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이 열광했던 게임 ‘바둑’의 신비 4가지


아인슈타인, 앨런 튜링, 존 내쉬 같은 

천재들은 왜 바둑에 열광했을까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대결이 끝난 뒤 후폭풍이 거셉니다. 


바둑이 새로운 붐을 일으키며 유행을 일으키고 있는데요. 두뇌 성장에 도움이 된다며 아이들에게 바둑을 적극 권장하고, 성인들도 바둑의 세계에 입문할 수 있는 무료 바둑 앱이 인기입니다. 과연 바둑을 두는 것이 지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까요? 바둑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클립아트 코리아 제공


아인슈타인과 앨런 튜링이 열광했던 게임

바둑은 지금으로부터 최소 2500년 전부터 중국에서 시작된 게임입니다. 바둑판은 가로세로가 똑같이 19줄로 총 19×19=361집인데요. 한가운데 있는 ‘천원’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모두 360집이 되는데, 이는 1년이 약 360일이라는 천문학적 사실에서 비롯한 것이죠. 흑과 백이 어우러지는 바둑은 음양오행 이론에 기반을 두고 우주를 형상화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선놀음’ 또는 ‘선비놀음’이라고 불리우기도 하죠. 서양의 체스가 동양의 장기에 해당한다면, 서양에는 동양의 바둑에 해당하는 게임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서구권에서는 바둑에 대한 궁금증이 있어왔습니다. 특히 수학자,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들은 체스보다 조금 더 지능적인 게임인 바둑을 오랫동안 동경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바둑을 좋아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즐겨뒀다고 전해집니다. 수학자 존 내쉬 역시 프린스턴대의 바둑 마니아로 아인슈타인의 계보를 이었습니다. 천재적인 과학자 앨런 튜링도 바둑을 즐겨뒀는데요. 그는 세계 2차대전 당시 암호 해독자로 작업하면서 동료인 수학자 어빙 존 굿에게 바둑을 소개했습니다.


어빙 존 굿은 ‘지능폭발’의 아이디어로 특이점 이론에 기여한 학자입니다. 특이점 이론이란 기계(기술)가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는 순간을 논하는 이론으로, 최근 알파고의 인공지능이 화제가 되며 다시금 회자되고 있죠. 어빙 존 굿은 1965년 뉴사이언티스트에 ‘바둑의 신비’라는 제목의 기고글을 통해 바둑이라는 게임의 인공지능 프로그래밍에 대해 적지 않은 영감을 줍니다.  

 

☞ 어빙 존 굿이 1965년 뉴사이언티스트에 소개한 ‘바둑의 신비’ 

아인슈타인(왼쪽), 앨런 튜링(가운데), 존 내쉬(오른쪽)의 공통점은? 천재 외에도 바둑 마니아였다는 것이죠. - pixabay, wikipedia, 프린스턴대 제공


바둑 천재들의 뇌 구조가 궁금하다

바둑 전문가를 넘어 바둑 천재로 불리우는 이세돌 9단을 비롯해서 바둑에 천부적인 실력을 지닌 이들의 뇌는 과연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세돌 9단 이전에 한국 바둑계를 이끌었던 이창호 국수는 언젠가 자신이 읽은 책한 권을 소개하며 힌트를 줬는데요.


그는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쓴 ‘생각의 탄생’을 읽고 4가지 생각도구, 패턴인식, 패턴형성, 유추, 통합이 바둑을 두는 데도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인공지능의 창시자인 미국 카네기멜론대 허버트 사이먼 교수는 일찍이 바둑이나 장기(또는 체스)의 고수들은 패턴인식과 형성에 능한 사람들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게임이 진행 중인 체스 판 위의 말을 5초 동안 보게 한 뒤 빈 체스 판에 위치를 복원해보라고 하면 초보자는 전혀 감을 못 잡지만 고수들은 거의 완벽하게 위치를 맞힌다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판 위에 임의로 말을 올려놓은 뒤 똑같은 실험을 하면 초보자나 고수나 모두 맞히지 못합니다. 체스 고수는 사진을 찍듯이 말의 위치를 외우는 게 아니라 게임이 진행되면서 그렇게 놓이게 된 패턴을 인식하기 때문이죠.


