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악화로 비행기 못뜨면 '호텔' 아니면 '모텔'에 숙박한다

특급호텔 ‘세컨드 브랜드’ 출시 붐
프랑스계 이비스 성공적 안착에 자극
국내사 롯데시티·신라스테이 등 개점

지난 1월 25일 제주국제공항 폭설 폐쇄로 승객들이 공항내에서 노숙하고 있다. 이때문에 개인여행객의 자유개별여행(FIT)에 대한 

대책 논란이 새삼 불거지고 있다. 출처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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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3일 갑작스러운 폭설로 제주공항에서 여행객의 노숙 풍경이 펼쳐지던 날 호텔신라의 ‘신라스테이 제주’는 특별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뜻밖의 행운’이란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체크아웃 당일에 기상악화로 항공편 결항이 발생하면 무료 1박을 제공한다. 이는 제주도 섬 기후의 특성상 폭우나 폭설로 여행객들이 발이 묶일 때를 대비한 연중 서비스다. 

이 호텔은 지난해 3월 문을 연 뒤 6월에 이 서비스를 처음 선보였다. 같은 해 7월 태풍 ‘찬홈’이 제주에 닥쳤을 때 첫번째 수혜자가 나왔고, 올해엔 연초부터 폭설 대란이 벌어져 다수 숙박객이 혜택을 봤다. 


같은 계열 브랜드이지만 특급호텔인 ‘신라호텔 제주’는 하지 못한 통 큰 마케팅이었다. 상대적으로 방값이 싸서 비용 부담이 가벼운 ‘세컨드 브랜드 호텔’ 특유의 빛나는 마케팅 전략이었다.

2000년대 이후 경제 글로벌화 진전
일본·중국 관광객 차례로 밀려들며
중간 등급 호텔 급성장 이끌어내

수영장·미니바·룸서비스 없앴지만
숙박의 질 유지해 이용자 큰 호응
외국서 발달한 비즈니스호텔과 유사

업계와 정부 ‘공급과잉 논쟁’ 신경전
관광 콘텐츠 경쟁력 고민이 앞서야

국내 특급호텔 업계가 ‘세컨드 브랜드 호텔’ 지점을 앞다퉈 열면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특급호텔의 고급 이미지에 실리적인 서비스를 담아 가격을 낮춘 보급형 호텔 브랜드의 출시가 봄을 맞은 셈이다.

지난 1일 호텔신라는 2013년 말 첫번째 ‘신라스테이 동탄’을 연 지 2년여 만에 서울 구로에 8번째 지점을 열었다. 앞서 호텔롯데는 2009년 ‘롯데시티호텔 마포’를 연 지 6년여 만에 국내 7번째 지점을 지난달 서울 명동에서 개관했다. 지난해에는 웨스틴 조선호텔이 서울역 부근에 ‘포 포인츠 바이 쉐라톤 서울 남산’을 선보이기도 했다. 값비싼 특급호텔이 중심이 된 관광호텔업과 저렴한 모텔·여관이 중심이 된 숙박업으로 양극화해서 ‘다양성이 부족하다’, ‘관광·컨벤션 산업의 인프라가 약하다’는 평을 듣던 우리 숙박 서비스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모양새다.

신라스테이, 롯데시티호텔처럼 국내 업계가 앞다퉈 내놓는 세컨드 브랜드 호텔은 흔히 외국에서 ‘비즈니스호텔’이라 통하는 영역을 겨냥하고 있다. 대개 수영장과 룸서비스를 없애는 등 부대시설과 인건비 투자를 최소화해서 가격을 낮추면서도 객실과 필수 서비스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 객실 특화형 호텔로 분류된다. 예컨대 특급호텔엔 없지만 비즈니스호텔에만 있는 시설들이 있다. 음료수 자판기, 동전 세탁기, 무료 컴퓨터 등이 대표적이다. 특급호텔처럼 세탁서비스, 미니바, 비즈니스센터가 없는 대신에 이런 무인 시설들이 고객 서비스 수요를 대체하는 셈이다. 특급호텔이라면 당연히 떠올릴 만한 룸서비스도 신라스테이, 롯데시티호텔, 포 포인츠 바이 쉐라톤 등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숙박 서비스 시장에서 이런 가능성을 처음 엿본 것은 프랑스 아코르 계열의 앰배서더 호텔 그룹이었다. 서울 대치동에 2003년 그랜드 앰배서더 특급호텔의 세컨드 브랜드로 ‘이비스 앰배서더 서울 강남’을 열면서 처음으로 비즈니스호텔 개념을 국내에 도입했다. 

