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다가 키우는 기장 미역"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무릇 만물의 생산은 다 때가 있다. 한겨울에 딸기를 보는 시절이지만 말이다. 


여담인데, 이제 딸기 제철은 겨울이 맞다. 노지 재배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땅에는 ‘하우스’ 같은 시설 재배를 해서 제철을 바꾸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다는 다르다. 



거대한 바다는 우리의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 겨우 가두리 양식 같은 게 그나마 시설답다. 멀리 기장으로 갔다. 미역을 보기 위해서다. 평소 같으면 설 전에 땄어야 할 미역이 아직 바닷속에서 조류에 흔들리고 있다. 


올 겨울, 간혹 혹한이 오기도 했지만 수온이 매우 높았다. 미역은 김처럼 추운 바다에서 잘 자라고 맛도 좋다. 시절은 겨울인데 수온은 가을인 날이 오래 지속되었다. 미역이 더디 자랐다. 어민들은 한숨이다. “설밥 묵고나 따야지 멀었소.” 미역밭으로 가던 어부의 말이었다. 한때 북양어장에서 목숨 걸고 명태를 잡다 은퇴해 작은 미역밭을 일구는 늙은 어부의 한숨이 깊었다. 기장에 간 지 달포 되었으니, 이제 산모용 같은 고급 건조품을 만드는 미역을 딸 때다.


이 지역의 미역은 달리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명품이다. ‘쫄쫄이 미역’이라는 별칭도 있다. 기장 앞바다의 조류가 거세어 미역의 조직이 쪼글쪼글해져서 생긴 말이다. 이런 가혹한 환경에서 자란 미역이라 더 맛있다는 얘기다. 기장 미역은 폭이 좁고 쪼글쪼글한 편이며 두툼하다. 국물을 내면 깊고 진해서 인기가 있다. 미역은 그냥 따는 게 아니라 고단한 노동이다. 미역은 줄에 붙여 기르는데, 일일이 포자에서 자라난 작은 실 같은 미역을 줄에 미리 매달아야 한다. 그걸 바다에 내서 걸고 다 자라면 거센 바람을 맞으며 수확한다.


싱싱한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 4시에 나가서 작업한다. 두툼한 줄에 검푸르게 자라난 미역을 걷어내느라 허리가 휜다. 걷은 미역은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잘 말려야 한다. 그냥 냅다 펴 말리는 게 아니라 줄기를 잘라내고 귀 자르고 꼬리를 버리는 일이 이어진다. 그렇게 해서 차곡차곡 물기 많은 이파리들을 겹쳐서 두께를 내어 말려야 한다. 하늘 사정을 봐가며 너른 마당에 널고 뒤집고 비나 와서 다급하면 건조장에 넣고 빼는 노동이 이어진다.



젊은 사람도 없고, 대개는 노인들 손을 빌린다. 그렇게 힘들게 해서 한 마디를 만들면 겨우 ‘한 가치’가 되고, 그것을 스무 개나 모아야 ‘한 손’이 되어 포장된다. 말린 것이니 원래 생체 무게로 하면 열 배가 넘는 미역이 들어간 것이다. 그런 고난을 겪고 지금쯤 기장에서는 좋은 미역이 포장되고 있을 것이다.


요새 기장은 바닷물을 담수화해 상수도로 공급하는 시설을 짓는다 하여 지역사회에서 난리가 났다. 바닷물에서 방사성 동위원소가 검출되었다는 주장이다. 동해안은 원자력발전소 때문에 늘 화약고 같다. 천년을 먹어온 미역을 한 줄기나마 맘 편하게 먹기 힘든 세상을 만드는 이들은 누구인가. 뽀얗게 잘 끓인 햇미역국 한 그릇에 휘말리는 생각에 숟가락이 멈춘다. 원전을 멈추라. 그것이 국민의 주장이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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