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끝에 부끄러움이 있다"


철문·발자국·타자기 소리 울리는 터널 지나 옛 안기부 터, 

경술국치 현장 나오는 남산길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발자국 소리‘ ‘노랫소리’가 흘러나오는 어두운 굴 끝에 대공간첩 사건을 전담했던 옛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5국’ 건물이 보인다. 지금은 서울시 남산 별관.(아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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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안기부장 관저. 넓고 깨끗한 정원을 가진 2층 양옥집은 현재 ‘문학의 집’과 ‘산림문학관’이다.


 

1910년 조선의 이완용 내각 총리대신과 일본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 통감이 한-일 합병 조약을 맺었던 조선 통감 관저 터.


‘5국’ 건물 뒤편엔 지하 조사실로 내려가는 긴 계단이 있다.


서울 중구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은 1904년엔 일본 주차군 사령부 차지였다. 후에 조선헌병대와 수도경비사령부가 거쳐갔다. 일본이 사령부에서 창덕궁까지 뚫은 신작로가 지금의 충무로인데 조선 정궁으로 일직선으로 뻗어 있다.


예장동에서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소릿길’ 터널을 지난다. 터널 끝에 대공간첩 사건을 전담하던 옛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의 ‘5국’이 있었다. 지난해부터 20여m의 굴길로 들어서면 ‘철문 소리’ ‘타자기 소리’ ‘물소리’ ‘발자국 소리’ ‘노랫소리’가 차례로 흘러나온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내는 길이다.


옛 안기부 자리엔 한-일 강제합병 조약을 맺었던 조선 통감 관저 터도 있다. 2010년에 서울시가 치욕의 현장이라며 밖에 알리는 것을 꺼렸지만 민간 역사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터를 찾아내 표석을 세웠다. 오래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말없이 지켜보며 치욕의 길에 서 있었다.


지난 3월20일 서울 필동과 예장동의 남산 자락 골목을 걸으니 숨은 옛 흔적이 다가온다. 골목의 역사를 좇아 산책을 나온 시민들과 함께 휴일 오전을 함께했다.


 

경성신사와 조선신궁이 있던 숭의여자대학교.

사진·글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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