명(淸明)’입니다. ‘청명에는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속담에서 보듯이, 날씨가 좋아지며 농가에서는 논둑과 밭둑의 가래질을 시작으로 한 해 농사가 시작됩니다. 청명은 조상의 산소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사초(莎草)를 하는 한식(寒食)의 하루 전날이거나 같은 날입니다. 금년의 청명은 4월 4일로 식목일과 겹친 한식 하루 전 날이었습니다.

봄 계절의 마지막 절기는 봄비가 내려 곡식 농사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를 지닌 곡우(穀雨)입니다. ‘곡우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에서 보는 것처럼 곡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해 농사를 망친다고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제 아리따운 봄 계절의 시간이 많이 흘러, ‘어린이날’과 겹친 여름의 전령사인 입하(立夏)까지는 한 달 남짓입니다. 봄은 겨울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다가오지만, 우리네 삶에서의 봄은 초대해야 온다고 합니다. ‘진주 이슬’을 신고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봄에 꿈과 희망을 가득 담아 내게서 멀어져간 인연들을 되살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번 봄에는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라는 가사의 ‘뉘(누구)’ 자리에 ‘나’를 초대해 봄이 가슴에 가득 안아 전해주는 꽃다발을 받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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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박대문의 야생초사랑

올괴불나무 (인동과) Lonicera praeflorens


이제나저제나 봄 기다리는 애타는 마음에 봄 불을 지피는 봄의 전령이 있습니다. 엷은 봄 햇살에 투명한 연보라 꽃잎, 설레는 가슴에 꽃불 지피는 빨간 연지 바른 봄 아씨의 고운 입술처럼 새빨간 꽃술, 봄의 전령이라 부르는 개나리, 진달래보다 한참 이른 시기에 꽃을 피우는 올괴불나무입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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