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안 지키는 상대방에 '내용증명' 보내야 하는 이유


"계약불이행 때를 대비해 근거 꼭 남겨야"


   한 의뢰인이 찾아왔습니다. 절박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은 간단했습니다. 



의뢰인은 거래처와 계약을 맺고 기계제작 주문을 했는데 기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도 기계 성능이 영 엉망이고 제대로 된 결과물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계약금과 중도금은 이미 건넸고, 잔금만 남은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독촉만 할 게 아니라 '내용증명'까지 보내야 하느냐며 하소연 했습니다.


이미 계약을 맺고 있는 업체를 상대로 내용증명을 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좋게 말로 설득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이번 사례는 과거 수행했던 사건과도 아주 흡사했습니다. 당시 B사도 외부업체 C사와 기계제작 계약을 맺은 후 기계가 제대로 납품 되기만을 기다렸는데, 계속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B사 총무부장은 C사에 내용증명이라도 보내려고 했는데 B사 사장께서 말렸죠."이미 인연을 맺은 회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은 내 경영철학과 맞지 않는다"라며.


C사는 계속 납품을 못했고, 결국 B사는 '너희들과는 더 이상 계약진행 못하겠다'며 해제통보를 보냈죠. 돈도 돌려달라고 하고. 하지만 C사가 이에 응하지 않자 B사는 C사를 상대로 이미 지급한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판에서는 C사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느냐가 쟁점이 됐습니다. 그러나 B사는 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재판장은 B사가 C사에게 문제제기(현재 계약이행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 빨리 이행하라)를 했다는 증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B사는 구두로 클레임을 제기한 것밖에 없었지요.


당시 재판장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아니, 몇 억이 걸린 계약인데, 상대방이 문제가 있으면 당연히 내용증명 등을 보내 문제를 지적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단지 구두로 문제를 지적했다는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지 않아서 그랬던 거 아닌가요?"


좀 어려운 얘기지만 소송의 입증책임 원리상 B사가 C사의 잘못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지만 B사는 말로만 클레임을 제기했고 C사는 이제 와서 "B사와 계속 커스터마이징 논의를 했던 것이지, B사가 클레임을 제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답니다. 결국 B사는 C사의 계약불이행을 입증하지 못해 패소했습니다. 이미 지급했던 계약금과 중도금을 못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함부로 계약을 해제했다는 점이 문제돼 잔금까지 토해내고 말았죠. 이 사건으로 B사는 1년 영업이익을 날렸습니다.


B사 사장은 그 이후 경영철학(?)이 바뀌셨답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면 내용증명을 보내 근거를 남기신다더군요. 상대방이 계약을 불이행하고 있을 때 무조건 내용증명 통보를 하는 것을 권장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나중을 대비해 어떤 식으로든 근거를 남겨두는 것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미묘한 판단을 잘 해야 합니다.



계약 안 지키는 상대방에 '내용증명' 보내야 하는 이유

'뚜벅이 변호사'·'로케터'로 유명한 조우성 변호사는 머스트노우 대표로 법무법인 태평양을 거쳐 현재는 기업분쟁연구소(CDRI)를 운영 중이다. 베스트셀러인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의 저자이자 기업 리스크 매니지먼트 전문가다.

머니투데이 조우성 변호사(머스트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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