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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사우(山中四友)
2016.01.15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난 겨울에도 마당에서 해야 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낙엽을 치우는 일, 여기저기 축대 사이 마른 잡풀을 제거하는 일, 가지를 쳐내는 일, 낙엽과 쳐낸 가지들을 태우고 버리는 일 등입니다. 제주는 겨울이 온화한 편이라 이즈음에도 나무를 새로 심거나 옮겨심기도 합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아내 외에도 늘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호미, 삽, 전지가위, 톱이 그들로서 사철 우리는 이 네 친구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산중의 삶에서 늘 같이하는 이들이 우리에겐 산중사우(山中四友)인 셈입니다. 사우(四友) 중 첫 번째가 호미로서 사실 호미는 저보다 아내와 더 가까운 벗입니다. 아내는 뜰로 나설 땐 항상 호미를 동반합니다. 아마도 호미는 산촌의 아낙을 비롯하여 흙과 가까이 지내는 이들에겐 병사의 칼이나 소총에 비길 그런 무엇이라 하겠습니다. 작가 박완서는 호미 예찬을 펴기도 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호미는 작은 몸체이지만 쓰임새가 여간 많지 않다는 점에서 참 특별한 연장이며 이 대단한 호미를 쓰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단순한 연장이 어찌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호미의 효용성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호미를 많이 쓰면 손목이 좀 아플 수가 있는데 아내도 가끔 손목 통증을 호소해 오다가 호미를 바꿔보라는 이웃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철물점에서 더 단단하고 날렵한 것을 사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일을 도와주러 오는 진도 출신의 영감님이 진도 호미가 아주 좋다고 하면서 하나를 일부러 마련해 와 그 호미를 쓰고부터는 아내로부터 손목 아프다는 소리를 덜 듣게 된 듯합니다. 진도 호미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쇠도 더 두껍고 강한 것으로 하여 빚었는데 여간 날렵하게 생긴 게 아니며 동백나무로 만든 손잡이는 뒤로 갈수록 점차 굵어져서 끝부분이 손바닥에 감기듯 단단하게 잡힙니다. 두 번째로 가까운 친구는 삽으로서 나무를 심거나 옮기거나 할 때, 억센 잡풀을 파낼 때 등에 주로 쓰이며 그 외에도 일단 땅이 있는 곳에는 삽을 쓰게 마련입니다. 보통 삽도 자주 쓰지만 작은 꽃삽도 즐겨 씁니다. 꽃삽은 이름처럼 예쁘기도 해서 들고 나가면 호미 대용으로도 쓸 수 있고 바위 틈 같은 좁은 공간에 갇힌 흙을 퍼내거나 부어넣는 데도 유용합니다. 한번은 진도 영감이 우리가 쓰는 보통의 삽을 보더니 이런 삽으로는 일의 능률이 나지 않는다면서 자기가 쓰는 삽을 권했는데 그걸 한 번 써보니 힘도 덜 들면서 땅이 잘 파지는 데다 좀 가볍기도 하여 한결 편리하였습니다. 이 개량 삽은 그 호미처럼 특별히 제작한 것은 아니고 보통 삽날의 양쪽을 알맞게 잘라내서 더 날렵하게 만든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보통 삽을 하나 사서 대장간에 맡겨 그 삽과 똑같이 만들게 해서 주로 그걸 쓰고 있습니다. 서귀포에는 닷새마다 장이 서는데 오일장에 가서 나무가게 앞에 펼쳐놓은 온갖 나무들을 보면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를 사면 자리를 보아 잘 심고 적절히 물을 주는 등 정성과 노력을 많이 들여야 하고 제대로 살지 못할까봐 걱정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나무는 이제 그만 사들이자고 번번이 말하지만 꽃나무에 애착이 많은 아내는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나 어찌하겠습니까. 알게 모르게 사온 나무를 심는 것이 크게는 제 몫이니 싫어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새 저 자신도 하나 둘 심어 놓은 나무들을 좋아하게 되고 얼마 안 가서는 아내가 꽃나무를 사는 데에도 웬만한 동조자가 돼버리는 것이지요. 제주에서는 나무를 잘 심어놓고도 지주목을 세우지 않았다가는 바람에 쓰러지기 십상입니다. 어린 나무도 그냥 심어놓기만 하면 바람에 뿌리가 흔들려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첫 해에 심은 작은 나무들에 지주목을 대어주지 않아 일 년이 지나고도 거의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답니다. 든든한 지주목을 세워준 제법 큰 나무들도 한라산에서 불어오는 강풍의 위력에 못 이기고 쓰러지는 일이 있습니다. 겨울 어느 날 아침 큰 나무 몇 그루가 바람에 쓰러진 참담한 모습을 보고 아내와 함께 망연해 하다가 다시 일으켜 세우느라 둘이서 진땀을 빼기도 하였습니다. 새로 심는 나무는 뿌리가 새 땅에 적응하기까지 몸살을 한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꼭 필요하지 않은 가지들은 아까워도 잘라내야 나무가 제대로 살게 됩니다. 잘 크는 나무도 더 탄탄하게 자라고 더 멋진 모양을 갖도록 가지를 쳐줍니다. 이처럼 나무를 잘 키우기 위해 사철 가지를 베고 자르는 작업을 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전지가위와 톱이 그래서 세 번째와 네 번째의 친구인 것입니다. 가위와 톱을 놓고 보면 전자는 호미처럼 아내와 더 가깝고 후자는 삽처럼 저와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지가위는 쓰면 쓸수록 참 야무진 물건이란 생각이 듭니다. 단단한 재질에 둥글게 맞닿는 예리한 두 날과 손잡이 부분이 적절한 비례로 돼 있어 다소 굵은 가지도 조금만 힘을 주면 쑥 잘려나갑니다. 톱은 삐죽하고 길쭉한 것이 별 모양은 없지만 자세히 관찰하면 참 재미있게 생긴 물건으로 잘 사용하면 웬만큼 큰 가지라도 쓱쓱 잘 베어집니다. 톱은 또 얇고 길어서 휘청거리기도 하므로 톱질을 잘하려면 손목에 힘을 빼야 한다는 것을 여러 번 시행착오를 통해 깨닫게 되었답니다. 나무를 가꾸는 데는 위에 언급한 것들 외에도 크고 작은 도구들이 많이 쓰입니다. 지주목을 땅에 박고, 굵은 철사를 잘라 동여매고 조일 때 등에 망치, 펜치 따위가 있어야 하고, 땅을 일구고 고를 때도 곡괭이나 쇠스랑 등속이 있어야 일이 수월합니다. 모두 필요할 때 하나라도 없으면 무척 아쉬운 것들이지요. 그렇게 치면 이 도구들도 다 친구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통상 마당에서 일할 때 빠짐없이 들고 나서는 연장이 호미와 삽과 전지가위와 톱인지라, 이 넷을 아울러서 특별히 사우(四友)로 삼고 있습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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