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인권조례와 최 군 학살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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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와 최 군 학살

2016.01.25


국민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때가 떠오릅니다. 30대의 아버지는 6·25전쟁이 터져 나라를 지키려고 떠나고 혼자 남은 어머니가 어두운 방에서 호롱불을 밝히며 뜨개질로 짠 하얀 털 카디건을 입혀 쌀쌀한 4월 초 저를 학교에 데리고 갔습니다. 왼쪽 가슴에는 옷핀으로 꽂은 손수건을 달고 갔지요. 

당시에는 왜 그리 코를 흘리는 아이들이 많았던가요.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도 콧물이 인중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했습니다. 흐르는 코를 혀로 핥아 처리하는 빡빡머리 아이들도 있었죠. 소맷자락으로 쓱 문질러 옷에 늘 하얗게 마른 코가 반질반질하게 붙어 있었던 아이들이 기억납니다. 

세상 물정에 깜깜했던 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학교는 설렘보다는 긴장이 더 심한 곳이었습니다. 그때의 '콩나물 교실'을 회상하면 국민학교는 사친회라는 조직을 빙자하여 학생들에게 돈까지 받는 허울 좋은 의무교육이었습니다. 

혹한까지 겹쳐 심란한데 올해 34세인 아버지의 아들 살해와 시신 훼손 유기 소식이 거의 3년도 더 지나서 드러나 새해의 희망을 절망으로 색칠하고 있습니다. 2012년 10월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두 달 만에 학교를 그만 두고 몇 달 뒤 생을 마감한 최 군의 또래였던 제 어린 시절이 스쳐 갔습니다. 여자 어린이를 놀린 개구쟁이 아들을 입학식엔 누가 데리고 갔을까요? 아들을 상습적으로 두들겨 패고 시신을 훼손하여 냉장고에 넣은 악마적인 인권 유린을 보며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안타깝습니다.  

초등학생이 살해되어 3년도 넘게 학교에 오지 않았는데도 사건 발생지인 경기도 부천시를 관할하는 경기도 교육자치 수장인 전·현직 교육감이 유감을 표시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학교의 보고의 정점은 교육청이죠. 2013년 11월 교육부와 여성가족부는 학업중단 학생이 한 해에 6만 명을 넘는다면서 “5일 이상 이유 없이 결석 시 학교는 해당 학생의 부적응 원인, 지도 상황, 학업중단 숙려제 경과 등을 시·도교육청에 보고하여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2010년부터는 수도권과 호남의 교육감들이 앞다투어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라는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인권조례에는 야간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금지, 체벌 금지, 두발과 복장 자유화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권조례는 야당과 좌파의 칭찬을 받았지만 교육부는 교권 침해를 우려했는지 상위법에 저촉된다며 전북도의회를 상대로 무효확인 소송을 냈고 지난해 대법원에서 패소했습니다.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것과는 달리 대법원은 학생인권조례가 필요한 조치를 권고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정치권을 넘나들며 교육도, 정치도 혁신한다고 떠들었던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은 정치가 아니라 자기 관내에서 초등생이 영안실이 아닌 냉장고에 죽어 있던 것도 모르던 자신의 무관심과 무책임부터 깨달아야 했습니다. 학생인권옹호관을 임명하고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인 현란한 학생인권조례와 무참하게 살해돼 장기간 결석한 것도 몰랐던 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는 너무도 먼 거리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초등생들에게 자유와 민주를 교육한다고 한 사람들이 있었죠. 부모에게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교육감으로부터도 버림 받은 이 어린 학생에게 학생인권조례란 무슨 의미였을까요? 무차별 무상급식을 옹호하면서 밥그릇으로 차별하지 말라던 이들은 아이가 학교 다니다가 죽은 참극은 왜 몰랐을까요? 밥 주는 게 의무교육이라고 강변하던 사람들은 학생의 생존 확인이 의무교육이라는 것도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우리나라 학교 상황은 외견상 획기적으로 개선된 모습입니다. 초등 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980년의 47.7명에서 2014년 14.9명으로 3분의 1 수준이 되었습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보내는 관심도 세 배로 늘었을까요. 물론 최 군을 담당한 선생님들은 가정을 방문했고 주민센터에도 협조를 의뢰했지만 안타깝게 비참한 죽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교사들의 가정방문이 실행되기 어려운 세태입니다. 제 학창 시절엔 고등학교 3학년 때에도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오셨습니다. 지금은 부작용이 우려되니 하지 말자는 건가 봅니다. 심지어 학생들의 일기장을 교사가 보는 것조차 인권침해라고 비판합니다. 학생들이 쓴 글을 교사가 보는 것은 학생들을 잘 교육하려는 것이지 본말을 뒤집는 인권침해 목표가 아니죠. 관심 표시 자체가 비정상 사태를 예방하는 중요한 교육입니다. 

교육청은 정치적인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교육 수요자인 학생과 그들을 돕는 선생님들이 제대로 일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치권을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은 거창한 담론으로 포장한 자신들의 정치적 기울기 때문에 교육 본연의 영역이 좁아진 결과가 학생들에 대한 자유방임적인 무관심이 아닌지 자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 출결 관리 최정점에 선 교육감들은 이번 최 군 학살 사건에 책임을 통감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의 최신 행적을 보니 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나 누리과정 국고지원 요구 등 청와대 앞의 1인 단골 시위로만 뉴스 메뉴에 오르더군요.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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