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고전 음악감상실 '녹향'과 '르네상스'

대한민국 1호 '녹향'은 대구 그자리에

'르네상스'는 대구 → 서울 종로1가로

1987년 문닫아


1970년대  종로 1가의 모습. 르네상스 감상실은 당시 대로에서 좌측으로 영안빌딩 4층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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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와 ‘녹향’으로 대표되는 음악감상실은 억압식 교육 및 사회에 짓눌려 있던 음악인, 또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감성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었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지금은 소수의 음악감상실만이 추억을 그리는 이들의 방문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비록,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곳을 찾지만, 그 곳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추억은 어떠한 공간보다 중요하다. 


[고전음악 감상실 녹향(綠香),1946~ ]

1946년 대구 향촌동에서 문을 연, 우리 나라 최초의 고전음악 감상실이다. 예육회(藝育會) 회원이었던 이창수가 회원들의 모임 장소를 물색하다가 향촌동의 지하 다방을 마련하여 소장하고 있던 레코드판을 틀면서 비롯되었다. 

당시, 녹향은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술인들의 감성을 일깨워줬던 공간이었다. 때로는 재정난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지만,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도 대구에 위치하고 있는 녹향은 옛 추억을 회상하는 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구 고전음악 감상실 ‘녹향’ 

                                      

설립자 이창수         


[고전음악 감상실 르네상스,1951~1987]

대구에서 종로로

르네상스는 녹향이 문을 연 지, 5년 뒤인 1951년 문을 연 고전 음악감상실로, 녹향과 함께 고전 음악감상실의 발전을 도모한 공간이다. 르네상스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어지러운 상황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꿈과 낭만을 전해준 곳이었다. 르네상스는 故 박용찬씨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그 곳은 예술가들과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특히, 전란 속에서도 문화 활동을 유지한다는 것이 놀라운 사실이었으며, 외신들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바흐의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이를 기사화하기도 했다. 르네상스가 녹향과 다른 점은 59년 서울로 올라왔다는 점이다. 운영난으로 1987년 문을 닫았다. 르네상스는 사라졌지만, 당시의 음악기기와 LP판들은 현재, 예술의 전당에서 볼 수 있으며, 르네상스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출처 다음블로그 우리 사는 얘기


종로 르네상스 고전음악감상실 내부

매킨토시 진공관 앰프와 대형 JBL 하스필드 스피커 등으로 당시 젊은 음악 애호가

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설립자 박용찬씨

1994년 작고했다.


PS: 필자도 학창시절 많은 시간을 서울 르네상스감상실에서 보냈다.


황기철  

콘페이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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