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조 국민연금, 금융 투자가 99%..공공투자 더 늘려야 '논쟁'
경제문화 Economy, Culture/경제금융 Economy Finance2016. 2. 23. 11:23
국민연금 ‘공공투자’ 늘려야 한다 논쟁
수익성 논란 등 반대 여론도 ‘팽팽’
“시장에 풀지 않는 연간 약 8조원 특별 채권
공공임대주택, 보육시설 등 건설”
“Back to the Basic”
국민연금 제도를 설계한 서상목 전 복지부 장관이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의 공공투자 방안 토론회'에서 만 30년이 되는 국민연금의 운용에 대해 이같이 외쳤다. 기금 규모 5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99.7%인 505조3000억원이 모두 금융 부분에 투자돼 있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한 말이다.
국민연금 500조원 투자 현황/제공=김연명 교수
국민연금 500조원 중 복지부문 투자는 1380억원에 불과하고, 공공투자는 전무한 상황이다. 서 전 장관은 현행 국민연금제도 수립의 기초가 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서 기금 운용의 원칙으로 안정성·수익성·공공성을 제시했다며, 현행 제도가 공공성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Back to the Basic’, 국민연금기금 운용을 제도 설계 초기 의도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기업 주식시장 ‘큰 손’ 국민연금…저출산 대비 공공투자로 눈 돌리자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준 약 505조원이 적립돼 있다.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국민연금은 오는 2040년 2300조원이 된다. 이는 단일 공적연금 기금으로 세계 최고 적립액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현재 법적으로 ‘수익성 증대’와 ‘안정성’이라는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47%의 266조원을 국내 채권에, 19%인 93조원을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이 외에 13%인 65조원을 해외주식에, 10.2%인 51조원을 대체투자에 넣고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내채권 266조원은 국채, 특수채, 통안채, 회사채, 금융채로 정부의 재정 사업 자금 조달과 환율 안정을 위한 기능, 공사와 공단 사업의 자금 조달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주식 93조원은 대기업 위주로 투자하고 있다. 수익성과 안정성을 위해 안정적인 기업에 투자할 수 밖에 없는 탓이다. 대형주가 74조원인 반면 중소형주가 15조원, 코스닥은 6조원 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상 국민연금이 우리나라 대기업의 주가를 받쳐주고 있는 셈이다.
최근 비중을 늘리고 있는 대체투자는 공공 인프라 건설에 대한 지원이다. 국민연금은 대체투자로 도로, 주택 등 부동산과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 간접 투자를 하고 있다.
국민연금 ‘양극화 촉발’…20년 고갈하는 동안 현금화해야, ‘주식 시장 폭락’ 가능성
최근 국민연금의 이같은 운용 방식에 대해 ‘변화’가 필요하다는 논쟁이 불붙고 있다. 특히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야권에서 국민연금 적립금으로 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안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공론화의 장이 열리고 있다.
변화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첫번째는 국민연금이 양극화를 촉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규모가 거대해지고 있지만, 대기업 위주의 과도한 금융 자산 위주 투자를 하고 있는 탓에 사회의 균형 발전을 위한 ‘공공성’ 노력이 없다는 인식이다. 또한 국민연금은 덩치가 커져 국내에 투자할 곳이 없어지자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민연금이 국내 고용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을 위한 저출산 문제 해결은 국민연금의 운명과도 연결돼 있다. 국민연금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 2040년 최고액을 적립하고 2060년에 고갈된다. 저출산 문제가 심화되면서 적립할 수 있는 금액보다 내줘야할 금액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금의 고갈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민연금이 저출산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두번째 우려는 국민연금의 고갈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문제다. 전문가들은 2040년 23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이 2060년까지 20년간 주식과 채권의 현금화에 나설 경우 국내 주식 시장이 폭락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행처럼 99.7%를 금융 부문에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식을 팔아야할 때 시장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국민연금의 성격 ‘신탁 기금 VS 사회투자자본’
그러나 이러한 우려에도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변화를 반대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국민연금 기금의 성격에 대한 시각이 다른 탓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성격에 대해 신탁 기금으로 보느냐, 사회투자자본으로 보느냐는 두 개의 시각이 존재한다.