 

한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글로벌화하면서 비즈니스 출장과 외국인 관광 수요가 커지고 있었지만 도심 숙박시설이 특급호텔과 모텔로 양극화한 채 중간 등급의 합리적 숙박시설이 없다는 점을 눈여겨본 것이었다. 앰배서더 호텔 그룹 쪽은 “처음엔 한국의 대외 인지도가 높지 않은데 저렴하지만 축소된 서비스로 고객의 발길을 잡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당시 특급호텔 숙박비는 적어도 16만~20만원이었는데, 이비스는 10만원대 초반에 방을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이비스는 이런 성공을 기반으로 배낭여행객을 겨냥해 더 값을 낮춘 ‘이비스 버젯 앰배서더’를 부산 해운대와 서울 동대문에도 여는 등 세컨드 브랜드 호텔을 발 빠르게 진화시키고 있다.

이는 경쟁사인 국내 특급호텔 업체들을 자극했다. 호텔롯데는 2007년에 전담반을 구성해 이비스, 토요코인 등 기존 비즈니스호텔들을 연구하며 롯데시티호텔의 출범을 준비했다. 결국 2009년 4월 서울 공덕동에 ‘롯데시티호텔 마포’가 문을 열기에 이른다. 호텔롯데 홍보 담당자는 “서울 도심과 여의도라는 업무단지 사이에서 양쪽 비즈니스 고객을 모으기에 적합해서 서울 마포가 1호점으로 선정됐다”고 설명했다. 2013년 11월 호텔신라는 경기 동탄 새도시에 1호점인 ‘신라스테이 동탄’을 열었는데, 인근에 삼성전자 등 기업 수요가 많은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후 세컨드 브랜드 호텔의 추가 출점은 1차적으로 비즈니스 수요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롯데시티호텔은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대전의 대덕연구단지, 국내 제조업 중심지인 울산 등에 지점을 늘렸다. 신라스테이도 울산, 서울 광화문과 강남구 역삼동 등 핵심 업무단지를 중심으로 출점했다. 특급호텔은 업무지역이나 관광지와 거리가 멀어도 호텔 시설에서 즐길 거리를 찾는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지만, 비즈니스맨들은 도심 업무단지에서 가까운 편안한 숙박시설을 고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인 관광객(유커)을 비롯한 외국인 여행객 증가도 세컨드 브랜드 호텔 투자와 성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관광지식정보시스템의 ‘입국관광통계’를 보면, 지난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2003년 이후 12년 만에 처음 외국인 여행객이 전년 대비 감소했으나, 평균적으론 해마다 10% 안팎 증가하고 있다. 2011년 979만명이었던 외국인 여행객이 2014년 1420만명으로 3년 만에 450만명 가까이 늘어났을 정도다. 엔화 강세 시절에 일본 관광객이 밀려들었고, 이후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자 중국인 관광객이 빈자리를 채웠다. 정규엽 세종대 교수(호텔경영학)는 “서울 등 수도권 내에 유커가 많이 몰리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적당한 가격의 호텔 수요가 늘었다. 유커는 가격에 민감해서 합리적 가격을 제시하는 세컨드 브랜드 호텔이 경쟁력이 있다”고 짚었다.

이에 정부는 “2009년부터 외국인 관광객은 연평균 10% 넘게 증가하는데 관광숙박시설 증가율은 3~4%에 그쳐 수급 불균형이 있다”면서, 2012년 숙박업 규제를 완화한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했다. 이는 특급호텔 업계가 세컨드 브랜드 호텔을 늘리고, 다른 저가형 호텔 브랜드들이 앞다퉈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관광호텔업협회와 서울시의 자료를 보면, 대체로 비즈니스호텔급이 많이 포함돼 있는 서울시내 특2급(4성급)과 1급(3성급) 호텔 수가 2013년 71개에서 2015년 98개로 38%나 늘어났다. 국회는 지난해 말 이 특별법을 1년 더 연장했다.

이처럼 특급호텔 업계에서 세컨드 브랜드 호텔 붐이 일어나고 중간 등급 호텔이 급증하는 데 대해 기존 숙박 업계의 반발도 상당하다. 한국관광호텔업협회 성연성 사무국장은 “2012년 규제 완화로 건립을 승인받은 호텔들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영업에 들어갔다”며 “공급 과잉은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불러 외국인 여행객의 불만을 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비즈니스호텔 관계자는 “앞으로 특급호텔의 후광 효과를 받는 세컨드 브랜드 호텔이나 경쟁력과 개성을 갖춘 일부 중간 등급 호텔들을 빼고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숙박시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호텔 객실 수급 정책에 대한 논쟁에 앞서 근본적으로 다시 찾고 싶은 한국을 만드는 게 호텔산업에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진수 경희대 교수(호텔경영학)는 “관광산업 경쟁력은 숙박시설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공연과 예술, 스토리가 있는 명소 등 볼거리와 의료관광·컨벤션 산업 등 국내 다른 분야의 발전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해 외국인들이 꾸준히 한국을 방문한다면 자연스레 숙박 수요도 늘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내수 위축을 외국인 방문객 소비에 기대어 메우려는 상황에서, 올해 초 중국인 관광객 증가세가 회복됐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관광과 컨벤션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한겨레신문 이재욱 기자 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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