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계 공존할 수 있을까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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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기계 공존할 수 있을까

2016.03.21


인간과 기계, 직관과 기술의 대결.
바둑계의 최강자 이세돌과 인공지능의 총아 알파고(Alpha Go) 간 세기의 대결은 엄청난 여운을 남겼습니다. 온 세계의 관심과 인류의 이목이 집중된 서울 대첩에서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과 두려움을 경험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인간이 무릎을 꿇었다는 놀라움으로.

이기는 것이 목표인 알파고의 감정 없는 공방에 이세돌은 5판 중 4판의 낭패를 당했습니다. “기리(棋理)를 다시 생각해봐야 되겠다”는 탄식과 함께. 다만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고 한 그의 강기(剛氣)에 다소의 안도감을 느낄 뿐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만고의 진리를 탐구한 공자, 그리고 인간세계를 바꾸고자 한 상앙의 지략과 관련된 두 고사가 떠오릅니다.

# 중국 문화를 정체시켰다는 공자의 술이부작
온고지신(溫故知新)을 주창해 온 공자(孔子)는 도(道)를 추구함에 있어서 술이부작(述而不作)을 강조했습니다. 시경(詩經) 서경(書經)을 정리하고, 춘추(春秋)를 편찬하고, 예(禮) 악(樂)을 제정하여 그것을 제자들에게 강술한 공자는 일체 자의(恣意)를 담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도를 그대로 현실 사회에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어서 ‘예전에 실재로 있었다’고 믿은 것만 전한 것입니다.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하고 새로운 것을 창안하지 않았다는 공자의 술회를 우리는 지극한 겸양인지, 아니면 고고한 학습과 구도정신의 기본인지 쉬 짐작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선현의 말을 설명만 하고 자설(自說)을 만들지 않은 공자의 정신은 역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후세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술이부작적 태도가 중국 문화를 정체시키는 큰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술이부작이 ‘말만 할 뿐’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 아류들에게 적용되는 말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말만 무성하고 실행하지 않는 정권’을 빗댄 나토 (NATO: No action, Talk only)의 의미로 말입니다. 옛일을 믿고 옛 현인을 좋아해 인간에게 절실한 진실을 추구한 공자의 정신은 뒷전으로 밀려난 채.

“서울대, 따라 하기 과학(me-too science)만 한다”(서울대 자연대 평가 11개월 프로젝트 보고서; 2015년 2월~2016년 1월)는 세계 석학들의 지적도 공자 비판과 같은 맥락입니다. 은퇴하는 교수가 ‘복사판’ 제자를 앉혀 창의적 연구를 막는다는 것입니다. 10년 동안 수업 주제도 바꾸지 않고 안주하는 교수 밑에서 어떻게 신기술이 탄생하겠느냐는 뼈아픈 충고입니다.

# 자신이 만든 법에 걸려 죽은 상앙의 사목지신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와 함께 대표적 법가(法家)로 조국 위(衛)나라를 배신한 상앙(商)은 진(秦)왕 효공(孝公)을 설득한 끝에 강력한 법치국가를 만들었습니다. 효공이 자신이 제안한 제도(帝道) 왕도(王道) 패도(覇道)보다 부국강병책을 받아들이자 엄격한 법을 만들어 진나라의 천하통일 기초를 다졌습니다. 반대도 있었으나 왕이 허락한 그의 법은 엄하기 짝이 없습니다.

(오늘날 오가작통법·연좌제 같은 제도를 두어) 죄를 고발하지 않거나 숨기면 참형한다. 세금을 잘 내면 부역을 면해주고 게을러서 가난한 자는 노예를 만든다. 군공(軍功)에 따라 벼슬을 주되 종실이라도 공이 없으면 족적(族籍)에서 제외한다. 공직 등급을 분명히 하여 전답과 집의 크기, 첩의 수를 정한다.
살벌하기조차 한 법입니다.

상앙은 법을 시행하기 전에 백성이 나를 믿지 않으면 안 된다며 한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수도 남문에 세 길 되는 나무를 심어 놓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심는 자에게 10금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아 상금을 50금으로 올렸습니다. 한 사람이 나무를 옮겨 심자 즉석에서 50금을 주었습니다. 그러고는 법을 공포했습니다. 사목지신(徙木之信)의 고사입니다.

법이 가혹하다는 불평이 들끓는 가운데 태자가 먼저 법을 어겼습니다. ‘법이 제구실을 못하는 것은 윗사람이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상앙은 태자를 벌할 수 없으므로 스승들을 참수 또는 묵형에 처했습니다. 이 법을 시행한 지 10년에 길에 떨어진 물건을 주워가는 사람이 없고, 도둑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집집마다 살림이 풍족해지고, 전쟁터에서는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상앙은 영토를 넓혀 수도를 옹(雍)에서 함양(咸陽)으로 옮기고 경지 정리, 공평 과세, 도량형 통일 등으로 진을 부국강병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그 공으로 상(商) 땅을 다스리는 상군(商君)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순식간에 닥쳤습니다. 효공이 죽고 태자가 혜왕(惠王)이 되자 그에게 원한을 품었던 무리들의 고발로 체포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도망 길에 함곡관(函谷關)의 여관을 찾은 상군이 하룻밤 머물기를 청하자 그를 모르는 여관 주인은 “상군의 법에 여행권이 없는 사람을 재우면 벌을 받는다”며 거절했습니다. “아! 내가 만든 법이 나를 옭아매는구나” 상군은 탄식과 함께 출생국 위로 갔으나 배신자로 낙인 찍혀 다시 진으로 쫓겨났습니다. 끝내 무리를 모아 전쟁을 벌이다 죽자 혜왕은 상군을 거열형(車裂刑)에 처했습니다.

# 과학의 영역에 침식당하는 인간의 지능
공자가 도 아닌 출세와 명리에 관한 옛 지식만 전했다면 오늘의 중국은 어떨까? 상앙이 자신의 공적에 거드름 피우지 않고 은퇴 권유를 받아들였다면 생명도 나라도 건졌을까?
역사의 가정이란 부질없는 짓이지만 작은 인간의 지혜는 곧잘 저울질을 해보는 것이 속성인가 봅니다. 욕하면서 막장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고, 비난을 하면서도 난장판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듯이.

아무튼 ‘두 살 인공지능이 5,000년 인간 바둑을 넘었다’고 한 소설가 복거일의 지적처럼 인간의 본능과 지능 영혼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과학의 영역에 침식당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궁극적 목적이 인체의 신비를 구명하고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개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두고 장고(長考)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장고 끝에 자충수나 악수를 두지는 말고.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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