체스 대가의 장기기억 속에 축적된 조합의 수는 대략 5만 가지로 추정됩니다. 5만 가지의 각기 다른 항목 사이의 독특한 특징을 검색하는 기억 체계는 아주 빠르게 그것의 독특한 특징을 구별해냅니다. 이 정도의 패턴을 익히려면 1만 시간, 약 10년의 노력이 필요한데요. 이창호나 이세돌 같은 바둑 천재들은 이미 십대 때 바둑에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알파고와 제3국을 시작하는 이세돌 9단 - 구글 제공


바둑이 과연 지능에 도움이 될까?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지능이 높았기에 실력이 뛰어난 걸까요? 아니면 바둑을 두다 보니 두뇌가 발달하며 더욱 실력이 향상된 걸까요? 아마도 두 가지가 모두 작용했으리라 예상되지만, 우리가 궁금한 건 후자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바둑이 두뇌발달에 좋은 훈련이 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인데요.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권준수 교수팀은 이러한 바둑과 뇌의 상관관계에 대해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연구팀은 평균 나이 17세의 바둑 전문가 17명을 대상으로 1년 간 뇌 영상을 관찰한 결과, 뇌의 백질이 일반인보다 더 두껍게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평균 12년 정도의 훈련기간을 거쳤으며 9명은 프로기사로 활동 중입니다.


백질은 뇌 영역이 담당하는 집중력, 작업 기억, 수행조절능력, 문제해결력 같은 인지기능을 더욱 효율적으로 연결해 사용하게끔 도와줍니다. 다시 말해 백질이 두꺼운 뇌에서는 바둑 전략을 하나씩 기억하는 게 아니라 패턴 자체를 통째로 기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바둑 전문가들의 백질은 좌뇌보다 우뇌 쪽에서 더 발달된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뇌의 우반구는 공간지각력을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바둑은 공간싸움이기 때문이죠.


권 교수의 또다른 연구에서는 바둑 전문가들의 뇌에서 정서적 처리와 직관적 판단에 관여하는 편도체와 안와전두엽 부위가 활성화된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바둑 고수들의 뇌는 장기간 수련을 통해 정서적 처리, 직관적 판단을 처리하는 뇌 부위들이 서로 잘 연결돼 있어, 들어오는 자극에 원활히 대응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바둑 전문가들의 뇌를 관찰해 보니, 우측 편도체(Amygdala), 측좌핵(Nucleus accumbens)과 안와전두엽 사이에서 

기능적 연결성이 커졌음을 확인했습니다. 장기간 수련이 뇌의 기능을 향상시킨 결과죠. - 서울대학교병원 제공


바둑의 고수, 남자가 많은 이유는?

역대 바둑의 고수들을 봤을 때, 여성에 비해 남성이 더 눈에 많이 띄는 이유는 무얼까요? 공간을 잘 인식해야 하기 때문일까요? 남성이 여성보다 공간지각력이 뛰어나냐는 논쟁은 오랫동안 논의돼 왔지만, 결론은 ‘개인차’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전체 남성의 공간 관리능력은 전체 여성의 같은 능력보다는 앞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류 외의 다른 종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발견한 연구가 있는데요. 미국 피츠버그대학 인류학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수컷들이 암컷을 찾아 헤매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공간관리능력과 공간지각력을 갖게 됐다는 이론을 주장했습니다.


연구팀은 실험동물로 선택한 펜실베니아의 들판에서 사는 풀밭들쥐(meadow vole)는 독특하게도 더 넓은 땅을 확보할수록 더 많은 수의 암컷을 차지합니다. 연구팀은 이런 경쟁적인 영토확장 노력이 수컷에게 공간에 대한 정보를 심어주었고, 그 유전자를 후손에 물려줬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또 다른 근거로는 남성과 여성의 유전차 차이를 근거로 들 수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평균 IQ는 비슷하지만 남성은 극단적으로 천재성 또는 정신지체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이유는 남성에게 X염색체가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울름대 호르스트 하마이스터 박사팀의 연구에 따르면 X염색체에는 지능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것과 관련된 유전자가 있습니다. 여성은 평균 지능 관련 유전자가 있는 또 다른 X염색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기능이 제지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성은 일단 X염색체에 이런 기능을 가진 유전자를 갖게 되면 발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요. 이 때문에 아인슈타인, 모차르트, 피카소 등 역사적인 천재 타이틀은 모두 남성에게 돌아간 게 아닌가 합니다.


 

1900년대 초 여성과 남성이 바둑두는 풍경.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 국회도서관 제공


※필자소개

이종림. IT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와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했다. 최신 IT기기, 게임, 사진, 음악, 고양이 등에 관심이 많다. 세간의 이슈들과 과학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글쓰고 있다.

이종림 객원기자 lumen0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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