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끼리 경쟁하는 시대" -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 아태지역 유통부문 대표
김연희 보스턴컨설팅그룹 아태지역 유통부문 대표
유가가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있다. 영원할 것만 같던 고유가 시대가 갑자기 거짓말처럼 끝났다.
40여년 전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주요 회원국들이 석유를 무기화한 이래 우리는 고유가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석유 가격이 어디로 튈지 예측이 어렵다.
유가 하락은 물론, 수많은 정치 경제적 원인의 결합으로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이면에는 세계 에너지 시장의 구도 변화라는 메가트렌드가 있다. 지난 세기 대부분 세계 에너지 시장은 비교적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석유와 천연가스·석탄·전기 등 에너지원은 각자 영역을 얌전히 지켜왔다. 예를 들어 천연가스 수급에 차질이 생겨도 그것이 석유나 석탄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석유 제품은 운송연료 및 석유화학의 원료로 사용됐고 조명과 가정용 에너지는 주로 중앙 집중형 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가 담당했다.
지금은 다르다. 육상·해상 운송 모두 천연가스가 널리 쓰인다. 또 전기 자동차가 대중화의 발판을 마련했고 휘발유차를 대체할 수단으로 주목 받으며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가정용 난방 시장에는 기름이나 가스뿐만이 아니라 태양광 패널이 침투하고 있다. 요컨대 에너지끼리 서로 경쟁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집을 새로 짓는 건축주는 이제 가장 저렴한 에너지원의 조합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그리드를 통한 중앙 집중형 전력, 분산형 태양광 패널, 그 지역의 일조량, 그 집 지붕의 방향, 태양광 패널 설치 비용, 세제 혜택 등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 새 차를 장만하려는 소비자도 역시 그 지역의 석유·가스·배터리 가격, 세제 혜택 등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할 것이다. 제주도에 산다면 0순위로 전기차를 고려할 수 있다. 서울 도심지가 거주지라면 아예 차를 사기보다 카 셰어링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이 같은 변화는 기존의 전기와 석유·석탄·가스 등의 가치 사슬의 비즈니스 모델을 뿌리부터 뒤흔들고 규제 차원에서도 전혀 다른 접근법을 요구한다. 어디에 투자하고 어디에 자본을 배분해야 할지, 어떤 규제가 합리적일지 등이 갈수록 어려운 문제가 될 것이다. 공공정책 역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시장이 어떻게 진화할지 장기적으로 어떤 파장을 미칠지 기업·정부 등 모든 이해관계자가 반드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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