국민연금의 공공투자를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을 ‘연금 급여 지출을 위한 책임 준비금’인 신탁 기금으로 본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목표는 가입자의 돈으로 최대한 수익률을 높여 기금의 크기를 증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무적 수익이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수익률이 높은 금융 상품에 집중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주식 투자는 기업의 자금을 조달하고, 생산 부분에 대한 자금 투자가 경제 성장에 기여해 연금의 재정 기반이 확보된다는 측면도 있다.
반면 현재 기금 운용을 바꿔서 공공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을 ‘사회투자자본’으로 본다. 이들에게 국민연금은 책임준비금인 동시에 사회발전기금이다. 국민연금의 목표는 경제사회의 균형 발전을 위한 부분에 기금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기금 운용 방식보다 사회적 이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간접자본과 주택 등 복지와 공공 부문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육 시설을 늘리는 데 대폭 투자해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해지면, 자연스레 출산율이 상승해 연금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이 확보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국민연금이 공공투자에 나설 경우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국민연금이 공공투자에 나서는 방식에는 직접 투자와 간접 투자, 채권 투자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직접 투자 방식은 연금 공단 내 자회사를 만들어 국민연금 어린이집, 국민연금 임대주택, 국민연금 병원 등을 건설해 가입자에게 시설 운영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장점은 국민연금 제도 가입 유인 확대로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이 많다. 공단에 별도 사업단을 구성해야 하며, LH(토지주택공사) 등 기존 사업자와 기능이 중복될 수 있다. 시설 건설 및 운영의 전문성 확보와 수익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비판이 나올 수도 있다. 기금 축소기에는 현금 유동화의 어려움도 있다.
간접 투자 방식은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회복지 인프라 확충 사업에 국민연금이 참여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시설 소유권은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로 이관돼 운영비를 부담한다. 국민연금은 약정된 기간에 이자와 원금을 회수하는 것이다. 장점은 일종의 대체투자를 확대하는 것으로 수익률 문제가 완화된다. 또한 단기간에 공공 복지 시설을 확충할 수 있는 자금이 확보되고, 국민연금 기금의 현금 유동성 확보도 유리하다. 하지만 이 방식 또한 단점이 있다.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운영을 하기 때문에 지역간 시설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 아울러 최저수익률 보장 등 간접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제안하는 방식은 채권 투자 방식이다.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국민연금이 사들여 시장에 풀지 않고 공공 부문에만 투자하는 것이다. 일명 ‘특별 채권’이다. 국민연금은 특별 채권을 공공 임대주택, 공공 병원, 공공 보육시설, 공공 요양시설 등의 매입과 건설에만 투자할 수 있도록 한다. 특별 채권 제도는 미국에서도 시행 중이다. 미국 재무성은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는 특별 채권을 국민연금 기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아울러 일본에서도 1960년대 공적 연기금을 이용해 공공 병원 설립에 투자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오는 2019년까지 연간 약 86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여유 자금 중 10%인 연간 약 8조6000억원을 공공 복지 인프라에 투자하자는 주장이다.
만만치 않은 반대 여론…“빚내서 복지…수익률 보장 위험”
국민연금의 공공투자에 대해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 부채의 증가와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률 약화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일단 채권을 늘려 공공 부문에 투자하는 것은 ‘빚을 내서 복지를 한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채권의 총량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이 운용하는 국채 규모인 234조원에서 공공 투자 채권의 비중을 늘린다는 것이다. 채권의 종류가 변하는 것이지 총량은 같기 때문에 ‘국가 채무’가 더 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채권 운용 종류가 달라지면 수익률도 변할 수 밖에 없다. 이 부분에 대해 전문가들은 안정성과 수익성이 보장되는 국고채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익성 논란을 배제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성훈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공공 임대주택 투자가 국고채보다 수익률이 높다고 주장한다. 정 교수는 공공 임대주택을 부지면적 1300㎡, 용적률 200%, 보증금 1000만원(뉴스테이 기준), 임대료 30만원, 토지매입비(3.3㎡) 300만원을 기준으로 봤을 때 IRR(내부수익률) 기준으로 10.5%의 사업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국고채 금리는 3년물 1.586%, 5년물 1.721%, 10년물 2.042%, 20년물 2.188%, 30년물 2.241% 수준이다.
전슬기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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