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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찾은 한글
2016.01.28
일본 동경 지하철을 타러 가면 분위기가 낯설지 않습니다. 지하철역에 설치한 안내판에서는 한글로도 안내하고 있습니다. 관광 안내소에는 동경 시내 관광안내서와 지역별 상세지도의 한글판이 마련돼 있습니다. 일행 가운데 한 사람이 한글 안내서를 꼬박꼬박 챙기기에 왜 그런가 물어보니, ‘이렇게 이용해야 한글판이 필요한 줄 알고 계속 만든다.’고 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동경에서 일광(닛코)으로 가는 열차를 탔는데, 열차 안 전광판에는 안내가 한글로 나옵니다. 별 불편한 점 없이 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게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인 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위 지하철역에서 챙긴 한글 안내문을 가져간 덕분에, 동경국립미술관은 입장료를 깎아주었습니다. 횡재한 기분이었습니다. 동경국립미술관에서는 전시 작품도 한글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작품 설명하는 문장도 참 자연스럽게 잘 썼습니다. 번역과 감수에 상당히 노력을 기울인 것 같았습니다. 일본박물관에 전시된 작품 설명을 우리글로 읽는 즐거움. 좋더군요.관광지에서도 한글로 안내하는 것이 눈에 자주 띕니다. 그런데 분명히 한글인데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것도 있고 말이 어색한 것도 눈에 띕니다. 土足嚴禁을 우리 읽는 대로 ‘토족엄금’이라 적은 것이지요. ‘신발 벗고 들어오세요.'라고 적어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들어가는 곳(인입점)과 나가는 곳(나가다)을 표시한 것도 어색합니다. 아마 공사하는 분이 인터넷에서 기계로 번역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라도 한글로 안내해 주니 반갑긴 한데 엉뚱하게 표시돼 있으니 개운치 않습니다. 누군가 바로잡아주어야할 텐데... 그럴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우리말이 타향에서 고생하지 않게, 관련된 사람에게 바로잡도록 알려주면 좋겠습니다.한중일 세 나라 단체장이 만나는 회의장에서 소통은 어떻게 할까요? 주관국은 일본말로 하고, 통역이 영어로 옮깁니다. 회의 자료와 이름표는 영어로 표시했습니다. 세 나라에게 누구의 말도 아닌 영어를 공용어로 쓴다는 게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다음 회의에서는 통역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주관국은 자국 말(일본어)로 진행하고, 한국어와 중국어로 순차 통역한다. 이렇게 하면 통역이 한 사람 더 붙지만 한중일 세 나라 사이에 굳이 영어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명패에는 위에는 주관국 글자로, 아래에는 본국어로 적자, 이번 회의에서 보면 내 이름을 위에는 일본어로 아래에는 한글로 적자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회의가 열리면, 위에 한글 아래에 일본어로 적는 것이죠. 주관국 지위를 존중하고, 각 원어를 표시하여 본인을 존중하는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두 나라 사이에 회의를 열어도 이름을 영어로 표시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으니 고치자고 제안했습니다. 두 나라 다 좋다고 했습니다. 올해 회의가 기대됩니다.외국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의 위상은 우리나라의 위상과 바로 연결돼 있습니다. 올해는 우리 위상이 한 단계 더 올라가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동경 지하철에서도 우리말 방송을 듣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대한변리사회 회장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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