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TV 연예'의 폐지를 보며 [박상도]



www.freecolumn.co.kr

'한밤의 TV 연예'의 폐지를 보며

2016.03.08


'한밤의 TV 연예'가 폐지됩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좀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잠정 휴식 기간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1995년 2월 9일에 첫 방송을 했으니, 올해로만 21년이 되었습니다. 한창 인기가 있었을 때에는 요즘같으면 꿈도 꾸지 못할 30% 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하였으니 프로그램의 인기와 영향력이 얼마나 컸을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시청률은 그 10분의 1로 떨어졌습니다. 재능 있는 PD와 열정적인 작가들이 매주 심혈을 기울여서 제작하고 있지만 서산에 지는 해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공중파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잠정적 폐지를 보며 많은 방송관계자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방송채널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미디어 소비자들은 연예정보를 주로 방송과 신문으로 접했으며 당시 매주 목요일 밤에 방송되던 '한밤의 TV 연예'는 스타들의 사적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였습니다. 즉, 연예정보를 두세 개의 공중파 프로그램이 과점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 시장에 연예정보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엔 이슈의 한가운데에 있는 연예인의 이름이 실시간으로 순위가 매겨져서 등장하고 기사 하나를 클릭하면 관련 기사 수십 개가 등장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방송을 통해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를 전달해서는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가 없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한밤의 TV 연예'가 시청자의 사랑과 신뢰를 받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초창기 이계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한밤의 TV 연예'는 진행자의 진중함이 프로그램의 품격을 이끌었으며 유정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때에도 MC가 프로그램의 중심을 잘 잡아나갔습니다. 연예인이 아닌 진행자의 기용으로 연예프로그램임에도 자칫 연예인 홍보의 장으로 그칠 것 같은 경박함을 제어했으며, 시청자의 요구에도 정도를 지켜가며 대응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아침 주부 대상 프로그램과 일부 보도 프로그램 그리고 케이블 TV가 연예 정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부터 프로그램의 품위는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 한 케이블 TV 프로그램에서 영재 자녀를 둔 스타들의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스타들의 얘기였습니다. 자식농사를 잘 지은 연예인이라는 소재는 미디어 시장에서 ‘잘 팔리는’ 제목입니다. 그런데 ‘누구 누구 자녀가 영재이다’, ‘누구의 자녀는 현재 미국 명문 대학에 재학 중이다’, ‘어느 스타 부부의 자녀는 유명 사립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며, 그 사립 학교는 1년 교육비가 천만 원이 넘게 드는 곳이다’ 등등의 설명을 들으며 같은 미디어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부끄러움에 탄식이 나왔습니다.

흙수저 금수저 논란과 청년 실업으로 온 사회가 열패감에 빠져 있는데 경제적으로 윤택한 부모를 만나서 영재학원에, 사립학교에, 해외 명문대학에 다니는 자녀를 둔 이야기가 과연 시기에 맞는 컨텐츠일까요? 제대로 배운 프로듀서와 작가가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면 지금 같은 시기에 그런 제목의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설령 기획을 했다고 해도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과 그 자녀들을 단순한 가십거리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프로그램의 내용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온라인 상에 뉴스의 형태로 도배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톱 클래스 자녀를 둔 스타’를 검색하면 관련 뉴스가 어림잡아 80여 건 정도나 나옵니다. 익숙한 스타의 자녀가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다는 뉴스이니 여러 매체들이 앞다퉈 기사를 작성해서 뿌렸을 겁니다. 이 뉴스가 사회의 통합에 기여하는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지면을 할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단순히 ‘팔리는 콘텐츠인가?’만을 고려해서 더욱 더 잘 팔릴 수 있게 자극적인 제목을 붙여 독자들을 낚시질하는 데에만 열중한 모습입니다. 보이스피싱으로 다른 사람의 돈을 훔치는것은 범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넘쳐나는 과장된 기사 제목들의 피싱으로 돈보다 더 귀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돈은 다시 벌 수 있지만 사회에 만연하게 된 불신은 돈으로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런 가치 없는 뉴스에 메이저 언론사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독자에 대한 예의와 정론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뉴스를 전달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플랫폼인 인터넷 포털 사이트는 태생부터 언론사의 기능에 대한 고민이 없이 출발했습니다. 인터넷의 가장 큰 장점인 탈 규제와 표현의 자유를 외치며 고급 정보는 물론이고 쓰레기 같은 정보까지 쉴새 없이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이들 인터넷 기업은 우리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러한 힘을 바탕으로 돈을 벌고 있지만 책임과 의무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터넷에는 기사인지 광고인지 모를 콘텐츠들이 난무하고 TV에는 하루살이같은 마음으로 당장 만들고 보자는 식의 프로그램이 넘쳐납니다. 아침 프로그램에 잉꼬부부로 소개된 연예인 부부가 몇 달 후 갑자기 이혼을 하는가 하면 그로부터 또 몇 달 후엔 홀로서기에 성공한 연예인으로 미화되어 각각 TV에 등장합니다. 10대 아이돌 스타들에게 경어를 붙이는 것도 모자라서 요즘 웬만한 연예인들에겐 ‘하느님’과 동격의 뉘앙스를 풍기는‘아무개느님’을 남발합니다. 언어는 그 자체가 프레임을 만듭니다. 당장은 좋을 수 있어도 ‘느님’이라는 호칭이 나중에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알고 싶지 않은 연예인들의 공항 패션은 한동안 인터넷 연예 뉴스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올해 프로야구에서는 또 어떤 시구가 유행을 할는지 기대보다 걱정이 앞섭니다. 보고 싶은 스타는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가 개봉할 때만 대중 앞에 나서 줍니다.

시청자들은 너무나 반복되는 식상한 연예뉴스, 잘하든 못하든 찬양 일변도로 포장하는 연예뉴스, 광고인지 뉴스인지 모르는 연예뉴스에 싫증을 느낀지 오랩니다. 이 모든 것이 지나친 경쟁에서 기인된 것이긴 하나 정도(正道)를 지키지 않은 제작자들의 책임이 더 큽니다. '한밤의 TV 연예'의 잠정 폐지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결과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초록은 동색입니다. 잠시 휴식기를 갖고 이 시대에 맞는 진정한 연예 정보 프로그램은 어때야 하는지 깊은 성찰을 통해 다시 한번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