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M’ 결핍증을 앓는 우리 사회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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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M’ 결핍증을 앓는 우리 사회

2016.04.05


‘비타민’ 하면 우리에게 익숙한 비타민 A, B, C, D 등 13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우리 사회에 ‘문화 비타민(Vitamin) M’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종종 해보곤 합니다. 여기서 ‘비타민 M’의 ‘M’은 Munwha(문화, 文化)를 축약한 것입니다.

음식물을 놓고 우리 몸 어디에 좋다고 말할 때면 늘 각종 비타민을 거명합니다. 그런데 호르몬(Hormone)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호르몬은 체내에서 생성하는 내분비물(內分泌物)인 반면, 비타민은 체외에서 반드시 공급받아야 하는 영양소입니다. 이런 차이점이 있지만 호르몬과 비타민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유지·관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적정량에 못 미치거나 적정량을 넘으면 곧 심각한 결핍 또는 과잉 증상으로 연결됩니다.

한 예로 남성이나 여성 모두 적정량의 남성호르몬(안드로겐, Androgen)과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 Estrogen)이 체내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생깁니다. 만일 여성에게 남성호르몬이 필요 이상 많으면 남성형 수염(털)이 나타나고, 남성에게 여성호르몬이 필요 이상 많으면 음색(音色)이 여성화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중요한 체내 내분비물인 호르몬은 우리 몸이 알아서 챙겨 생성·공급하는 능력에 의지합니다.

반면 비타민은 우리 몸에서 스스로 생성할 능력이 없습니다. 요컨대 타율적으로, 즉 외부로부터 공급받아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라는 얘깁니다. 따라서 누구나 예외 없이 적정량의 비타민을 꾸준히 음식물과 함께 공급받아야 합니다.

아주 오래전 바다에서 생활하는 선원에게 발생하는 무서운 질병이 있었습니다. 전신 무력감, 식욕 감퇴, 출혈 증상을 보이면서 죽어가는 괴혈병(壞血病, Scurvy)이 그것인데, 14~15세기 원양 선박의 선원들을 괴롭힌 가장 두려운 병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록에 의하면 1536년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와 다니엘 크네제빅(Daniel Knezevic)이 북미 대륙의 세인트로렌스 강(St. Lawrence River)을 답사하던 중 수많은 선원이 괴혈병으로 죽어갔는데, 당시 원주민의 조언을 받아들여 측백나무(arbor vitae tree)의 가시를 끓여 만든 차(Tea)를 마시게 했더니 선원들이 소생하는 큰 효과를 봤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1753년 영국 해군 소속 의사 제임스 린드(James Lind)가 그의 ‘괴혈병에 관한 논문(Treatise on the Scurvy)’에서 감귤류가 괴혈병에 치유 효과가 있다고 발표한 것을 비타민의 효시로 봅니다. 이는 훗날 Vitamin C(Ascorbic acid)로 더욱 널리 알려집니다.

각종 비타민이 우리 건강의 필수 영양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타민 A가 부족하면 야맹증(夜盲症)이 생기듯 각종 비타민에 대한 만성 결핍은 우리 건강에 심각한 증상을 초래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문화는 사회생활의 비타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태어날 때부터 ‘문화 인격자’일 수는 없습니다. 이는 누구나 (사회인으로서의)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문화를 비타민처럼 꾸준히 공급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넓은 의미에서 문화 비타민은 없어서는 안 될 ‘사회 영양소’인 것입니다.

근래 우리 사회는 심각한 ‘문화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횡행하는 막말 풍토를 비롯해 각종 공포감까지 주는 비문화적 행태는 바로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문화 비타민 결핍증’의 결과입니다.

필자는 우리 사회가 중증 열병처럼 앓고 있는 폭언, 폭행 같은 비문화적 현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마치 중세기에 비타민 C가 수많은 항해사들의 생명을 구한 것처럼 ‘비타민 M’을 공급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내 정치인 중 백범 김구(白凡 金九, 1876~1948) 선생만큼 문화의 중요성을 간절하게 강조하신 분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래의 글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나의 소원(백범 김구, 1947)].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백범 선생은 1948년 정치 테러범에게 피살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에서도 백범 선생은 이렇듯 의연하게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실로 큰 인물의 별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그렇게도 절실히 소망했던 한 시대 어른의 깊은 뜻을 새삼 되새겨보는 요즘, ‘Vitamin M’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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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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