봅슬레이의 쾌거에서 문화 테러리스트 백남준을 보다 [이성낙]

www.freecolumn.co.kr

봅슬레이의 쾌거에서 문화 테러리스트 백남준을 보다

2016.02.04


근래 한국 정치권의 고질적인 이전투구로 암울하기 그지없는 가운데 종종 스포츠계의 기쁜 소식이 우리를 즐겁게 해줍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봅슬레이(Bobsleigh) 팀이 세계 정상에 오르며, 동양인으로 처음 금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쾌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봅슬레이는 유럽에서 1910년 처음 소개된 이래 100년 넘게 사랑을 받아온 스포츠 종목이라 시설이나 참여 팀의 수로 보면 우리의 실정은 너무나 초라합니다. 우리 선수들의 쾌거가 더욱더 돋보이는 이유입니다.

이런 쾌거에서 필자는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의 아방가르드 정신을 보았습니다.

오래전 독일에서 지낼 때, 필자는 쥐구멍을 찾고 싶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백남준 때문입니다. 지금이야 예술가들이 좀 ‘괴상한’ 퍼포먼스(performance)를 해도 ‘예술가들이니까’ 하며 넘어가곤 하지만, 1950~1960년대에만 해도 사회적 분위가 오늘날에 비해 훨씬 보수적이었습니다.

백남준이 1956년에 독일로 갑니다. 그리고 당시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이름을 떨치던 요제프 보이스(Josef Beuys, 1921~1986)를 찾아 서독의 부퍼탈(Wuppertal)이라는 비교적 조용한 소도시로 옮깁니다.

그리고 몇 년 후 정장 차림으로 음악당 연단에 올라간 백남준은 쇠망치(Hammer)로 멀쩡한 피아노를 힘껏 내리칩니다. 피아노가 광폭음(廣爆音)을 내며 부서졌습니다. 음악당이 졸지에 테러를 당한 듯 아수라장이 된 것은 물론입니다. 이는 백남준이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에게 보내는 경의’라는 제목으로 펼친 퍼포먼스였습니다.

다음 날, 독일 언론 매체가 들끓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선명하게 기억나는 헤드라인은 “남한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Kultur-Terrorist aus Sued-Korea)”입니다. 실로 많은 것을 짐작케 하는 제목입니다. 아울러 백남준을 국외로 추방해야 한다는 격앙된 소리도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가 1959년입니다. 필자는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백남준의 멘토이자 동료인 요제프 보이스가 “예술가 백남준은 예술행위를 했을 뿐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라고 옹호하고 나서자 여론은 곧 잠잠해졌습니다. 솔직히 그 무렵 필자의 눈높이로는 백남준의 예술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백남준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세계적인 예술가로 우뚝 섰습니다. 이를 반영하듯 2000년에는 뉴욕 구겐하임(Guggenheim)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예술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전시회가 열립니다. 필자는 만사를 제쳐두고 찾아갔습니다. 당시 필자는 백남준의 예술혼에 흠뻑 빠져 있던 터였습니다.

그곳에서 그 탈도 많았던 ‘피아노 테러 행위’를 흑백 동영상으로 다시 만났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굉음이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엄청나게 아름다운 소리로 다가왔습니다.

동영상으로 다시 본 백남준의 퍼포먼스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피아노를 해머로 내리칠 때 생기는 그 광폭음은 여느 나무 상자를 부술 때 나는 소리와 달랐습니다. 굉장한 폭음이 지나가자 쓰러진 피아노 건반에서 흘러나오는 긴 메아리가 생을 마감하며 남기는 애절한 소리처럼 들려왔습니다. 아주 다른 차원의 아름다운 ‘괴음’을 만난 것입니다. 아방가르드의 진수에서 필자는 예술가의 ‘발상의 전환’을 보았습니다.

근래 필자가 동계 스포츠 종목인 봅슬레이와 스켈레톤(Skeleton)에서 당당히 금상과 동상을 탄 우리 선수들 소식을 듣고 백남준을 떠올린 것은 그들의 쾌거에서 아방가르드 정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선수들이 겪어야 했던 에피소드 중 “돈이 없어 유럽 선수들이 사용한 중고 썰매를 구입했다”는 얘기에는 애절함과 함께 끈질긴 집념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이뤄낸 성공은 그들만이 지닌 불굴의 실험 정신, 얼음 위를 시속 140~150km의 속도로 쏜살같이 달리며 생사의 한계를 넘나드는 모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그들에게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아방가르드 정신, 곧 백남준의 예술혼을 떠올린 것입니다.

전 주한독일대사 자이트(Dr. Hans-Ulrich Seidt) 박사는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했던 분입니다. 필자는 그분과 한때 유행했던 ‘다이내믹 코리아(Dynamic Korea)’라는 슬로건을 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그분은 단호하게 한국은 다이내믹을 넘어 아방가르드 정신이 충만한 사회라고 지적했습니다. 물론 아주 긍정적인 의미로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넘치는 사회적 역동성이 큰 자산입니다. 그런데 힘이 넘치는 우리 사회의 DNA를 어떻게 적절히 활용할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아울러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 풀어야 할 큰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