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장(五日場)에서 장을 보는 이유 [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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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五日場)에서 장을 보는 이유

2016.02.16


필자는 오일장을 자주 갑니다.

특히 명절 때가 되면 빈대떡도 부치고 고사리, 도라지 나물도 차례상에 올려야 해서 아내와 함께 오일장을 찾습니다. 서울 근교의 오일장 중 가장 규모가 큰 양평 오일장에는 싸고 좋은 농산물들이 많습니다. 이맘때면 대형마트에서 고사리 한 움큼에 1만 원이 넘는데 오일장에서는 비닐봉지 한가득에 1만 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값만 싼 것이 아니라 맛도 훨씬 좋습니다. 고사리 한 봉지를 사고 돌아서면서 아내는

“마트에 가서 이만큼 사려면 3만 원은 줘야 하는데 오늘 정말 잘 샀네.”

하면서 즐거워합니다.

20여 년 전에 대형마트들이 등장할 때는 전통시장보다 싼 가격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훨씬 쌉니다. 명절 차례상을 장만하는 비용도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더 저렴하다고 뉴스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논리에 따르면 규모가 커지면 가격이 내려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대형 마트의 등장을 통해 사람들은 더 좋은 물건을 더 싼 가격에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한동안 그런 혜택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은근슬쩍 가격이 오르더니 이젠 전통시장이 오히려 가격 경쟁력이 생긴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 바뀌었습니다. 걸어서 시장에 가서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집에 돌아오는 것보다 남편 손을 잡고 마트에 가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입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여 전통시장과 동네 상권을 살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으나 크게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온라인 판매가 대형마트의 새로운 적수로 등장했습니다. 지난해 온라인 쇼핑몰 판매액은 43조 6천억  원으로 대형마트 매출보다 3조 3천억 원 더 많았습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생수 한 병을 사도 집까지 배달해 주는 편리함이 1인 가구나 맞벌이 부부에게는 큰 매력일 것입니다. 그런데 온라인 쇼핑이 소비 패턴으로 굳어지면 슬슬 배송료와 물건 값이 오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대형마트가 그래 왔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마트 모두, 몇 개의 대표적인 기업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습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1%만을 위하는 경제학은 죽었다’라는 칼럼에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경제학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기업자본이 정치 사회 언론을 지배하고, 그 정치가 경제정책을 주도하는 형국이다. 이른바 대기업자본주의(Coporato-cracy) 시대가 도래(到來)한 것이다. 경제활동의 대부분은 독과점 재벌기업의 영향하에 있으며 나머진 정경유착의 지하경제가 판을 치고 있다. 시장경제란 말뿐이고 실제로는 독과점화되어 있거나 대기업 위주이다. 이같은 왜곡된 경제구조를 타파하여 수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만능주의가 홀로 경제정책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중략) 미국 유학파 중심의 경제학 교수들은 다투어 정부 당국과 대기업, 그리고 재벌 언론의 비위에 맞추어 그들의 주문대로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인류를 빈곤으로부터 구제할 것이라고 찬양하는 연구와 강의를 해왔다. 경쟁력 없는 기업과 산업은 죽어 마땅하다고 합리화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 문제는 구제할 수 없는 퇴출대상이 되고 말았다. 명색이 농업경제학 교수, 박사라는 사람들이 제 살 길, 먹을거리만 챙기고 99%의 농민들이 죽어가는 현실을 당연시해 왔다. 마찬가지로, 99%에 속하는 노동자, 중소상공인도 점차 설 자리가 좁혀지고 있다.

학계(學界)와 관계(官界)를 두루 거친 그분의 회한이 느껴지는 고백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금 이 지경이 된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미국 캔사스 주의 작은 도시인 로렌스를 갈 때 겪었던 일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캔사스 시티로 가는 직항 편과 필자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는 시간이 맞지를 않아서 덴버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는 경유 노선을 선택했습니다. 당연히 직항보다 요금도 저렴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팝업 창이 하나 떴습니다. ‘비행기가 연착해서 여행에 차질이 생겼을 때, 보상을 해주는 보험에 가입하겠느냐?’는 안내 문구였습니다. 비행기가 연착을 해서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항공사에서 다음 비행기가 연결될 때까지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깨알같이 작은 글귀를 살펴보니, 한구석에 연착에 대한 보상은 따로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귀가 있었습니다. 비행기 티켓 값이 싼 이유는 이런 보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다지 싸게 팔지도 않았으면서 말입니다.

보험에 가입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만일에 연착이 돼서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보험사에 연락해서 보상을 받는 것 또한 여행자에게는 귀찮은 일이라는 생각에 보험 가입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터져 버린 것입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사정으로 덴버로 출발하는 비행기가 두 시간 늦게 출발한 것입니다. 덴버 공항에 도착해 보니 캔사스 시티로 출발하는 비행기는 이미 30분 전에 이륙했고 그 비행기를 놓친 사람들이 100 미터 가까이 줄을 서서 다음 비행기를 타기 위한 예약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려 세 시간 가까이 기다린 후, 항공사 직원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들은 이야기는 예약을 한 순서대로 이후 출발하는 비행기의 빈 좌석에 앉혀주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들 항공사의 비행기가 연착을 해서 연결편을 타지 못한 승객에게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무척 짜증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런 일이 자주 있는 일이라는 듯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이어지고 일부는 다음 날 아침에, 또 일부는 오후에, 그리고 우리 가족은 다음 날 저녁에 캔사스시티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온 가족이 같은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서 다른 비행기를 탔습니다.

필자는 몇몇 미국인들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 봤는데 그들도 사람인지라 속으로 화가 많이 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결론은, 개인이 거대 기업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포기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공항에서 난동이라도 부리면 경찰력이 막강한 미국에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덴버 공항에서 필자는 강대국 미국에서 살아가는 힘없는 미국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는 동네 약국이 없습니다. 월그린스(Walgreens), CVS, 라이트 에이드(Rite Aid) 같은 대형프렌차이즈 약국만 있습니다. 소매점 역시 월마트(Walmart)나 타겟(Target) 같은 대형 체인점이 거의 장악하고 있습니다. 식료품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이프웨이(Safeway)와 트레이더즈 조(Traders Joe’s) 그리고 홀 푸즈(Whole foods)가 공룡처럼 다른 동네 소매점을 잡아먹었습니다. 동네에서 작은 점포를 경영하던 사람들은 거대 기업에 고용되어 점원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렇게 대형화한 기업들은 막강한 자금력으로 로비를 합니다. 월마트에서 일하는 점원들의 급여 수준은 동일 업종 중에서도 매우 낮습니다. 미국 정부는 이들의 건강보험을 위해 많은 공적자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결국 월마트가 지불해야 하는 돈을 미국 정부가 지불하는 셈입니다.

필자가 오일장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싸고 좋은 농산물을 사려고 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필자 역시 월급으로 생활하는 소시민입니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 구조에서 절대 약자일 수밖에 없는 위치인 것입니다. 작은 단위의 경제 주체가 서로 어울려 경제 활동을 하는 곳이 전통시장이고 오일장입니다. 사는 사람이나 파는 사람이나 대등한 관계에서 거래가 이루어지고 더 나아가서 죽은 경제이론으로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인간관계가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권력이든 금력이든 거대해지고 그들끼리 네트워크로 묶이게 되면,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필자가 오일장과 전통시장을 찾는 것은 독점과 과점에 대한 작은 반항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경제주체 간의 밸런스가 무너지면 결국 피해를 입는 쪽은 힘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오일장과 전통시장을 찾을 것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 '모닝와이드'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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