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 글로벌화의 첫걸음" -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40년 '외길' 건설엔지니어의 시각]

"기술형 입찰 제안서, 영어로 제출해야"

"통역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 대단한 경쟁력"

"더 많은 고급 일자리 창출"


    강호인 장관이 새로 부임하면서 국토교통부를 중심으로 건설산업의 글로벌화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합니다.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통령이 직접 세일즈외교를 하는 마당에 건설분야의 담당장관으로서 당연하겠지요. 


해외건설진흥확대회의, 해외건설지원협의체 설치, 건설엔지니어링업계 간담회 등 유관기관 및 관련업계가 모두 참여하는 전방위적 회의가 계속되고 있으며, 시공책임형CM, 설계CM, BIM 도입 등 “지금 대처에 따라 건설산업 미래 달라진다”며 실무자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난 40여년동안 해외건설을 수행해온 회사들은 국내의 건설관련 제도들을 글로벌 경쟁에 맞도록 개선해달라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해외진출을 위해서는 국내시장에서 경쟁력이 길러져야 한다는 주장이지요. 불행하게도 지금도 해외현장에서 유능하다고 평가되던 기술자들이 국내현장에 와서는 힘을 못쓰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2006년 말 당시 건설교통부가 내놓은 ‘설계도서의 국제표준화 로드맵’에 따르면 최고가치 낙찰제 발주방식과 순수내역입찰제는 2007년 말에, 그리고 성능보장계약제도와 시공상세도 자율조정제도는 각각 2년, 3년 후에 순차적으로 도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제도의 핵심에는 업계의 우수한 기술력과 창의성을 제값을 주고 사는 것이 우리 건설 발전에 옳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계획들이 온전히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앞으로만 나가려 한다면 또 하나의 실패를 자초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런데 이 만성적인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들여다 보면 뭔가 기본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제도는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데 언어만은 우리의 것을 쓰고 있습니다. 인도나 말레이시아 등 영연방에 속하는 나라들은 우리보다 국민소득은 떨어지지만 언어나 사회시스템들은 국제적으로 큰 어려움없이 바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의 오늘이 있는 바탕에는 영어가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국가뿐만이 아니라 우리 기업들도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간 해외사업을 활발히 해 온 대형회사들도 사내에서 영어로 회의를 하고 심지어 모든 내부문서도 영어로 한다고 홍보한 적이 있지만 그 결과 영어가 체질화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언어문제는 회사단위로 극복하긴 너무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세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국내시장의 제도를 글로벌화하는 것이 옳지만, 결국 그 전제는 글로벌 언어를 쓰도록 하는 것이 기본인데, 그 키는 최대의 발주자인 정부가 쥐고 있다고 봅니다.


한국은 이미 WTO 정부조달협정에 의하여 국제입찰이 적용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외국업체들이 한국의 건설시장에 참여하지 않고 있으므로 별 의문없이 그냥 한글로 모든 입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말하기(speaking)는 좀 더듬거리는 것도 매력이 있지만 쓰기(writing)는 다릅니다. 계약문서는 토씨 하나로 회사의 사활이 걸립니다. 도면이나 시방서에 쓰는 기술용어는 조금 익히면 소통이 가능하지만 계약 문서는 엔지니어가 다루기 어렵습니다 필자가 근무했던 미국계 회사의 한국지사에도 노련한 미국인 기술자가 있었지만 계약만큼은 호주에 있는 법무팀에서 관장했습니다.


정부는 늘 전문성과 투명성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수 많은 제도를 도입하여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의 입찰제도 등은 전 세계에서 희귀한 운찰제로 전락하였고, 지금도 이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안 중 하나로 입찰용 설계서나 제안서를 국제기준으로 바꾸고 문서는 영어로 제출토록 하자고 제안합니다. 


첫째, 기술형 입찰의 제안서를 영어로 제출토록 하고 외국의 전문가들을 설계심의에 참여토록 하면 심의의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입니다. 그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입찰도서 제출 수준을 개선하면 큰 비용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막연히 뒤진다고 느끼고 있는 기술격차를 그들이 지적하는 내용으로부터 세부항목별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혹자는 자존심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그건 시대에 맞지 않는 수구적인 생각입니다. 


둘째, 국내공사 수주에 영어로 제안서를 작성할 능력이 확산되면, 해외 입찰에서 시간적으로나 비용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에 전세계의 전문가들과 통역 없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는 수주 후 공사관리에서도 생산성을 높여 원가경쟁력을 배가시킬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젊은이들에게 더 많은 고급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영어에 능숙할 뿐 아니라 사고방식도 서구화되어 있고, 인터넷 등에 익숙해 글로벌 네트워킹 능력이 매우 향상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지금의 건설회사에 들어가서 국내 일을 하면 얼마나 따분하고 절벽을 느낄까요. 이들이 역량을 키워서 세계로 나가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물론 모든 개인이나 회사들이 다 해외에 나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90%가 넘는 중소 건설회사들이 모두 해외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합니다. 국내건설현장 일선에서 일하는 100만명이 넘는 근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이 회사들이 적절한 일감을 확보하면서 한편으로 그들간의 경쟁에서 역량을 키워나가도록 유도하는 배려도 필요할 것입니다.

아시아경제


* 이순병 프로필

前 동부건설 대표이사 부회장. 前 동부건설 대표이사 사장.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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