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도 '현대차', '삼성'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 가능하죠" -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원장
"정책 개선 뒷받침, 도시전체 미래 먹거리"
사진=이기범 기자
"건설업도 '현대차'와 '삼성'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 나오지 말란 법 있습니까?"
업계에 대한 우려가 먼저 쏟아질 줄 알았는데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사진)의 입에서는 '글로벌 플레이어'라는 단어가 먼저 나왔다.
건설업계는 올해 기로에 서 있다. 국내 주택시장은 대출규제와 금리 인상, 주택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로 연초부터 찬 바람이 분다. 해외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이란 제재 해제로 새 시장이 열렸지만 국제 유가의 하락, 중국 증시 쇼크 등으로 세계 경제가 불안하다.
건설업계의 씽크탱크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수장으로 한 달 전 취임한 이상호 원장을 지난 21일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건설업계가 시스템을 정비해 위기를 관리하는 것과 동시에 미래의 먹거리를 위한 신시장 개척을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전에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잘 안 먹혔어요. (웃음) 요즘은 확실히 달라요. 그만큼 업체마다 고민이 크다는 거죠."
그는 "이제야말로 건설업도 미래의 먹거리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미래의 먹거리'는 건설업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동안 '주택'에 한정했다면 '도시'로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의미다.
"아파트만 짓고 끝낼 겁니까. 친환경도시, 스마트도시 등 도시를 생각하면 그만큼 또 다른 더 큰 시장이 생깁니다. 도시에 접목될 디바이스(장치)와 시설물에 대한 유지 관리 사업도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어요. 국내는 물론 해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현대건설과 포스코건설은 각 그룹의 지역 기반인 울산시와 포항시와 각각 연계해 도시 재건 사업을 같이 진행하면서 사업의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미래창조과학부는 창조경제의 일환인 사물인터넷(IoT) 확산을 위해 부산시와 대구시 등을 대상으로 국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이 원장은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오는 건설 선진국이 되려면 정부 정책의 변화도 시급하다고 촉구했다. "한미글로벌 사장으로 있을 때 공공수주 입찰은 아예 엄두가 안 났어요. 기술력보다는 가격으로 결정되니 요행에 의한 낙찰이 되고 어렵게 수주해도 이익을 내기 힘들었거든요."
정부가 앞장서 건설업체들이 기술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종합심사낙찰제를 우선 시범적으로 두 사업장에 대해 시행키로 했다. 종합심사낙찰제는 가격 뿐 아니라 수행 능력과 사회적 책임 등을 두루 평가해 낙찰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 원장은 "시범 사업에 그칠 게 아니라 큰 틀에서 전체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의 경쟁력 확보도 제도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중동과 동남아시아 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도 도시가 노후 돼 인프라 사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우리가 진출할 해외시장이 없는 게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이 약한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설계와 엔지니어링 부문에서 기술 경쟁력을 쌓기 위해서는 설계와 시공 등 국내 업종 간의 칸막이부터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도 '현대차', '삼성' 같은 글로벌 플레이어 가능하죠"
다음은 이 원장과의 일문일답.
-올해 건설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시는지요
지난해 종합건설업체의 건설수주 실적은 주택경기 호조로 사상 최고치인 150조원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봅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는 줄어들겠지만 주택경기에 따라 120조원대 달성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해요. 다만 최근 들어 건설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 방향이 구조개혁에 맞춰져 있고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유동성 확보도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진행 중인 사업장에 대한 마무리 작업과 위기관리가 필요합니다.
-건설업체들 마다 미래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최근 주택공급 과잉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는 '주택'에서 '도시'로 넓게 봐야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도시, 친환경도시, 혁신도시 등 도시마다 테마를 갖고 변화되는 추세입니다. 건설업체들도 단순히 주택을 넘어서 어떻게 도시인프라를 공급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적극 뛰어들어야 합니다.
-국내 건설업계에서도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올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뒷받침 돼야 할까요
우리는 그동안 시공업 중심으로 발전해 왔어요. 이제는 시공 이전 단계인 △설계 △엔지니어링 △CM·PM(건설사업관리) 부문에서의 역량 강화가 필요합니다.
사업 간의 칸막이 구조도 사라져야 합니다. 설계와 시공, 시공에서도 종합건설업과 전문건설업 등으로 나뉘어 있어 시너지와 융복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겸업을 규제하기보다는 '건설산업통합법' 제정 등을 통해 심의도 효율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장 시급하게 개선돼야 할 부분이 있다면요
국내 발주 체계부터 바꿔야 합니다. 가격보다는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설계와 엔지니어링 등 기술적인 부분들을 의미 있게 평가해야 합니다. 올해 시범적으로 종합심사낙찰제가 처음으로 시행되는데요. 좀 더 큰 틀에서의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건설 선진국, 모범 사례로 추천할 만한 나라가 있다면요
영국을 꼽고 싶습니다. 흔히 건설하면 개도국을 먼저 생각하죠. 인프라 사업이 주를 이루니까요. 영국은 개도국이 아니지만 건설을 주요 사업으로 보고 정책적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그 결과 건설업을 통해 내수 진작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효자 노릇을 하고 있죠. 영국처럼 건설산업에 대한 장기 비전을 수립하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우리도 20년 마다 건설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미리 선언하고 준비할 때입니다.
-국내 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 대규모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성이나 현대차도 처음부터 해외에서 잘했던 건 아닙니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계속해서 도전해서 이뤄낸 결과입니다. 건설업의 경우 예전보다 진출 환경이 좋아졌습니다. 해외에서 쌓아온 실적도 있고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 한때 국내 업체 간의 수주 전쟁으로 리스크 관리가 부족했던 건 사실입니다. 시행착오를 보완해 계속해서 문을 두들겨야 합니다. 몇 번의 실패로 물러서는 건 글로벌 경쟁력을 몇 배 더 후퇴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로벌 시장도 경쟁이 치열한데요
중동과 동남아시아만 생각할 건 아닙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도 도시가 노후 됐어요. 새로운 인프라 구축이 필요할 때입니다. 미국 건설업체들이 해외 시장 진출보다 내수 시장에 주력하는 이유죠. 국내 건설업체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기술력과 관리의 노하우 등 경쟁력만 있으면 기회는 많다고 봅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출범 때부터 합류해 그로부터 20년 만에 원장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포부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건설업계의 명실상부한 씽크탱크로 거듭나는 게 목표입니다. 입낙찰제도 등 현안이 되고 있는 건설정책과 제도개선에 대해 업계의 의견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주도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동안은 이런 점들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건설산업이 나아갈 방향 제시와 히든 챔피언 육성, 신시장 개척과 신사업개발을 위한 비전 제시에도 중점을 둘 겁니다. 상대적으로 연구와 기획 기능이 취약한 지역의 중소건설업계에 대한 지원도 강화할 생각입니다. 우수한 인재들의 영입과 양성도 놓치지 않을 겁니다
머니투데이 대담=이승형 건설부동산부 부장, 정리=배규민 기자, 사진=이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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